거실에 남쪽으로 넓은 창이 나있다.
담과 달리 분명 세상과 소통하려고 만들어놓았을 텐데
창은 유심히 살펴보면 중무장을 하고 있다.
먼저 가장 바깥엔 방충망이 자리잡고 있다.
그 바로 안쪽에 투명한 유리창이 있고,
이어 불투명한 유리창이 또 한겹의 방어벽을 친다.
이어 발이 하나 있고,
마지막 방어선은 커튼이 지키고 있다.
창은 자그마치 다섯겹의 방어선으로 중무장을 한채 거실을 지키고 있다.
오늘 창을 한겹한겹 벗겨가며
세상이 어떻게 막혀있고,
또 어떻게 거실로 새어드는지 살펴보았다.
커튼으로 막아놓아도 빛은 새어든다.
그러나 빛은 2할밖에 들어오지 못한다.
나머지 빛들은 모두 바깥에서 서성거린다.
거실로 들어오는 2할의 빛은 모두 커튼의 색에 물든다.
커튼이 흰색이면 흰색으로, 커튼이 분홍색이면 분홍으로 물든다.
커튼이 제 색깔로 물들여 들여놓는 그 2할의 빛은
거실을 아늑하게 만들어준다.
가끔 우리는 그 아늑함이 좋아서 창을 모두 닫고
커튼까지도 쳐두곤 한다.
그러고 보면 커튼은 빛에서 아늑함을 걸러내 거실로 들이는 독특한 문이다.
빛의 2할에 그 아늑함이 녹아있다.
커튼을 젖히면
불투명한 유리창이 있다.
불투명한 유리창은 바깥을 보여주지 않는다.
커튼과 마찬가지로 빛은 통과시키지만
3할 정도까지로 제한을 한다.
여전히 많은 빛들이 바깥에서 서성거릴 수밖에 없다.
커튼이 빛을 그 품에서 잠깐씩 품어 부드럽게 무마시켜 들여놓는 반면
불투명한 유리창이 들여놓는 3할의 빛은
원래의 빛 그대로이다.
그 때문에 커튼을 젖히면 그것만으로도 거실의 아늑함은 푹 줄어버린다.
투명한 유리창은 빛은 마음대로 들여놓지만
바람의 걸음은 막는다.
가끔 안이 궁금한 바람이 거세게 보채면
그 통에 창이 심하게 흔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창도 쉽게 물러서지 않는다.
투명한 유리창은 마당의 장미나 배나무가
거실을 들여다보는 것도 허용한다.
빗줄기가 창문을 타고 흘러내리며 잠깐씩 안을 엿보는 것도 가능해진다.
세상이 거실을 엿볼 때,
우리는 안에서 세상을 내다본다.
발은 바람의 거실 출입을 허용하지만
커튼이나 불투명한 유리창이 빛의 출입을 2할이나 3할로 제한했듯이
바람의 3할만 들여보낸다.
그러나 성격 급한 바람은 그 3할의 제한을 참지못하고
가끔 발을 거칠게 밀며 절반넘게 거실로 쏟아져 들어오기도 한다.
발은 또 커튼처럼 빛도 걸러서 들인다.
커튼처럼 아늑함이 깊지는 않지만
발을 하나 쳐놓으면 그때도 거실엔 아늑함이 잔잔하게 고이곤 한다.
창의 가장 바깥엔 방충망이 있다.
그건 벌레들이 집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선다.
파리나 모기가 집안을 얼쩡거리려 해도 그 망에서 발목이 잡힌다.
다른 날벌레도 아주 몸집이 작은 녀석들을 제외하곤
그 망을 자유롭게 들고나지 못한다.
먼지들은 출입이 자유로울 것 같지만
그 경우에도 사정이 그렇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망에 끼어있는 먼지들은
먼지들도 그 작은 구멍을 들고나는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아마도 먼지의 8할은 무사히 그 망을 통과하고 있을 것이다.
그건 문을 꼭꼭 닫아두었는데 어디서 들어왔는지가 의아한 거실의 먼지들을 볼 때마다 분명하게 확인이 된다.
창을 다 닫아두고, 커튼까지 쳐두어도
2할의 빛은 드나든다.
창을 열면 빛과 바람이 쏟아져 들어온다.
아마 5월이라면
그때부터 마당에 있는 넝쿨장미가 고개를 내밀고
나를 불러내려 손짓을 할 것이다.
발을 쳐두면 바람이 걸러지지만 그래도 3할은 드나든다.
방충망에선 먼지들이 그 작은 구멍이 집으로 들고나는 비밀의 문이라도 되는듯
온몸을 들이밀고 집안으로 들락거린다.
닫아둔 거실에 항상 세상이 들락거리고 있다.
가끔 겨울 한철의 우리 집 거실처럼
마음의 창을 꼭꼭 닫고 살아갈 때가 있다.
그때의 고립감이야, 얼마나 외롭고 힘겨우랴.
그러나 잘 살펴보면 1할의 빛이
삶의 거실로 스며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빛을 따라 닫힌 창을 하나하나 열어볼 일이다.
4 thoughts on “창 2”
정말 분위기있는 창가네요.^^
저희집 창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해지고.^^
저희는 커텐을 살때 남편이 가서 사왔는데 회색의 두꺼운 천이라서
커튼만 치면 한밤중이에요.^^
꽃피면 그때는 아주 좋은 거 같아요.
겨울엔 추워서 마루에 있질 못하는데 여름엔 마루에 누워있을 수 있거든요.
5월엔 밤에 장미향이 솔솔 스며드는게 아주 좋아요.
벌써 싹이 붉게 나오고 있더라구요.
우리집이네…
실제보다 무지 분위기 있어 보인다…
사진이 항상 그렇지 뭐.
사진은 일상적인 것들도 에술적으로 누릴 수 있도록 해주잖아.
어찌보면 평범한 일상 속에 예술이 있는 것일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