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 전에 딸에게 메일을 보낸 적이 있다.
날짜를 보니 2000년 12월 31일로 되어 있다.
메일의 좋은 점은 바로 요런게 아닌가 싶다.
보내면 그만이 아니라 보낸 것도 그대로 보존이 된다는 점.
딸아이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지금은 다 커서 숙녀티가 완연해졌다.
그때의 메일을 다시 들여다 보았다.
–아빠다!
아빠의 사랑하는 딸 문지, 안녕!
세상에서 제일 잘 생기고 멋진 아빠가 오늘 문지에게 오래 간만에 편지를 쓴다.
방학하고 나서 1주일 동안 완전히 놀고 자빠졌더구나.
영어하는 소리는 영 안들리고,
수학하는 소리도 수근수근 들릴 줄 알았는데
그 정도는 아닌 것 같고.
하지만 문지가 건강하면 되지
공부는 꼭 잘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아빠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인상을 박박 구기면서 우리 문지를 몰아세워야 하는 것인지
저 정도만 하는 것도 감지 덕지를 넘어 감지 꽁치라고 해야 할지
정말 판단이 불가능하구나.
하지만 역시 아빠 생각에는 문지가 열심히 공부를 하고
건강도 하면 더 바랄 것이 없다는 당연한 답만 머리 속에 빙빙 돌아서
머리 속이 하도 돌다보니 어지럽고
어제도 어지럽고 오늘도 어지럽다 보니
갑자기 엄마도 머리가 어지럽다고 하고
그렇게 어지럽다고 하니까 글도 어지럽게 되고.
안녕, 사랑하는 나의 딸 문지
아빠가
4 thoughts on “딸에게 보낸 메일 1”
머리가 길어서인지 예전 사진보다 몇년은 성숙해보여요.^^
김동원님은 메일도 참 장난기 가득하고 재밌게 보내시네요.
공부에 관해선 저도 여러가지 생각이 다툰답니다.
-무언가 미치도록 좋아하는 일이 있다면 그일을 하며 사는게 행복이니까
공부는 중요치않다.
-그래도 공부를 열심히 죽어라~~~해서 좋은 학교 나오면 미래는 더 밝지않을까.
-공부보다는 건강이 최고다. 건강하기만 해다오~~.^^
자식은 그냥 좋은 점에만 만족해야 하는 거 같아요.
부족한거 아쉬워하면 자꾸만 잔소리를 하게 되서…
아이쿠, 정말 예쁘게 나왔구먼.
요즘 딸이 모델이 되어주니 딸 사진이 많이 올라가네.
퉁퉁한 아줌씨 사진을 보다가 젊고 예쁜 딸 사진이 블로그에 올라가니 블로그가 한층 예뻐지는 듯…ㅎㅎ
기특하지? 크게 신경 안써도 잘 커가는 것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