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추억

내 고향은 강원도 영월의 문곡이다.
내가 자랄 때, 내 고향은 어른들의 입에선 문곡이라기보다 개간리로 많이 불리었다.
그 주변의 동네들도 가느골(가네골), 노루꼴(노루골), 골마차 등의 이름으로 불리었다.
동네 이름이 어떻게 그리 되었는지는 그 이름만으로도 짐작이 갈 때가 있다.
가령 가느골은 가느다랗고 긴 골짜기란 뜻이 아니었을까 싶다.
노루꼴은 노루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었을 것이다.
골마차는 마차라는 이름의 동네로 가는 중간에 있으며, 그곳이 골짜기여서 그 이름의 내력이 충분히 짐작이 간다.
하지만 난 지금까지도 내 고향의 옛이름인 개간리는 어디서 연유된 것인지 짐작을 못하고 있다.
2004년 9월 9일날 나는 고향에 다녀왔다.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에 벌초하러 내려간 길이었다.
길이 어찌나 좋은지 이제는 좀 급하게 달리면 두 시간이면 간다.
예전에는 그 배가 걸렸었다.
조금씩 조금씩 세월이 밀고 가는 힘에 밀려 고향의 모습도 변하고 있지만
그래도 20여년을 자란 곳이라 내가 느끼는 옛 흔적의 선명함은 여전하다.

Photo by Kim Dong Won

벌초하러 산으로 올라가는 중.
그녀와 바로 밑의 여동생 은미, 그 아들 승현이가 같이 갔다.
요즘은 산에 길이 없다.
원래는 이곳으로 다니질 않았지만
길들이 모두 풀과 나무에 묻히는 바람에
지금은 직선으로 가장 짧은 코스를 택해
풀과 나무를 헤치며 올라간다.
밀림과 정글이 따로 없다.

Photo by Kim Dong Won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가 있는 산중턱에서 내려다본 고향 모습.
세 갈래의 길이 모여들고 나가는 삼거리 동네이다.
사진에서 눈앞에 선명하게 보이는 길은 북쪽으로 이어지며,
이 길을 따라가면 곧 평창이다.
동네의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정선이 나온다.
사진에선 보이지 않지만 멀리 산너머 오른쪽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길은 영월과 제천으로부터 뻗어온 길이다.
물길 두 개가 우리 동네에서 합쳐져 강으로 흘러간다.
시냇물 두 개중 하나는 연중 마르지 않고 흐르지만
하나는 비가 많이 왔을 때만 흐른다.

Photo by Kim Dong Won

산밑에 누가 메밀을 심어놓았다.
정말 밤엔 하얀 바다처럼 흔들릴 것 같았다.
어렸을 때 메밀은 많이 보지 못했고, 대개는 감자를 많이 심었다.

Photo by Kim Dong Won

저 산의 중간쯤을 올라갔다 내려왔다.
비가 많이 오면 이 개울에 물이 흐른다.
요즘은 어지간히 비가 많이 오기 전에는 물이 나가질 않는다고 한다.
딸이 아주 어렸을 때 함께 고향에 내려간 적이 있었다.
산소 아래서 “저기가 할아버지 할머니 사는 하늘나라야?”하고 물어서
다들 함께 웃었던 기억이 있다.

Photo by Kim Dong Won

구름 하나가 꼬리를 길게 끌며
산너머로 날아가고 있었다.
어렸을 때 진짜로 저 산을 올라
그 너머로 가본 적이 딱 한번 있었다.
그때는 항상 산너머가 궁금했었다.
저 산의 산너머는 그냥 산만 보였던 기억이다.

Photo by Kim Dong Won

내가 어렸을 때
여름이면 하루 종일 첨벙대며 놀았던 개울.
내 고향의 개울은 얕아졌다 깊어졌다를 번갈아가며 아래로 흘러간다.
깊어지는 곳이 다섯 곳이며,
그 사이사이에선 무릎 정도로 깊이를 낮추고 졸졸거리며 흘러간다.
깊은 곳은 한 길이 넘는다.

Photo by Kim Dong Won

옆으로 넓게 보면 그 개울의 풍경은 이렇다.
저 위쪽은 정선 방향이다.
위쪽의 가운데로 멀찌감치 보이는 산을 접산이라고 불렀다.
나는 항상 접산의 꼭대기에 한번 올라보고 싶었다.
산이 위로 솟아있질 않고 옆으로 댐처럼 퍼져 있어
어렸을 때는 저 산의 너머에 푸른 호수가 있다는 말도 안되는 낭설이 있었지만
우리는 모두 그걸 믿었었다.
산이 무너지면 우리 마을이 모두 물에 잠길 것이라는 불안과 함께.

Photo by Kim Dong Won

물줄기의 흐름을 따라 아래로 눈을 돌리면
엄청난 높이의 절벽이 나타난다.
우리는 절벽이라는 말보다 병창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했고,
병창도 뼝창이라고 좀 되게 발음했다.
물은 이 절벽에 부딪쳐 방향을 튼다.
그래서 물이 돌아간다고 하여 “돌어서”라고 불렀다.
물은 여기서 한참 깊어진다.
지금은 자갈이 한참을 아래쪽으로 밀고 내려가
내가 놀던 곳을 많이 메꾸어 버렸다.
이 절벽의 위쪽에 동굴이 하나 있다.
절벽을 타고 아슬아슬하게 그 동굴로 가는 길이 나 있다.
어렸을 때는 그 동굴도 우리의 놀이터였다.
나는 그 동굴의 맨끝까지 내려가 본 적이 있다.
맨끝에서 발을 구르면 속이 텅텅 비어있는 소리가 났었다.

Photo by Kim Dong Won

고향의 소.
소의 눈은 여전히 선하다.
예전에는 나무로 된 코뚜레였는데
이제는 플라스틱으로 된 코뚜레를 하고 있다.
다리 밑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다 내가 다가서자
몸을 일으켜 세우고 나를 바라보았다.

Photo by Kim Dong Won

새다리와 헌다리.
다리를 새로 놓으면서 굽은 길을 똑바로 편 바람에
길은 세 갈래인데 다리는 네 개가 있다.
왼쪽이 새다리이고, 오른쪽이 헌다리이다.
어렸을 때는 다리의 난간 위로 올라가 걸어다니며 놀았다.
새다리는 그럴 수가 없다.
난간이 둥글게 되어 있어 그렇게 하기엔 너무 위험하다.
헌다리의 난간은 위가 평평하다.

Photo by Kim Dong Won

돌어서로 내려가는 물길쪽으로 황새 한마리가 보였다.
황새는 가느골에 많았는데
농약을 사용하면서 사라졌다가
농약 사용을 줄이면서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

Photo by Kim Dong Won

돌어서의 절벽.
저 절벽을 어느 정도 기어올라가
아래쪽으로 뛰어내리며 다이빙을 했었다.
물이 한길은 넘었지만 거꾸로 뛰어내리면 머리가 바닥에 닿곤 했다.
그렇지만 바닥이 모래로 되어 있어 그다지 아프진 않았다.
그 한길의 깊이를 이제는 자갈이 모두 채워놓고 있었다.
우리가 고향을 비운 사이에 자갈들이 그곳에서 놀다가 아예 자리를 잡았나 보다.

4 thoughts on “고향의 추억

  1. 저곳은 개발의 흔적같은게 없는거보니 옛모습 그대로인거같네요?
    제 고향은 너무 많이 변해서 마음이 안좋더라구요.
    아, 선생님 놀이하던 작은 언덕은 그대로였네요.^^

    1. 바로 그 영화의 무대가 제 고향이랍니다.
      가끔 내려가곤 하죠.
      오늘은 속초에 갔다가 지금 들어왔어요.
      빨리 사진 정리 해야 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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