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의 동해로 가는 길은 여러 갈래이지만
나는 강원도 중에서도 내린천이 굽이치는 현리나 창천 정도를
강원도의 허파쯤으로 생각하는 편이다.
그래서 다른 길과 달리 그리로 동해를 가면
강원도를 숨쉬면서 바다로 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내가 바로 그 강원도의 허파를 거쳐 동해로 간 것은 지금까지 다섯 번이었다.
일단 어느 경우에나 홍천을 지나가야 한다.
집을 나서면 홍천까지는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그리고는 홍천과 인제 사이에서 큰 길을 버리고 샛길로 들어선다.
처음엔 화양강 휴게소를 지나 철정 삼거리에서 내촌으로 들어간 뒤 서석을 거쳐 구룡령 너머에 있는 양양 바다로 갔었다.
이 길은 같은 길을 두 번갔으며, 계절은 모두 겨울이었다.
두번째는 내촌에서 서석으로 가질 않고, 상남으로 간 뒤 미산계곡을 거쳐 구룡령을 넘었다.
이때의 계절은 여름이었다.
세번째는 청정휴게소가 있는 곳에서 방향을 틀어 상남으로 갔으며, 그곳에서 현리 방향으로 올라가다가 진동계곡 쪽을 지나 조침령을 넘었다.
조침령을 넘어가면 양양 바다를 만나게 되며, 이때의 계절은 겨울이었다.
그리고 바로 어제, 3월 8일에는 소양강을 끼고 달리다가 남전리로 들어갔으며, 원대리, 하추리, 귀둔리를 거쳐 한계령의 양양쪽 허리 부분으로 나갔다.
처음엔 그냥
서울과 경기도 일원에서 휘날린 눈발 때문에
눈풍경을 찍고 싶어 나선 길이었다.
그러나 눈은 강원도쪽으로 가면 갈수록 오히려 점점 더 눈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결국 용문의 비룡리에서 차를 세우고 말았다.
그곳에서 눈은 논을 살짝 덮고 있는 정도였다.
멀리 용문산의 산꼭대기로 희끗한 눈이 보였다.
그래서 그곳에서 차를 반대로 돌려 용문산으로 갔다.
먼 곳에서 볼 때는 제법 하얗던 용문산도
가까이 가선 산을 올라보자는 마음을 굳히기 어렵게 만들었다.
길가의 집들이 지붕에 하얀 눈을 뒤집어쓰고 있었지만
눈은 줄줄 녹아 내리면서 고드름을 타고 쉴사이없이 아래로 흐르고 있었다.
결국 다시 차를 돌려 강원도로 향했다.
오늘은 그냥 바다를 보러가자고 마음먹었다.
매년 빙어축제가 벌어지는 신남을 지난 뒤
소양강을 등뒤로 버리고 남전리로 들어섰다.
남전리로 들어서자 마자 길가의 바위에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물은 겨울엔 손을 움켜쥐곤 놓질 않는다.
그것이 얼음이 되고 고드름이 된다.
용문에선 고드름이 완고하게 움켜쥔 손을 놓고 스르륵 물로 녹아내리고 있었지만
남전리의 고드름은 여전히 아주 완고했다.
길가의 바위 위에선 고드름이
완고하게 움켜쥔 손으로 겨울을 붙잡고 있었지만
골짜기 사이엔 하늘이 찾아와 푸른 빛을 가득 채운 뒤
구름 몇송이를 둥둥 띄워놓고 있었다.
하늘은 아주 싱그러웠다.
하늘과 구름이 아주 좋은 날이었다.
하추리를 지날 때,
내린천과 하늘, 구름, 산이 함께 어울려
한참 동안 우리의 시선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우리도 못이기는 척
한참 동안 시선을 내린천과 하늘, 구름, 그리고 산에게 맡겨놓았다.
골짜기의 가파른 계곡을 따라
얼음 폭포가 하얗게 흐른다.
그 사이사이로 물이 흐른다.
얼음 폭포는 달리면서 멈추어 있는 이상한 폭포이다.
달리는 소리는 졸졸거리며 계곡을 내려오는 물이 대신 내준다.
그러니까 졸졸거리는 물소리는
우리 식으로 하면 “부릉부릉”도 되는 셈이다.
다른 나무와 달리
자작나무는 위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
하얀 빗줄기가 산으로 내려와 꽂혀있는 느낌을 준다.
겨울엔 이파리를 모두 떨꾸고 하얀 나무 줄기만 남아 있어 더더욱 그렇다.
그럼 자작나무 숲은 겨울엔 하얀 빗줄기로 겨우내내 목을 축이고 있는 건가.
사실 이번에 우리가 간 길은
언젠가 내가 그녀와 함께 양양의 오색온천에서 자고
그녀의 출근 때문에 새벽같이 서울로 올라올 때 잠깐 지나온
그림같은 길 하나를 찾아간 길이었다.
우리는 그때 그 길에선 사진을 찍지 못했다.
출근을 하려면 길을 서둘러야 했기 때문이었다.
실망스럽게도 그 길은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이번에 간 길의 3분의 2는
두 해전인가 강원도를 휩쓴 홍수에 모두 떠내려가 버렸다.
우리는 비포장과 포장도로를 번갈아가며 길을 가야 했다.
길은 그 폭의 반쪽만을 남겨둔 곳이 허다했다.
물은 겨울엔 길을 가다가 낙폭이 큰 곳을 만나면
그냥 허공에 눌러앉아 얼음 폭포가 된다.
얼음 폭포가 되면 아무리 그 흐름이 거세게 보여도
겨우내내 그 자리를 얌전하게 지키며,
봄기운이 밀려온다 싶을 때 서서히 몸을 푼다.
겨울은 물을 얌전하게 가라앉히는 계절인 셈이다.
그러나 여름엔 물이 한번 성을 내면 걷잡을 수 없으며,
아무도 그 길을 가로막지 못한다.
드디어 한계령에 도착했다.
한계령은 너무 많이 망가졌다.
이번에 간 길은 강원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었는데
지금은 가장 많이 망가진 길이 되어버렸다.
우리가 간 길은 필례약수를 거쳐 한계령의 양양쪽 아래 부분으로 나가지만
우리는 한계령에 잠시 들렀다.
지난 해 우리가 설악산 대청봉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시작했던 곳이다.
지금은 5월달까지 산의 보호를 위해 입산을 금지하고 있다.
이번에는 양양 바다에 들리지 않고 곧장 속초로 갔다.
설악해수욕장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오른쪽으로 약간 보이는 산의 꼬리는 낙산사가 있는 산이다.
파도가 쉼없이 모래밭으로 밀려왔다 밀려가고 있었다.
바다가 저렇게 파란데 모래가 물들지 않는 것을 보면 그것도 신기하다.
대포항을 앞두고 다시 차를 세웠다.
조만치 앞쪽에 작은 바위섬 하나가 바다의 중심인양 버티고 서 있다.
파도가 일렁일 때마다
그 작은 바위섬도 머리끝을 물속에 잠그었다 내놓았다 하면서 함께 일렁였으며
바로 그렇게 파도와 노는 재미 때문에 저만치 자리를 잡았는지 모른다.
바닷가의 돌들은 그와 달리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갈 때마다 파도를 쫓아 달려나가며 노는 듯했지만
예외없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며 하얀 상채기를 내고 있었다.
하지만 난 그렇게 금방 아무는 상채기는 본 적이 없는 듯하다.
속초 등대에 올라갔다.
영금정과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바다 보니 아주 좋았다.
4 thoughts on “얼음 폭포들을 보며 속초로 가다”
그 아름답던 길이 다 망가지다니… 정말 맘이 너무 아프다ㅜ.ㅜ
세상에 비가 얼마나 왔으면 그렇게 망가지냐…
거기 사람들도 생전 그런거 처음 봤을 것 같어… 얼마나 홀망했을까…
복구하는데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어.
이젠 그 아름답던 길은 기억 속에만 있겠네…
어쨌던 바다를 보구 와서 그런가… 마음이 참 좋다.
저렇게 시퍼런데 모래가 어찌 물 안드냐고?…ㅎㅎ
대신 마음이 파~랗게 물들잖어.
바다 색깔이 바다마다 틀려.
또 계절마다 틀리구.
남해 바다도 가보고 싶다. 멀리 완도나 목포쯤.
아..저 나무가 자작나무였군요. 첨알았네요.^^
바다보니 저도 바다에 가고싶어져요.
산과 바다 모두 보고오시다니..ㅜㅜ 넘 부러워서.^^
내일 강원도에 또 눈올지 모른다고 하네요.
눈오면 오대산이나 가볼까 생각 중이예요.
이번 달엔 쉴 사이 없이 일을 해야 할거 같아서 잠깐 틈이 나는 요 때 아무래도 부지런히 다녀야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