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안개의 하얀 나라 2 – 평창 선자령

가끔 쓸데없는 것에 저항하지 못할 때가 있다.
흔히 하는 말로 그게 밥먹여주는 것도 아닌데
우리들은 가끔 못견디게 바다에 가고 싶을 때가 있으며,
그러면 대개는 그런 마음의 흔들림에 저항을 할 수가 없다.
눈도 그렇다.
3월 17일 토요일, 그렇게 눈이 온다는 소식에 아무 저항도 못하고
횡계의 선자령에 다녀왔다.
어제 초입 부분까지 오른데 이어 오늘은 중턱까지 올라가 본다.

Photo by Kim Dong Won

산등성이의 윤곽이 저만치 보인다.
이 날은 안개가 무척 심했지만
산의 초입에선 앞쪽의 나뭇가지 위에 얹힌 눈을 살펴본 뒤,
시선을 멀리 산등성이까지 올려보내는 것이 가능했다.

Photo by Kim Dong Won

아주 잠깐 하늘이 벗겨졌다.
구름만 뽐내던 그 흰색의 멋을
오늘은 나무도 마음껏 뽐낸다.
아니, 나무의 흰색은 은색에 가까워
거의 빛이 날 정도이다.

Photo by Kim Dong Won

언젠가 한번 버스를 타고 내려와
선자령을 오른 적이 있었다.
오늘의 선자령은 그때의 그 산이지만
또 그 산이 아니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산도 그 안에 수많은 표정을 갖고 있다.
산의 표정과 색이 달라지면
산은 그 산이면서 또다른 산이 된다.

Photo by Kim Dong Won

길은 이제 숲으로 접어들었다.
키작은 나무들이 눈은 더 많이 뒤집어 썼다.
키높은 나무들이 얇은 가지에 눈을 받아두었다가
바람이 불 때마다 아래쪽으로 뿌려주었기 때문이다.

Photo by Kim Dong Won

그녀가 길을 가다 뒤를 돌아본다.
하얗게 그녀를 따라가던 길이
잠시 그녀의 발밑에서 멈추었다.

Photo by Kim Dong Won

보통 때라면 난 나뭇가지 너머의 하늘빛을 살폈겠지만
오늘은 시선을 내내 나뭇가지에 고정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Photo by Kim Dong Won

한쪽으로 쏠린 눈의 방향으로 보아
아무래도 이건 바람이 만든 작품인 것 같기도 하다.

Photo by Kim Dong Won

눈이 내린게 정말 맞는 것일까.
혹시 숲이 하얗게 피어오른게 아닐까.

Photo by Kim Dong Won

걷다가 올려다 보고, 걷다가 올려다보고.
눈이 온 숲길에선
그렇게 하염없이 걷기만 해도 마냥 좋기만 하다.

Photo by Kim Dong Won

종종 개나리에게서
노란 지저귐을 볼 때가 있었는데
오늘 이 나뭇가지에선 하얀 지저귐이 들린다.

Photo by Kim Dong Won

나무 둘이 온몸으로 눈을 맞았나 보다.
간혹 눈은 위에서 조용히 지상으로 내려앉은 것이 아니라
이처럼 옆으로 강하게 들이치기도 하는가 보다.
나무에 찰싹 달라붙어 엉기고 싶을 때면
눈은 눈보라가 되어 이렇게 나무의 온몸으로 들이치나 보다.

Photo by Kim Dong Won

나무가 하늘에 대고 외친 것이 분명하다.
오, 백설같이 희디 힌 눈이여, 내게로 오라.
이 넓은 가슴으로 모두 다 받아주마.
그렇지만 나무의 가슴은 숭숭 뚫려있어
나무의 말을 믿고 그 가슴으로 안긴 눈의 상당수는
허방으로 빠져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눈이 허방으로 빠지긴 했지만
나무가 안은 그 가지의 작은 눈만으로도
세상의 눈을 모두 안고 있는 느낌이었다.
나도 세상의 눈을 다 안겠다는 듯이
팔을 벌려 눈을 맞고 싶었다.
그럼 대부분의 눈은 나를 스쳐 다른 곳으로 날아가겠지만
작은 눈송이 하나를 맞은 것만으로도
세상의 눈이 다 내 것인 느낌이 들 것만 같았다.

12 thoughts on “눈과 안개의 하얀 나라 2 – 평창 선자령

    1. 전부 하얀 세상이라 잘 구별이 안되는데 길이 어렴풋이 있어요.
      어찌나 안개가 심했는지 조금만 멀어지면 보이질 않을 정도였어요.

  1. 선자가없는 선자령은 취소!!!
    올겨울 소백산이던 태백산이던 함께했어야하는데…,너무아쉬워요.
    하지만 꿩대신 닭이라고 .., 눈대신 봄이라도 함께했으면합니다.
    형님 하시는일 잘마무리하시고 연락주세요.
    함께하는 즐거운산행 기다릴께요..,

    1. 올해도 진달래나 철쭉이 피는 산으로 놀러갑시다.
      4월 중순쯤. 난 꽃이 있는 산이 좋더라.
      그때까지는 아무래도 바쁠 것 같아요.

    1. 강릉에선 눈길에 차가 미끄러져 사고도 낳다고 하더군요.
      올해 시간 빨리 가네요.
      지난 해와 달리 일이 많다 보니 그런 것도 같고…

  2. 숲 길은 눈이 오든 눈이 오지 않든 걷기에 참 좋지.
    특히 선자령은 걷기에 딱 알맞은 산인 것 같어^^
    눈 사진은 지금 다시 봐도 멋지다..

    1. 선자령 근처의 삼양목장은 차로 돌아도 힘들 정도로 넓다고 하더라.
      지난 사진을 약간 살펴봤더니 눈오는 날 엄청 나가기는 나갔더라.
      그러나 이번 만큼 멋진 풍경은 없더라.

  3. 와핫! 2부네요~
    정말 계절은 그만이(?) 가진 색이 있는 것 같아요.
    (우리말의 계절은 남성인가요? 여성인가요? 갑자기 궁금해지네요)
    눈이 오는 겨울하늘, 겨울바람, 겨울숲, 겨울나무…
    겨울속의 사람들이 보고싶어요!
    겨울숲 속에 포레스트님에 계시네요.^^

    1. 대설주의보 내렸을 때 속초, 백담사(두 번), 오대산, 태백산, 그리고 충청도 장항, 이렇게 내려가 봤었는데 모두 괜찮았어요.
      근데 사진을 찍기는 쉽지가 않아요.
      발이 푹푹 빠지는 데다가 온통 눈밭이니까 앉아 쉴 곳을 찾기가 어렵거든요.
      그래도 마냥 좋기만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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