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안개의 하얀 나라 3 – 평창 선자령

눈이 내리면
그 아름다움을 가장 극대치로 즐길 수 있는 시간은
사실 그리 길지 않다.
내 경험에 의하면 겨우 30분 정도이다.
눈은 나뭇가지나 그 무엇에 얹혀 풍경을 새롭게 빚어내곤 하는데
30분 정도지나면 나무들이 지나는 바람에 가지를 흔들어 눈을 털어내거나
아니면 햇볕이 눈을 투명하게 잠재우기 시작한다.
그래서 눈을 보러 갈 때는 자꾸만 마음이 조급해진다.
3월 17일 토요일, 선자령에 내려갈 때도 그랬다.
그렇게 길을 서둘러 내려간 끝에서
그녀와 나는 원없이 눈을 보았다.
오늘은 선자령의 정상까지 올라간다.

Photo by Kim Dong Won

길이 나무들 사이를 헤치며 산으로 오른다.
보통 때라면 나뭇잎이 덮인 갈색의 길이거나 흙을 그대로 드러낸 길이지만
오늘은 온통 눈으로 덮인 순백의 길이다.

Photo by Kim Dong Won

그녀가 중간에서 넘어져 발목을 다쳤다.
내려가자고 했는데
아픈 발목을 끌고 눈길을 올라간다.
그녀의 발길을 산꼭대기로 유인한 것은
분명 눈이 빚어낸 아름다운 풍경이었을 것이다.
그건 그냥 내려왔더라면
오히려 그 후회가 더 컸을 아름다움이긴 했다.
그녀도 참 못말린다.
아픈 다리를 끌고 눈의 세상, 그 속으로 자꾸만 꾸역구역 들어가다니.
그녀는 이번에 발목의 아픔을 내놓고 눈의 아름다움을 얻어왔다.
아이를 낳을 때도 산통을 하더니
이번에도 아픔 속에서 아름다움을 얻었다.

Photo by Kim Dong Won

“내가 뭘 그녀를 꼬셨다고 그래.”
나뭇가지가 손가락 사이에 물갈퀴처럼 눈을 끼고는
완전히 오리발 내민다.

Photo by Kim Dong Won

오호, 숲이 타고 있었다.
하얗게, 활활.

Photo by Kim Dong Won

하얀 세상의 저 끝도 또 하얗다.
하얀 세상의 이 끝은 눈이 만들어낸 하얀 세상이고,
햐얀 세상의 저 끝은 안개가 만들어낸 하얀 세상이다.
저 끝의 세상을 안개 속에 묻어두고
이 끝의 세상에서 눈을 헤치며 길을 오른다.

Photo by Kim Dong Won

나무 두 그루가 그 윤곽을 선명히 그리며 서 있다.
하얗게 지워질 것 같은데
눈 속에 선 두 그루의 나무는 오히려 그 윤곽이 더 선명하다.
눈은 세상을 모두 하얗게 덮어 지워버리는 것 같지만
나무는 오히려 눈 속에 서서 자신의 윤곽은 더욱 선명하게 지키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소나무는 기댈 구석이 많은가 보다.
눈을 수북히 이고 있는 것을 보면 그렇다.

Photo by Kim Dong Won

안개가 진한 날, 선자령에 오르면
사람들은 그 모습이 아니라 저만치서 그 소리로 먼저 자신들을 알린다.
두런두런 소리가 나는가 싶다 보면
조금있다 드디어 사람들의 모습이 희미하게 나타난다.
안개가 사람들을 삼켰다 뱉았다 하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눈오고 안개낀 날,
선자령은 어디를 보아도 온통 흰색뿐이다.
가까운 곳은 눈이 하얗게 덮어버리고.
먼 곳은 안개가 하얗게 지워버린다.
눈과 안개의 하얀 나라, 그 선자령에서 다른 색은 찾아볼 수가 없다.

Photo by Kim Dong Won

그렇지만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안개는 끊임없이 꼭 한뼘씩 우리에게 길을 내주며,
그와 동시에 또다른 풍경을 선사한다.
산은 한뼘씩 풍경을 바꾸어가며
산꼭대기로 이어진다.

Photo by Kim Dong Won

안개가 점점 더 진해진다.
숲이 저만치서 꿈처럼 흔들리고 있다.
우리도 꿈처럼 계속 산을 올라갔다.

Photo by Kim Dong Won

드디어 선자령 정상에 올랐다.
아무도 없다.
우리 두 사람뿐.
하얀 세상에 그녀가 까맣게 서 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지금 하얀 빛에 물들었을 것이다.

7 thoughts on “눈과 안개의 하얀 나라 3 – 평창 선자령

  1. 눈이 많이 내렸다는 뉴스보며 두분이 가시지 않을까..생각했는데 역시나..^^
    포레스트님 발은 좀 나으셨는지요.
    저 요즘 게을러졌는지 컴을 켤 생각도 안했는데 오늘 핸폰 요금이 어이없이
    많이 나와 조회하러 들어왔다 들렀어요.
    6만원가량 나왔는데 제게는 너무 많이 나온거여서.

    1. 6만원이면 상당히 많이 나왔는데요, 우리 입장에서도.
      저는 한달에 1만5천, 포레스트는 2, 3만원 가량 나오거든요.
      그게 나는 신청도 안한 부가 서비스가 지 멋대로 들어가 있는 경우도 있더라구요.
      포레스트 발목은 이제는 걸어다닐 정도는 되는데 아무래도 한 열흘은 갈 거 같아요.

  2. 눈오면 선자령에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좋더라.
    정상에 오르니 당신과 나, 딱 둘 뿐이구…
    그날의 분위기랑 딱 맞았어. 확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더라….^^

    1. 발목만 안다쳤으면
      내가 원래 가려고 했던 대로
      내려오다가 선자령 중간에서 샛길로 들어섰을 거야.
      그럼 아마도 더욱 기가 막혔을 걸.
      거긴 빛이 잘 안들어서 눈이 왔을 때는 풍경이 엄청 좋거든.
      스윽 잠시 사라지는 기분도 들고.
      올겨울에 눈오면 가보도록 하자.

    2. 거기… 넘 가파르고 무섭당~
      내가 그곳에서 완전 꼬리내린 곳이당~

      그래도 그곳을 통해 옛날가든에 한번 들러서 인사하고 와야 하는데..
      그곳의 할머니 할아버지께 말이야.

  3. 눈이 내리는 겨울숲은 하얗게 타는군요~
    너무 멋진 비유와 가슴 하얗게 타는 겨울숲을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스트맨님~ !!

    마지막 사진은 두분이 함께 있었으면 더 좋았을텐데요~

    1. 삼각대를 갖고 갔거든요.
      그래서 삼각대 세우고 둘이 함께 찍으려고 하는 순간,
      삼각대의 조임 나사가 없는 거예요.
      중간의 어디선가 빠져버린거죠.
      어찌나 황당한지.
      합체신공을 발휘하려다 이번에는 그냥 그녀 사진만 실었어요.
      충무로 나가서 조임 나사만 사와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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