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그동안 내가 눈을 본 것을 손에 꼽으면 수도 없을 것이다.
눈많기로 유명한 강원도에서 자랐으니 겨울은 항상 눈과 함께 였다.
그렇지만 어렸을 때는 눈이 빚어내는 아름다움보다
눈이 내리면 할 수 있는 놀이를 더 좋아했던 것 같다.
눈썰매, 눈싸움, 눈사람 만들기가 그런 놀이들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놀이보다 눈 자체에 자꾸 끌린다.
3월 17일 토요일, 선자령에 내려갈 때,
나를 끌어당긴 눈의 자장 또한
많은 사람들이 그곳의 용평 스키장에서 즐기는 눈의 유희가 아니라
그저 눈, 그 자체였다.
바다에 가서 파도 소리만 들어도 좋듯이
나는 그냥 그녀와 함께 그곳에 가서 흰색만 보아도 좋았다.
오늘은 선자령 정상에서 내려오며 함께 했던 눈의 풍경들이다.
꽃을 기다리시는가.
그렇다면 굳이 봄을 기다릴 필요는 없다.
눈꽃은 어느 꽃보다도 더 아름답다.
그러나 눈꽃의 옆에선 오랜 시간을 견디기 어렵다.
눈꽃의 곁에 있으면 손은 시렵고 몸은 춥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기다리는 봄은
봄의 꽃이 아니라 봄이란 계절의 따뜻함이다.
눈꽃이 내게 말한다.
“너무 싱싱하고 예쁜 꽃을 탐하지 마라.
그러다 얼어죽는다.”
눈꽃은 나를 아름다움으로 현혹해 놓구선
아름다운 여자가 봄의 여자가 아니라
마음이 따뜻한 여자가 봄의 여자라고 속삭였다.
눈꽃은 이렇게 핀다.
가지끝에 햐얀 꽃가루를 다닥다닥 붙여서.
꽃가루가 바깥에서 날아와 가지에 자리를 잡는 꽃은 눈꽃밖에 없다.
대개의 꽃은 가지가 그 끝에서 꽃망울을 터뜨리고
그 꽃망울 속에 꽃가루를 담아두지만
눈꽃은 그와 정반대여서
꽃가루가 바람을 타고 날아와 꽃망울을 하나 둘 빚어낸다.
꽃은 금방 져도 꽃의 추억은 오래 간다.
씨앗들 속에는 대개의 경우 꽃의 추억이 있다.
꽃이 지고, 열매가 맺고, 그리고 겨울이 오면
그때쯤 꽃의 추억은 희미해 지지만
눈이 그 기억을 하얗게 되살려주곤 한다.
눈은 녹고, 그러다 언다.
그리고 그렇게 녹고 얼고 하면서 꽃이 된다.
그렇게 보면 인생도 어렵고 힘들다 나아지기도 하면서
그런 반복 속에서 삶의 이야기를 꽃피우게 될 것이다.
만약 눈꽃같은 인생을 꽃피우려면
특히 삶의 어려운 시절 그 자체가
우리가 피우는 꽃 그 자체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한쪽으로 투명한 얼음을 반짝이고 있는
눈꽃 하나가 내게 그렇게 말했다.
봄엔 날씨가 따뜻하여
꽃이 어렵게 핀다는 것을 잘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땅속 깊은 곳에서 물을 길어올려
싹과 꽃을 틔우려면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눈꽃은 사람들을 추운 날씨 속에 세워두고 그 불편한 자리에서 꽃을 보여준다.
눈꽃이 피는 상황이 쉽지 않음을 알려주며
봄꽃도 어렵게 꽃을 피우고 있다는 것을 슬쩍 알려준다.
아마도 아이를 낳아본 여자들은 그 점을 더욱 잘 알 것 같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눈꽃이 흐드러진 숲길에서 사진을 한장 찍고 싶어했다.
봄엔 이 산에서 꽃이 피면
저 산에서도 꽃이 핀다.
그리하여 이 산과 저 산이 꽃으로 엮이곤 한다.
눈이 온 숲길에선
이 가지에 꽃이 피고,
또 저 가지에 꽃이 피며,
그리하여 온숲이 모두 눈꽃으로 손을 맞잡고 왁자지껄하다.
눈꽃이 아름다운 곳이다 싶으면
그곳의 날씨는 그 산에서 가장 쌀쌀하고 춥다.
선자령에도 갑자기 기온이 차갑게 피부를 파고드는 곳이 두 곳 있었다.
그곳의 풍경이 가장 아름다웠다.
사랑도 눈꽃같은 게 아닌가 싶다.
언제나 변함없는 게 사랑이 아니라
이제 사랑의 계절은 다 간게 아닌가 싶을 때,
때늦은 3월에 하얗게 와서
어느 하루 우리들의 시선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눈처럼,
그렇게 가끔 이제 갔는가 싶었을 때 찾아 오는게 아닌가 싶다.
요즘은 더더욱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그래도 눈온 날 눈사람이 없으면 좀 허전하다.
누군가 내려가다 그 허전함에 시달렸는지
손안에서 조물거려 작은 미니 눈사람을 하나 만들어놓고 갔다.
그 작은 눈사람은 숲길 바로 옆에 앉아 졸고 있었다.
눈사람에겐 차가운 눈 위가 부뚜막처럼 따듯하다.
끄덕끄덕 졸릴만큼.
이제 우리가 차를 세워둔 대관령 휴게소까지 다 내려왔다.
차들이 다니는 길의 눈은 다 녹아버렸다.
나무들이 뒤집어 쓰고 있는 눈은 여전했지만
그것도 이곳에 막 들어섰을 때만은 못했다.
눈은 녹는다.
단풍은 산위에서 산아래로 내려오지만
눈은 산아래서부터 슬슬녹아 산위로 쫓겨 올라간다.
아래로 내려와 보니 산위에서 만난 그 풍성했던 눈은
모두 산자락 아래서 쫓겨 올라온 눈이었다.
겨울엔 눈이 그렇게 산위로 쫓기는 법이 없다.
오히려 눈들이 산자락 아래까지 밀고 내려온다.
그러나 겨울이 끝날 무렵엔 얘기가 달라진다.
이젠 봄이 눈을 산위로 몰고 있었다.
대관령으로 들어갈 때는 외곽 도로를 탔지만
서울로 갈 때는 횡계 시내로 들어갔다.
언젠가 밤에 그 길을 따라 대관령까지 걸어갔던 적이 있다.
그 기억을 더듬어보는 재미를 갖고 싶었다.
그때는 길가의 밭이 모두 무우밭이었는데
지금은 황태 덕장이 들어서 있었다.
멀리 언덕 위의 나무 한그루가 눈에 익어 보였다.
요즘은 여행길에서
낯이 익다는 것이 자꾸만 좋아지곤 한다.
평창 휴게소에서 한시간 정도 자고 무사히 집으로 올라왔다.
4 thoughts on “눈과 안개의 하얀 나라 4 – 평창 선자령”
환상처럼 펼쳐졌던 눈도 이젠 마감이네…ㅜ.ㅜ
이젠 꽃소식을 전해야지.
꽃들이 우리를 부르고 있잖아.
벌써 마지막 회가 되었네요.
이스트맨님과 포레스트님 덕분에 3월의 겨울을 너무너무 아름답게 보았습니다.
한국에 있을때 스키를 배우고 난 후에는 거의 매년 용평에 스키를 타러갔는데 선자령이란 이름은 처음 들었으니 반쪽짜리 휴일만 보내고 왔나봅니다.
이런 멋진 모습도 있었는데 말이죠.
부디 눈얼음에 갖혔던 꽃씨와 꽃봉우리가 얼지 않고 봄을 빛냈으면 하는 바램을 언제나 아름답길 바라는 그곳으로 보내봅니다.
오늘밤은 Snowman이라는 그림동화와 함께 잠에 들어야겠습니다.^^
저희도 반쪽이지요, 뭐. 용평에는 들리질 않고 올라오니 말예요.
그래도 가끔 용평에 들리긴 해요.
다 거기서 거기거든요.
선자령은 부담이 없어서 좋아요. 높기는 높은 데 차를 대관령에 세워놓으니 거의 평지 걷듯이 정상까지 가는 것 같아요.
봄에는 철쭉과 진달래가 필테니 다음 달 중순쯤 한번 다시 가 보려구요.
올해는 고향 영월에도 한번 가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