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물결

Photo by Kim Dong Won
2006년 5월 20일 일산 호수공원에서

호수에 물결이 입니다.
물결이 일면 흔히 사람들은
바람이 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결국 물결을 일으키는 것은 바람입니다.
하지만 난 좀 생각을 바꾸어 보기로 했습니다.
내가 생각을 바꾸어보기로 한 것은
내 경험과 좀 관련이 있습니다.
내 경험으로 보면
가끔 호수는 내 마음의 다른 이름일 때가 있습니다.
이미 ‘내 마음은 호수’라고 읊었던 시인도 있었으니
이런 경험이 새로울 것은 없습니다.
호수에 내 마음이 투영되고 나면
호수의 물결은 그때부터 바람이 일으키는 물리적 파동이 아닙니다.
바람이 오면
호수는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하고
그 떨림이 바로 물결을 만들어냅니다.
난 물결 중에서도 물결과 물결 사이의 골이 아주 잘디잔 미세한 잔물결을 좋아합니다.
그런 잔물결은 남들은 눈치채지 못하는 미세한 자기만의 떨림을 가져다 줍니다.
그 미세한 떨림은 신비롭습니다.
‘이게 뭐지’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할 정도로 그 정체를 알 수가 없지만
나는 질문은 던지면서도 사실 대답은 구하질 않습니다.
그 미세한 떨림만큼 사람을 설레게 하는 것은 없으니까요.
호수는 처음엔 바람에게서 아무 것도 구하지 않습니다.
바람이 오면,
그냥 바람이 왔다는 것만으로
호수는 미세하게 떨리고,
그 미세한 떨림이 물결을 일으키는 통에
스스로의 마음을 스스로에게 들키고 맙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면
이제 호수에 물결을 일으키는 것은
호수의 떨림이 아니라 바람이 되고 맙니다.
그 순간 내가 경험했던 내면의 떨림은 없어지고
물리적 파동이 호수의 표면에서 일렁입니다.
둘 모두 물결의 이름으로 불리지만
둘은 확연하게 다릅니다.
우리는 가끔 호숫가에 앉아 시간을 보냅니다.
바람이 일으킨 물결을 바라보면서.
그리고 호수가 일으키는 내면의 떨림을 기대하면서.

Photo by Kim Dong Won
2006년 5월 20일 일산 호수공원에서

4 thoughts on “바람과 물결

  1. ‘내 마음은 호수’에 연이은 ‘그대 노 저어 오오’에 어울릴 글인대요^^

    두번째 어느 그녀분 사진- 빨간 깃발의 팔랑임, 잔물결의 흔들림, 벗어둔 신발, 경쾌한 분홍허리띠, 바위, 그림자… 왠지 보면 볼수록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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