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조개껍질

Photo by Kim Dong Won
2007년 3월 8일 강원도 속초의 설악해수욕장에서

바다로부터 너무 멀어지면
바다의 기억이 흐릿해 집니다.
사실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지요.
설악산의 대청봉에 올랐을 때의 느낌이야
우리의 작은 몸에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벅차지만
그런 느낌도 산을 내려와 버스를 타고 서울로 돌아오는 그 순간부터
벌써 약간씩 바래기 시작합니다.
그렇다고 사시사철 산이나 바다를 끼고 사는 것도 그럴 것 같습니다.
너무 자주보면 그때는 감각이 무뎌지니까요.
감각이 무뎌지면 가까이 있어도 지워져 있는 것이나 다를바 없습니다.
그러고보면 참, 세상 산다는 게 그렇습니다.
멀어지면 흐릿해지고, 곁에 두면 무뎌지니까요.
이달 초, 속초의 설악해수욕장에 갔을 때
바닷가에서 조개껍질을 하나 보았습니다.
속살은 누구에겐가 다 내주고
껍질만으로 바닷가에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내가 보기에 아주 좋은 곳에 자리를 잘 잡고 있었습니다.
가끔 바닷물이 조개가 있는 자리까지 밀고 올라와선
조개를 바닷물로 적셔주고 있었으니까요.
바닷물은 보폭이 일정치를 않아
올 때마다 들고나는게 들쭉날쭉이었습니다.
어떨 때는 그 걸음이 조개가 있는 곳에서 턱없이 모자라
헛물을 켜도 한참 켜는 것 같았습니다.
그 들쭉날쭉한 거리는 무엇인가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그 말을 할 듯 말 듯 주저주저하는 수줍음 같았습니다.
그러다가는 갑자기 몸을 길게 뻗어
순식간에 조개가 있는 곳까지 밀고 올라왔습니다.
에라, 모르겠다, 밀고 올라와선 무슨 말인가를 남겨놓고
줄행랑을 놓는 느낌이랄까요.
그러면 이제 막 햇볕에 등을 말리려고 하던 조개껍질은
온통 바닷물을 뒤집어 쓰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바닷물에 젖은 조개껍질에서
바다의 기억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바닷물 속에 몸을 담고,
사시사철 젖어있을 때
조개에게 저런 선명한 바다가 있었을까 싶었습니다.
너무 가까이 있으면 바다가 무뎌지고
너무 멀리 있으면 바다가 흐릿해 지지만
가끔 밀려와 온몸을 적시는 바다는
그때마다 더욱 선명해지곤 했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7년 3월 8일 강원도 속초의 설악해수욕장에서

4 thoughts on “바다와 조개껍질

    1. 난 백을 흰백으로 슬쩍 바꿔 읽었어요.
      흰파도라서.
      오, 아주 좋은 착상이예요.
      다음에 바다에 갔을 때 요런 사진을 하나 더 찍어서
      왜 푸른 바다가 흰색의 파도가 되는지 한번 생각해 봐야 겠어요.
      그러고보니 조개는 대개 흰색이네요.
      바다가 조개의 색을 갖고 싶어서 흰색으로 부서진 동화를 엮을 수 있을 거 같아요.
      기억해 두었다가 써먹어야 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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