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김현에게 문학은 “써먹지 못하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쓸모 없는 것이 문학이다. 이는 사람들에게서 즉각적인 의문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문학으로부터 감동받고 위로를 얻는 일은 흔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현이 쓸모 없다고 했을 때 그 쓸모는 심리적 차원의 것이 아니라 실질적 차원의 것이다.
그는 『한국문학의 위상』이란 책에 실린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글에서 그 점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문학을 함으로써 우리는 서유럽의 한 위대한 지성이 탄식했듯 배고픈 사람 하나 구하지 못하며, 물론 출세하지도, 큰 돈을 벌지도 못한다. 그러나 그것은 바로 그러한 점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인간에게 유용한 것은 대체로 그것이 유용하다는 것 때문에 인간을 억압한다. 유용한 것이 결핍되었을 때의 그 답답함을 생각하기 바란다. 억압된 욕망은 그것이 강력하게 억압되면 억압될수록 더욱 강하게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문학은 유용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억압하지 않는 문학은 억압하는 모든 것이 인간에게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을 보여준다. 인간은 문학을 통하여 억압하는 것과 억압당하는 것의 정체를 파악하고, 그 부정적 힘을 인지한다.
—김현,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한국문학의 위상』, 문학과지성사, 1977)
유용한 것이 인간을 억압한다는 말은 또다시 사람들의 의문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얘기이다. 왜냐하면 유용한 것들은 그 유용함으로 우리들을 억압으로부터 해방시켜 주기 때문이다.
가령 코로나 백신은 얼마나 유용한 것인가. 그것은 우리의 일상을 짓누르고 있던 코로나 바이러스의 억압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 준다. 물론 김현은 그것이 없었을 때의 답답함을 생각해보라고 했다. 답답함을 넘어 우리는 두렵기까지 했다. 하지만 억압이 사실 코로나 백신이 없음으로부터 생긴 것은 아니다. 억압은 코로나 바이러스로부터 온 것이다. 이런 논리선상에 서면 김현의 관점은 이해가 어려워진다.
나는 이를 유용함의 권력화로 이해를 하는 편이다. 유용한 것들은 그 유용함을 권력화한다. 세상에서 가장 유용하기로 따지면 돈만한 것이 없다. 돈은 곧 힘이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주저없이 이에 동의할 것이다. 힘이 된 돈은 사람들을 억압한다. 해서는 안될 일도 돈이 시키면, 좀 더 구체적으로 돈을 가진 자가 시키면 나쁜 일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권력이나 돈을 가진 자의 횡포를 일컫는 갑질도 알고 보면 돈의 힘에서 나온다. 말하자면 돈이라는 유용함의 억압이다. 돈이 쓸데 없는 것이었다면 그런 힘은 얻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김현이 말한 유용함의 억압을 그렇게 이해를 했다. 문학은 그런 면에서 권력이 될만한 실질적 쓸모가 없다. 좀 더 이해하기 쉽게 말을 바꾸자면 내가 좋은 글을 한 편 썼다고 하여 그 글을 돈처럼 들고 나가서 동네의 빵가게에 들린 뒤, 내가 지금 돈이 없는데 대신 오늘 쓴 좋은 글을 돈 대신 드리고 빵을 가져갈 수 없을까요라고 말을 할 수가 없다. 그러면 거의 미친 놈 취급받기 딱좋다. 내가 오늘 좋은 글을 썼다고 그 글을 앞세워 갑질을 한다는 것도 있을 수가 없다. 글은 권력화할 수 있는 쓸모가 없다.
김현이 말한 쓸모없음의 문학론이 가진 또다른 매력은 이 관점을 사랑으로 옮겨갈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김현식으로 이 물음에 답을 한다면 사랑이란 유용함을 권력화하지 않는 것이다. 또 유용함을 욕망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쓸모를 갖고 있다. 내가 가진 쓸모와 상대방이 가진 쓸모를 서로 주고받을 때 그것은 거래이자 욕망이지 사랑이 아니다.
우리는 자주 착각에 빠진다. 거래와 욕망을 사랑으로 착각을 하는 것이다. 쓸모없는 것이 나를 충족시킬 수 있을까. 문학에서 그런 경우가 발생하고 또 사랑할 때도 그런 경우이다. 사랑할 때 쓸모는 필요가 없다. 그저 존재가 옆에 있기만 하면 된다. 상대는 나에게 쓸모있는 존재일 필요가 없다. 옆에만 있는데도 충족이 되는 신비로운 일이 벌어진다. 우리가 사랑할 때는 쓸모로 상대를 재지 않기 때문이다. 또 나의 쓸모로 상대를 억압하려 들지도 않는다. 나의 쓸모는 오직 상대를 채워주기 위해 있는 것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남편이 밖에서 돈 벌어 오기 위해 고생하고 있으니까 집안의 여자들이 잘해줘야 한다는 얘기는 사랑에 반하는 얘기이다. 사랑이란 돈이란 쓸모에 반기를 들고 그의 쓸모를 내 사랑과 바꾸면서 내 사랑을 거래로 전락시키는 짓 따위를 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잘해주는 이유가 사랑이라면 그가 벌어오는 돈이나 돈을 벌기 위해 하는 고생은 아무 이유가 되지 않는다. 그러니 사랑할 때만큼은 돈벌기 위해서 고생하고 있으니 잘해주라는 말은 입에 올려선 안된다.
세상이 당연한 듯 입에 올리는 얘기들이 때로 사랑에 치명적이다. 우리가 사랑을 아는 듯 하지만 사실은 잘 모르고 있다는 얘기도 된다. 그런 세상에서 김현이 말한 쓸모없음의 문학론은 문학만 밝혀주는 것이 아니라 사랑도 밝혀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