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도쿄에서 동백을 보았을 때, 나의 반응은 아니, 동백이 왜 일본에도 있어 였다. 동백과 나 사이에 맺어진 끈끈한 정서적 유대 관계가 동백이 우리나라 이외의 곳에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렵게 만들고 있었다는 얘기도 된다. 또 하나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은 분홍 동백을 비롯해서 갖가지 색의 동백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내게 동백은 붉은 색이어야 했다. 다른 색을 허용한다고 해도 흰색 하나에 불과했다. 하지만 도쿄로 놀러간 내게는 색은 낯선데 모양은 동백인 꽃이 분명 눈앞에 있었다. 그 낯섬 때문에 동백을 보고도 동백을 확신하질 못했다. 결국 나는 동백을 꽃이 아니라 매번 잎으로 확인하고 있었다. 잎은 분명한 동백이었다. 마치 피부 색깔이 달라도 피는 똑같은 것처럼 색은 달라도 동백의 잎은 항상 똑같았다. 동백의 잎은 인종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동백임을 확인해주는, 바깥으로 내민 초록의 혈액이었다. 인종의 화합이 힘들듯이 모든 동백의 화합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도쿄의 분홍 동백이 계속 낯선 꽃에 머문 것은 아니었다. 자주 보게 되면서 도쿄의 분홍 동백은 잎의 도움을 얻어 서서히 동백이 되어 갔다. 그렇게 분홍 동백은 잎이 꽃을 내 마음에 들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