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못견디게 바다에 가고 싶을 때가 있다.
어떤 시인은 그럴 때면 바람이 흔들고 지나가는 커튼이
물결처럼 보인다고 했다.
2003년 9월 21일은 일요일이었다.
그날 나는 그녀와 함께 차를 몰고 태안으로 갔었다.
만리포와 천리포, 백리포 해수욕장을 모두 돌아보고
모래언덕으로 유명한 신두리까지 갔었다.
거의 그믐 때라 날이 저물자 세상이 무척이나 어두웠다.
그러나 그 날따라 어둠은 푸근했다.
만리포 해수욕장의 물빛.
보통 서해안에선 이렇게 투명한 바다를 보기가 어렵다.
그러나 여긴 동해보다 더 투명하다.
이쪽으로는 두번갔었는데
학암포 해수욕장에 갔을 때도 물의 투명함은 마찬가지였다.
백리포 해수욕장.
지금은 어떻게 변했을지 모르겠다.
비포장의 작은 숲길을 따라 내려가야 하는 작은 해수욕장이었다.
백리포 해수욕장의 왼쪽 풍경.
잠수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돌들이 일렬로 줄을 서서 바다로 가고 있었다.
그날 바닷가엔 아무도 없었고,
그녀는 멋있었다.
사람이 없으면 갑자기 용감해진다.
백리포 해수욕장의 오른쪽 반쪽을 배경으로 삼아
둘이 몸을 밀착시키고 사진을 하나 찍어 두었다.
해변의 행위예술.
게나 작은 조개들이 모래밭에 그려놓은 문양들.
나는 그들에게 해변의 예술가란 작위를 붙여주었다.
해변의 예술가들에게 질세라
파도가 만들어놓은 문양들.
혹은 모래가 안고 사는 파도의 추억.
떠나면서 근처 언덕에서 내려다본 백리포 해수욕장.
내려다보기 좋게 언덕에 정자를 만들어놓았다.
바닷가에서 줍는 조개엔 파도의 물결이 새겨져 있다.
우리는 사실 조개를 줍는다기 보다 그곳에서의 추억을 줍는다.
저녁 때엔 그 조개에 붉은 노을까지 곱게 물든다.
조개를 주을 때 우리도 그 저녁빛에 물든다.
신두리 해변의 밤풍경.
자세히 보면 수평선에 불빛 두 개가 걸려있다.
가운데 것은 배의 불빛이고, 오른쪽은 등대이다.
어두운 바닷가에 서 있으면
파도가 하얗게 이빨을 내보이며 겹겹이 층으로 밀려온다.
그렇게 30분 정도 파도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해변이 밀리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동해와 달리 서해의 태안반도 북쪽 해안에서 느낄 수 있는 그곳만의 매력이다.
교통이 불편해서 차를 갖고 가지 않으면
이동하기가 쉽지 않다.
4 thoughts on “만리포와 백리포 해수욕장, 그리고 신두리에서”
여행가고 싶어지네요.
사람도 자연의 일부가 되어 있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예요.
잘 지내죠? 얼굴 한번 본다는게 자리도 못만들고. 그냥 무조건 떠나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좀 멀리 떠나고 싶어요. 1시간 정도 배를 타야 하는 남해안 어딘가의 섬으로.
저 조개줍는 모습사진 정말 예술이네요. 뒷쪽의 새들은 갈매기겠죠? 은은하고 넘 멋져요.^^
저도 만리포를 한겨울에 간적있는데 그때 엄청난 파도가 밀려오는거보고 가슴까지 시원한 쾌감을 맛보았어요.
속 답답할때 가면 뚫릴것같은 바다였죠.^^
갈매기 맞아요. 그녀가 사진보더니 신두리에 다시 가고 싶다고 하는 군요. 한번은 저녁 때쯤 신두리의 바닷가에 서 있었는데 여기저기서 고기들이 하늘로 뛰어오르고 있던 적도 있었죠. 지금은 많이 개발되어 풍경이 다를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