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어떻게 하다 나에게로 온 것이었을까.
나의 글은 그녀에게 유혹이었다. 그녀에게 나의 글은 달콤했으며, 그 달콤함은 읽고 있노라면 그녀를 그 속으로 빨아들이는 흡인력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나에겐 아주 의외의 일이었다. 왜냐하면 세상의 여자들은 내 글을 지겨워했기 때문이다. 나는 세상의 여자들 중 몇몇에게 “내가 연애편지를 보낼테니 한번 받아볼래?”라는 제안과 함께 편지를 썼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나는 그것이 내 마음의 표현이 아니라 글이란게 얼마나 큰 위력을 가지는가에 대한 실험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여자들은 거의 다섯 번 정도를 넘기지 못했다. 편지를 읽고 있노라면 자꾸만 내가 그녀들을 사랑하는게 아닌가 하는 혼란에 처하게 된다고 말했다. 결국 다섯 번만에 돌아오는 반응은 더 이상 편지를 보내지 말라는 것이었다. 물론 나는 편지를 보내지 않았다. 그녀도 나의 편지를 받았다. 그녀는 편지를 보내지 말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내 편지는 항상 너무 길어 받는 사람들의 일반적 반응이 읽는데 너무 지겹다는 것이었는데 그녀는 그것을 지겨워하지 않고 즐겁게 읽는 것 같았다. 의외였다. 내게 글밖에 없던 시절, 그녀는 내 글의 유일한 독자였다. 어느 날부터 내가 보내는 편지 속엔 내 마음이 실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깊은 사이가 되었다. 그녀와 결혼했을 때, 그녀가 챙겨온 물건 중에 내가 보냈던 편지들도 함께 있었다.
나의 글은 그녀에게 상처였다. 어느 날부터 내 글은 그녀에게 유혹이 아니라 무기가 되어 있었다. 송강호의 말투를 빈다면 “이건 배반이야, 배반, 배반”이었다. 그녀는 유혹의 글에는 행복했으나, 무기가 된 글 앞에선 아파하고 힘들어했다. 유혹할 때의 내 글은 그녀를 향했지만 무기가 되었을 때의 내 글은 그녀를 겨냥했다. 유혹할 때의 내 글은 그녀를 따뜻하게 포옹하려 가슴을 열고 있었지만 무기가 되었을 때의 내 글은 그녀의 가슴을 예리하게 찔러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도록 그녀를 무너뜨리려 했다. 그녀는 유혹의 달콤함과 무기의 상처 사이를 오고가며 나의 옆에서 살았다.
나는 유혹의 글을 쓸 때는 그녀에게서 내 글의 위력을 실감하지만 무기의 글을 쓸 때는 내 글의 위력에 절망한다. 유혹의 글은 말 그대로 유혹하기 위해서 쓴다. 그녀가 그 유혹에 넘어온 것을 보면 유혹의 글은 분명히 효과가 있었던 셈이며, 그것은 지금도 여전하다. 무기로서의 글은 상대방을 정복하려 한다. 그 정복은 말하자면 복종의 삶을 요구한다. 그러나 무기로서의 글은 교묘한 것이어서 그 복종을 나의 강요가 아니라 그녀 스스로의 헌신으로 바칠 것은 꿈꾼다. 내가 그녀를 향하여 무기 삼아 글을 든 것은 한두 번이 아니었으나 그때마다 그녀는 아파하고 힘들어했을 뿐, 내게 정복당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나는 유혹의 글과 무기의 글은 전혀 상반된 것이지만 그녀에 대해서만은 전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내게 있어 그녀는 사랑하기 때문에 유혹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아픔을 주는 이율배반의 존재이다. 내가 가끔 세상에 대해 칼을 뽑아들 때면, 그리고 그 칼이 나의 글일 때면, 그것을 추동하는 힘은 증오이다. 그때의 증오는 상대와 같이 살려는 공존의 욕망이 아니라 상대와는 다시는 얼굴을 보지 않겠다는 결연한 단절의 의지이다. 그 때문에 나는 내가 그녀를 향하여 칼을 뽑아들었을 때, 그리고 그 칼이 나의 글이었을 때, 그것을 부추기는 힘을 증오가 아니라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것은 단절이 아니라 같이 살기 위해 싸우는 것이기 때문에.
그녀는 그 유혹과 배반의 글 사이에서 여전히 내 곁에 살고 있다. 때로는 유혹의 글 앞에서 행복하고 즐거워하며, 또 때로는 칼의 글 앞에서 아파하고 힘들어하며, 그러나 정복당하지 않은채.
4 thoughts on “글의 유혹, 그리고 배반”
김동원님과 통통이님은 천생연분이시네요.^^
전 글을 100%믿지 않아요.
물론 유난히 끌리는 글들이 있긴하지만 그조차도..
아마 중학교 다닐때부터였나봐요.
제가 쓴 일기를 보고 스스로 가식덩어리라 생각해서
찢어버리길 몇번..
국어 선생님께선 잘 쓴 일기라고 칭찬해주셨지만 제글이
자신을 치장하는데만 급급한걸 스스로 알고 있었기때문에 지금까지 남아있는 일기장이 없네요.
그래서 글 쓰는 분들을 더 존경해요. 그분들은 저같은 생각은 들지않는 좋은 글들을 썼기때문에 떳떳하게 내보이는것일테니까요. 맞나요?^^
가을소리님은 작가적 소양이 있으신 분 같아요. 얘기를 듣고 보니. 작가들은 글을 치장하는데 뛰어난 사람들이라고 보심이 좋으실 듯. 예전에 “Shakespeare in Love”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진실은 무대 위에만 있다는 얘기가 나왔던게 기억나네요. 저는 진실은 글 속에만 있다고 믿는 편이예요. 물론 그러기 위해선 잘 쓴 글이어야 하긴 하지만요.
에구…감히 쳐다볼수도 없는 높은곳인데요.^^
글속에 진실이 있다고 믿으시는 분이니 그 글들이
진실되지 않을수없겠죠. 소설은 쓰실생각없으신지요?
소설은 역량이 안되서 어렵구, 그냥 문학평론이나 계속 썼으면 좋겠어요. 그것도 시간이 안나서 계속하기가 어려운게 현재로선 좀 슬퍼요. 그나마 블로그가 있어서 다행이예요. 생각날 때마다 글을 쓸 수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