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아니, 시간을 보니 벌써 오늘이다.
그러니까 오늘 강원도 일부 지방에 눈이 온다는 소식이다.
이제 가을은 다 지나고
겨울의 초입으로 들어선 느낌이다.
오래간만에 어제 그녀와 함께 퇴촌의 남한강변으로 나갔다.
비포장이던 시절에 자주 가던 곳이었지만
도로가 포장되고 차들이 늘어나면서 한동안 발길을 끊었다.
간만에 찾은 나를 겨울 초입의 남한강 풍경이 반겨주었다.
바람이 휑하니 지나는 빈가지들을 실핏줄처럼 바라보다 돌아왔다.
벤치 위에서 떨어진 낙엽 하나가 햇볕을 쬐고 있었다.
쌀쌀한 날씨는 낙엽을 바라보는 우리의 느낌을 더욱 을씨년스럽게 만든다.
낙엽이 주는 맨몸의 느낌 때문에
낙엽의 주위로 고여있는 햇볕의 따뜻함이 안스럽게 느껴진다.
손을 모아 햇볕의 따뜻함을 나뭇잎 위로 포근하게 쌓아주고 싶었다.
아직 인연의 끈을 놓지 못한 나뭇잎이
여전히 가지 끝에 매달려 있었다.
하지만 둘은 그렇게 같이 있었지만
가지나 잎이나 모두 말이 없어 보였다.
말이 없자 둘의 사이가 더욱 휑하니 비어보였다.
빈자리를 슬그머니 하늘이 채우고 있었다.
나뭇잎은 모두 제 몸을 제 속으로 돌돌 말고 있었다.
겨울은 우리나 나뭇잎이나 모두 제 속으로 몸을 움츠리게 만든다.
나무는 여름이나 지금이나 항상 제 자리에 붙박혀 있다.
붙박혀 있는 자의 꿈은 하늘을 훨훨 날아오르는 자유로운 비상이다.
그래서 나무는 언제나 비상을 꿈꾼다.
그 나무의 꿈이 오늘 새들을 불러들였다.
새들은 이파리를 모두 떨군 나무에서 오늘 나무의 열매가 되었다.
그러니까 새들이 날아오르면
그건 새가 아니라 나무에서 영근 비상의 꿈이다.
이파리가 무성한 한 여름엔 나무가 꿈꾸는 그 비상의 꿈을 보기 어렵다.
이파리가 나무의 꿈을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파리를 모두 떨구고 나면
나무가 꿈꾸는 그 비상의 꿈이 완연하게 드러난다.
새가 나무에서 영근 비상의 꿈이란 얘기는 괜한 소리가 아니다.
한해내내 나무가 그 꿈을 가꾸었다는 사실은
나무가 이파리를 모두 떨구었을 때
완연하게 드러나는 가지끝의 새둥지에서도 분명하게 확인이 된다.
새들은 나무가 내준 가지로 그 새둥지를 엮었다.
나무의 꿈이 없었다면 새들은 가지를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새둥지는 나무의 꿈으로 엮여진 둥지이다.
그러니까 이파리는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드디어 지상을 향하여 날아오르는 나무의 꿈이다.
더 깊이 파고 들면,
강의 한가운데 섬이 가꾼 나무는
섬이 꿈꾸는 비상의 꿈이다.
섬이 비상을 꿈꿀 때 그곳에서 나무가 자라고,
나무가 비상을 꿈꿀 때 그 나무에서 잎이 피어난다.
생각을 그렇게 밀고 나가면
섬을 마주한 강변에서
마른 몸을 버석이며 점점 말라가고 있는 갈대들도
모두 비상의 꿈을 갖고 있다.
그렇게 세상의 붙박힌 것들은 모두 비상을 꿈꾼다.
강의 한가운데 있거나
아니면 강변에 있거나 그에 상관없이.
나무가 이파리를 모두 떨구고 직립의 형상을 분명히 했을 때,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는 한해 동안 가꾼 삶의 종언이 아니라
사실은 나무가 항상 간직하고 잊지 않았던 그 꿈의 실체를 볼 수 있다.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지를 향하여 날아오르는 나무의 꿈이라는 사실은
연못의 힘을 빌면 쉽게 확인이 된다.
연못은 가끔 하늘을 그 안에 담아 세상의 위아래를 정반대로 바꾼다.
그 때면 하늘은 나무들의 위쪽이 아니라
뿌리 아래쪽의 대지에 그 거처를 둔다.
그러니 이 겨울을 따뜻하게 넘겨볼 일이다.
낙엽이 떨어졌다고 그리 슬퍼할 일이 아니며
마른 몸을 뒤척이는 강변의 여린 갈대도 슬픈 것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붙박힌 그 모든 것들에겐 올겨울에도 여전히 비상의 꿈이 있기 때문이다.
꿈이 있는 한 세상은 견뎌볼만하다.
나는 올겨울도 나무와 함께 비상을 꿈꾸며
달콤하게 이 겨울을 날거다.
겨울을 나기 위해 올겨울엔 곳감을 챙겨두려 한다.
이제 내게 곳감은 감나무가 가꾼 비상의 꿈이다.
나는 그걸 먹을 때마다 감나무가 꿈꾸었던 그 달콤했던 비상의 꿈까지 함께 맛볼 거다.
4 thoughts on “겨울의 문턱에서 – 경기도 퇴촌의 남한강변”
언어의 연금술사!
카메라 덕에 사진찍을 수 있고, 사진을 찍으니 묻혀두었던 언어들을 그나마 끄집어 낼 수 있는 것 같아요. 어제는 그냥 한강변을 따라 한없이 걷고 싶었는데 바빠서 차로 휙 한바퀴 돌고 들어왔어요.
이제 겨울이군요.
기왕 겨울된거 눈이나 얼른 보고싶네요.^^
아무리 우중충한 겨울도 눈이 오면 무지 들뜨게 되잖아요.^^
저 곶감 한다발 사다놓고 하나씩 따먹으면 겨울이 쉽게갈까..^^
근데 곳감 가격이 만만칠 않아요. 100개를 엮어놓은 것이라는데 8~10만원 정도 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