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 그물

Photo by Kim Dong Won
2007년 5월 9일 우리집 마당에서
배나무잎

햇볕이 쨍하고 부서지자 얼굴이 따가왔습니다.
눈도 부셨구요.
얼른 나무 그늘로 숨었습니다.
햇볕을 나무잎이 걸러줍니다.
고개를 들어보니 나무잎의 저편에서 햇볕이 투명하게 일렁입니다.
그리고 나뭇잎은 말갛게 비칩니다.
좀더 가까이서 들여다 보았더니
처음엔 쩍쩍 갈라진 메마른 땅 같습니다.
하지만 갈라진 땅이라고 생각하니 초록과 어울리질 않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이번에는 촘촘한 그물같습니다.
나뭇잎 그물! 오, 이거 느낌 좋습니다.
나무가 나뭇잎 그물을 쳐두면
나뭇잎에 햇볕 물고기가 걸려듭니다.
얘기에 들으니까
나무는 그렇게 나뭇잎 그물을 치고 햇볕 물고기를 잡아서
그 즉석에서 요리를 한다고 하더군요.
갖은 양념으로 요리를 해서 엽록소라는 음식을 만든다는 거였어요.
그 음식을 만들 때면 산소 향기가 난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앗, 이게 어찌된 일이죠.
갑자기 세상이 푸르게 일렁이는 바닷속이 되어 버렸습니다.
빛으로 넘실대는 바닷속은 너무도 투명합니다.
아무래도 이제부터는 그냥 거리를 걸어도 걷는게 아닐 듯 합니다.
걷기만 해도 바닷속을 유영하는 기분일 것 같아서요.
햇볕이 쨍한 날엔 잠깐 나무의 푸른 그늘 속으로 몸을 맡겨볼 일입니다.
그럼 나무가 머리맡으로 나뭇잎 그물을 펼쳐들고
그 순간 세상이 햇볕 물고기가 몰려다니는 투명한 바닷속으로 변하니까요.
물론 욕심내진 마세요.
햇볕 물고기는 나무의 몫이니까 괜스리 그것 잡으려 손내밀진 마시라구요.
그냥 고기잡이는 나뭇잎 그물에 맡겨두고
투명한 바닷속의 유영을 즐기시라구요.

Photo by Kim Dong Won
2007년 5월 9일 우리집 마당에서
감나무잎

4 thoughts on “나뭇잎 그물

  1. 이번 봄부터는 꽃도 꽃이지만, 잎도 눈에 훅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풀잎도 모양이 각자 개성있게 멋스럽더라구요.
    그런데 굉장히 접사가 많이 되네요, 선명한 가까움.
    한참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잎맥 따라 미끄럼틀 타겠어요.

    1. 제가 갖고 있는 렌즈 중에서 가장 비싼 렌즈 – 105mm 마이크로 렌즈로 찍은 것이거든요. 다들 마크로라고 하는데 니콘에서는 마이크로라고 하죠. 30mm와 함께 제가 좋아하는 렌즈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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