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2004년) 5월 7일에 나는 그녀와 함께 가평의 아침고요 수목원에 갔었다.
그곳은 꽃을 보려면 4월 중순이 가장 좋다고 했다.
그 전에 한번 갔었으니까 좋은 시절이 오기 전에 갔고,
또 좋은 시절이 간 뒤에 간 셈이다.
그러나 그곳은 어느 때 가나 꽃들이 지천인 곳이다.
겨울이라 아무래도 요즘의 분위기가 칙칙한 것 같아서,
사진이 일으켜 세워주는 강력한 추억의 힘을 빌려 5월 초순의 그 순간으로 날아갔다.
철쭉이야.
봄이면 어김없이 우리 곁을 찾아오는 꽃이지.
봄은 사실 초록이 길을 안내하고,
그러면 철쭉이 그 길을 분홍빛으로 환하게 밝히는 계절이야.
분홍의 빛만으로도 봄을 밝히기에 충분했지만
어떤 철쭉은 그것만으론 양이 차질 않았어.
그래서 제 몸을 아래로 축 늘어뜨리고
바람에 불 때마다 분홍의 종소리를 봄의 길에 뿌려놓으려 했지.
어떤 꽃은 펑하고 폭죽을 터뜨리며
봄의 길을 밝히려 했어.
꽃이 봄의 길을 밝히는 빛이란 내 얘기는 괜한 소리가 아니야.
나는 가끔 벌이 정말 앞을 볼 수 있는지가 의심스러워.
아무리 살펴봐도 눈동자가 보이질 않잖아.
꼭 무슨 너무 진해서 앞이 잘 보이지도 않는 선글라스를 쓴 것 같아.
그래도 용케 꽃을 찾아가는 것을 보면
꽃은 빛이 분명해.
눈을 감으면 세상의 형상은 모두 까맣게 지워져 버리지만
그래도 빛은 지워지지 않고 망막의 바깥에서 하얗게 어른거리잖아.
벌들에게 세상은 온통 까맣고,
꽃들이 피어날 때 그 눈에 세상 여기저기 점점이 흩어진 빛만 하얗게, 노랗게, 혹은 빨갛게 보이는 것인지도 몰라.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겨우내내 보이지 않던 벌들이
봄에만 그렇게 분주해 지는 거겠어.
이건 호접란이라고 하는 것 같더군.
뭐, 굳이 이름을 확인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이 꽃을 보면 나비를 연상할 것 같아.
어쩌다 이런 모습을 지니게 된 걸까.
혹 날고 싶은 꿈이 영글어 이렇게 된 것이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난 다음엔 이 꽃을 보면
사람들 몰래 목을 뚝 꺾어서 높은 언덕으로 데려갈거야.
그리고 정말 아득하게 날아가도록
저 아래쪽 하늘로 힘껏 던져줄거야.
음, 내 생각이 틀렸는지도 몰라.
난 나는 것에 너무 집착을 하고 있어.
장자가 말했다지 않아.
꿈 속에서 나비가 되었더니 자신이 나비인지,
나비가 자신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고.
그래, 호접란의 꽃은 자신이 나비인지, 나비가 자신인지 모르는 나비의 꿈인지도 몰라.
그렇다면 꽃의 곁에 있을 때는 숨을 죽여야 해.
꽃들의 꿈이 깨지 않도록 해야 하니까.
그렇다면 이 꽃의 꿈은 무엇일까.
혹 순백의 꿈이 아닐까.
쉿, 조용히.
꽃의 꿈이 깨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
그러니까 꽃은 “꿈꾸는 식물”이야.
이외수의 소설 제목을 가져다 써먹어 버렸네.
그 소설의 내용은 내 얘기와는 전혀 달라.
그래도 나중에 표절 문제로 골치 아플지 모르니 밝힐 건 밝혀놓아야 해.
어쨌거나 꽃은 “꿈꾸는 식물”이야.
꽃이 잠자면서 꿈을 꿀 때는 빛을 내.
어때 세상은 어두워도 꽃은 환하지?
그야 꽃은 빛이니까.
꽃이 그렇게 빛을 낼 때는
작은 빛을 한움큼 모아 봄을 밝힐 때도 있어.
분홍빛이 한움큼 빛날 때는 정말 예쁘더라.
누구나 한참을 들여다 보게되.
이건 튤립이야.
빛을 꽃봉오리 속에 담아두는 꽃이지.
아직도 내 말이 믿기질 않아?
그렇다면 높은 곳에 올라가 꽃의 세상을 한번 내려다 봐.
어때?
태양볕이 너무 강해 모든 빛이 묻혀버리는 한낮에도 그곳이 환하지?
꽃은 분명 빛이라니까.
그리고 그 빛은 꽃들이 잠자며 꿈을 꿀 때 나온다니까.
세상은 생각하기 나름 같아.
그러니 내년에 봄이 왔을 때 꽃을 그냥 예전처럼 예쁜 꽃으로 지나치지 말아.
그건 빛이고, 또 꿈이니까 말이야.
그렇게 보면 세상이 달리 보여.
정말이야.
저 나무를 좀 봐.
다들 초록을 피워올리는데
저 나무는 초록을 뒤집어 쓰고 있어.
마치 받쳐든 우산에 온통 초록 빗방울이 흥건한 느낌이야.
꽃이 빛이고 꿈인 세상에선
나무도 새롭고 재미나게 보여.
어디 그뿐이야.
저기 저 민들레를 좀 봐.
떠난 자와 남은 자로 삶이 갈라져 버렸군.
지난 바람에 같이 떠났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우리에게 이별의 슬픔이 없다면 또 삶의 이야기가 얼마나 밋밋하겠어.
아마 조금 기다리면 바람이 떠나간 민들레 씨앗의 안부를 실어다 줄거야.
내년에 봄이 오면 뭐할거야?
꽃구경 갈거라구?
아니야, 내년에는 꽃구경가지 말고
꽃의 빛이 밝히는 봄길을 산책하고,
또 조용히 숨을 죽인채
꽃의 꿈을 한번 들여다봐.
그 분홍의 빛과 꿈이 더 아름답게 보일 걸.
나는 봄이 오면 뭐할 거냐구?
나는 내년 봄에는 꽃의 바다로 풍덩 뛰어들거야.
왜냐하면 봄은 항상 해변의 모래밭만 핥던 바다가
이제 꽃의 무리들을 앞세워 산과 들에 넘실대는 계절이거든.
봐!
꽃의 파도가 밀려오고 있잖아.
나는 내년에는 저 파도에 풍덩 뛰어들거야.
4 thoughts on “빛과 꿈이 피어나던 그 봄의 추억 – 가평 아침고요 수목원에서”
눈내리는 이 밤이 아쉬워 자유롭게 시 하나 쓰고 있는데
마침 필요한 사진이 있었네요. ^^
나는 내일 일찍 일어나서 마당의 눈부터 찍을 생각이예요.
눈사진은 강원도의 백담사랑, 예전에 집의 마당에서 찍은게 이 블로그의 어딘가에 있을 것 같아요.
겨울에 봄꽃향기 맡게해주셔서 감사해요.^^
오늘 밤은 따뜻한 봄꿈을 꾸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