띄엄띄엄 떨어져 있는 문장들 – 이수명의 시 「이유가 무엇입니까」

시인 이수명은 그의 시 「이유가 무엇입니까」를 제목과 똑같이 “이유가 무엇입니까”를 묻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어지는 말 또한 또 다시 질문이다. 시인은 이렇게 묻고 있다.

구겨진 신발 속으로 들어가다 말고 원인들은 무사히 지냅니까.
—「이유가 무엇입니까」 부분

첫 두 문장은 이어져 있지만 따로 노는 느낌이다. 그 때문에 각각의 문장을 각각 따로 읽을 때는 아무 무리가 없지만 두 문장을 이어서 읽을 때는 시를 읽는 우리의 호흡이 매끄럽게 이 문장에서 저 문장으로 건너가질 못하고 삐걱거린다. 그럴 때면 사이가 크게 벌어져 있는 징검다리를 건너다 물에 빠진 기분이 된다. 기분이 그다지 좋지는 않다. 그 뒤에 이어지는 “시체들이 바스락대는 날들입니다”를 읽고 나면 문장들은 더 크게 어긋난다.
그러나 하나하나의 문장을 따로 떼어 읽으면 어려울 것이 없다. 우선 “이유가 무엇입니까”란 첫 번째 문장에서 문장을 읽는데 어려움을 느낄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구겨진 신발 속으로 들어가다 말고 원인들은 무사히 지냅니까”라는 두 번째 문장을 읽을 때 나는 어딘가 나가려고 구겨진 신발 속으로 발을 집어넣다 말고 어떤 원인들에 대한 생각이 미쳐 잠시 골몰해 있는 시인을 생각했다. 그때 시인은 마치 자신이 모두 신발 속에 머무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시체들이 바스락대는 날들입니다”에 이르렀을 때는 시체대신 마른 낙엽을 생각했다. 왜 마른 낙엽을 시체라고 한 것일까. 그것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마른 낙엽이 살아있는 잎은 아니니 시체라는 말에 큰 무리가 있어 보이진 않는다.
나는 이 흐름을 이렇게 정리했다. 어느 날 시인은 문득 무엇인가에 대해 이유가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된다. 세상에 그 이유가 궁금한 것들은 많다. 그런데도 우리는 거의 그 이유를 궁금해 하지 않는다. 때문에 세상의 온갖 원인들은 우리들의 궁금증에서 비켜나 무사히 지내고 있다. 그렇지만 시인은 어딘가로 외출을 하려고 신을 신다말고 다시 그 원인들이 궁금해져 잠시 신발을 신던 것도 잊고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외출을 했다. 외출은 가을날의 산책으로 보인다. 발밑에 마른 낙엽이 밟히는 산책이었다. 시인은 생각한다. 세상 모든 것들이 죽음을 누리는 것일까. 죽음은 사실 인간밖에 누리질 못한다. 가축들의 죽음에서 죽음을 보는 이는 드물다. 우리는 그 죽음에서 먹을 것, 즉 맛난 고기를 본다. 낙엽에서도 죽음을 보는 이는 드물다. 그것은 가을의 낭만이 되기 일쑤이다. 왜 인간을 제외하고 세상 모든 것들은 죽음을 박탈당해야 하는 것일까. 시인은 그래서 낙엽에게 죽음을 돌려주면 어떻게 될까 생각한다. 그리고 그 생각이 시속에선 바스락대는 시체들로 구체화된다.
시는 내가 언급한 세 문장의 뒤로도 계속된다. 하지만 나는 세 문장까지만 언급하고 나머지는 덮어두기로 한다.
때로 시란 시인이 가을 산책을 떠나기 전에 방안에서, 또 신발을 신으며 현관에서, 또 낙엽이 깔린 산책길에서 띄엄띄엄 떨구고 가는 문장으로 이루어지며, 시를 읽는다는 것은 그 시인의 산책길을 따라가며 띄엄띄엄 떨어진 문장을 줍는 일이다. 시인의 산책길을 따라가며 시인이 갔던 길을 함께 하지 않으면 그 문장은 주울 수가 없다. 나는 그렇게 시인의 문장을 주웠다. 그러나 내가 다 주워갈 수는 없어서 단 세 문장까지만 주웠으며 나머지는 그냥 내버려 두었다. 내가 그렇게 욕심이 많은 사람은 아니다. 내가 산에 가면 다람쥐 생각해서 도토리도 내버려두는 사람이며 시를 주을 때도 적어도 다른 사람이 주워갈 문장은 내버려둔다.
(2014년 9월 13일)
(인용한 시는 이수명 시집, 『마치』, 문학과지성사, 2014에 수록되어 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