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의 아파트 옥상에 피뢰침이 세워져 있다. 가끔 새가 와서 네 갈래로 갈라진 그 끝의 한 곳을 골라 잡고 앉은 뒤 울기 시작한다. 피뢰침은 하나가 아니라 둘이다. 항상 높은 쪽에 앉는다. 피뢰침의 아래쪽엔 핸드폰의 송수신기들이 주변을 마치 성곽처럼 둘러싸고 있다. 높이 솟은 피뢰침의 기둥이 나무로 보인 것일까? 새에겐 솟은 것은 모두 나무일지도 모른다. 너는 슬픈 나무구나. 올 때마다 보는데도 잎도 안나고 언제나 깡마른 줄기 뿐이야. 내 너를 위해 울어줄께. 그러면서 새는 자신의 노랫소리로 피뢰침 기둥에 잎이 날지도 모른다며 가끔 찾아와 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핸드폰의 송수신기는 피뢰침 주변을 모두 둘러싸고 있지만 어느 하나도 새의 노래소리를 송신하진 못한다. 새가 울 때 핸드폰이 울린 적은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가 와서 울 때마다 나는 핸드폰을 힐끗거리곤 했었다. 물론 한번도 핸드폰은 울리지 않았다. 내가 진정 전해 듣고 싶은 것은 가까운 거리에서 귀를 열어놓아야 전해진다. 현대 문명은 바다까지 건너면서 목소리를 전해주고 풍경도 곧장 전해주지만 가장 가까운 데서 울리는 새의 노랫소리는 전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