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모든 것이 웃음이 되던 시절이 있었다. 어버이날, 학교에서 만들어온 종이 카네이션에 쓰인 추카추카란 말을 놓고도 한참을 웃을 수 있었다. 아이의 발랄함 앞에서 어버이날은 엄마 아빠에게 감사하는 날이 아니라 생일날처럼 즐겁게 축하를 주고 받는 날로 변신할 수 있었다. 아이가 자신의 블로그에 적어놓은 글귀 하나도 나의 얼굴에 웃음을 가져다 주기에 충분한 시절이었다.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것들을 꼽아가다 색으로는 빨강색을 지목한 글귀였다. 그렇지만 이유는 말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 색은 내가 즐겨입는 옷의 색이기도 했다. 나는 아이가 말하지 않았는데도 왜 빨강색이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 되었는지 그 비밀을 알 수 있었다.
세상 모든 집의 아이들이 그럴 것이다. 부모에게 아이들은 자라면서 그냥 자식이 아니라 몸에 새겨지는 잊히지 않는 기억 같은 것이 되어간다. 부모의 몸이란 아이를 키우는 텃밭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아이의 기억이 쌓이는 지층같은 것이다.
오래 전 어느 부모가 세상에 꺼내놓은 아이의 기억 속을 다녀온 적이 있다. 2014년의 8월 29일, 바로 오늘이었다. 기억을 꺼내기 위하여 표토를 걷어낼 필요도 없었다. 그것은 바로 어제의 기억이었기 때문이다. 어제의 기억은 기억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그것은 살아있는 오늘이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는 마치 오늘처럼 손에 잡히는 그 기억을 단 하룻만에 다시는 손에 잡을 수 없는 아득한 거리로 밀어내고 말았다. 기억이 되버린 오늘이 그 자리에 있었다.
아이의 이름은 박예슬이라고 했다. 아이의 꿈이 담겨있는 그 오늘의 기억 앞에 선 순간, 나는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예슬이는 동시에 나의 아이란 것을. 전시장 전체를 돌아보는 동안 나는 예슬이 부모의 몸 속을 걷는 듯했다. 그곳은 아이가 기억으로 새겨진 부모의 몸 속이었다. 그건 나의 몸이기도 했다. 아이는 나의 아이가 되었고, 그 자리의 나는 아이의 부모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