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과 산

Photo by Kim Dong Won
2005년 5월 4일 가평 자라섬 맞은 편에서


강은 아래로 흐른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강은 깊어지고 넓어진다.
아래로 아래로 흘러
그 가장 아래쪽 바다에 이르러
가장 깊어지고 넓어진다.
아래로 아래로 흘러가는 것은 강의 숙명이다.
우리는 종종 그 강을 거슬러 올라
물줄기가 막 시작되는 곳을 찾아 계곡으로 오른다.
그곳엔 물의 맑음이 있다.
강을 따라 내려가면 깊이와 넓이를 얻지만
거슬러 오르면 그곳엔 강이 잃어버린 맑음이 있다.
강은 뒤를 돌아볼 수 없지만
우리는 때로 물이 시작되던 자리의 그 맑음이 그리워
강을 거슬러 오르곤 한다.
우리는 그렇게 강을 오르내리곤 한다.
내려갈 땐 넓어지고 깊어지는 강을 보고
거슬러 올라선 잃어버린 맑음을 본다.

산꼭대기에 올라보면
우리가 힘들여 올라간 산을
산은 저 아래로 내려간다. 강물처럼 흘러서.
등성이를 낮추고 낮추어 결국은 들판이 된다.
가장 낮은 곳으로 몸을 낮춘 산은
우리의 논이 되고, 우리의 밭이 되며, 우리의 집터가 된다.
그곳에서 우리와 함께 산다.
산은 가장 낮은 곳으로 몸을 낮추어 우리를 품지만
우리는 가끔 그 품을 버리고 산을 거슬러 산꼭대기로 오른다.
산꼭대기에 오르면 멀리 시야가 트인다.
그곳엔 산이 잃어버린 높이가 있다.
산의 높이는 우리의 시선을 싣고
우리가 사는 저 아래쪽을 향하여 아득하게 날아간다.
우리는 때로 시선을 싣고 날아가는 그 높이의 비상이 그리워
산이 내려온 길을 거슬러 산꼭대기로 오르곤 한다.
우리는 그렇게 산을 오르내린다.
내려갈 땐 몸을 낮추어 넓은 품이 되는 산을 보고
거슬러 올라선 잃어버린 높이를 본다.

Photo by Kim Dong Won
2005년 12월 4일 원주 치악산에서

6 thoughts on “강과 산

  1. 초등학생이었던 때로 기억하는데요.
    친구랑 나일강이 길까, 아마존강이 길까, 아님 또 다른 강이 길까로 고민을 했더라죠. 결국은 학교앞 문방구에서 50원짜리 아이스크림 내기가 되었는데, 당시엔 제가 져서 아이스크림을 샀어요. 그리고 복수(?)의 기회가 와서, 간단한 물음을 던졌는데, 그 질문은 ‘이집트의 나일강은 위로 흐를까? 아래로 흐를까?’였어요. 친구는 지도에서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아래라고 답을 했고, 어디서 이미 주워들은 저는 틀린 이유를 설명하여, 아이스크림을 얻어먹은 기억이 나네요.

    1. 모든 강은 아래로 흐르거늘 그걸 뒤집다니… 대단한 쭈루님.
      하긴 지중해로 향하는 나일강은 지도에선 분명히 위로 향하고 있죠.

  2. 넓이와 깊이와 맑음과 높이와 너른 품을 모두 간직하는 건 쉽지 않구나…
    나는 어디쯤 있을까…
    강이든, 산이든 어딘가에서 홀로 나를 만났으면 좋겠다.

    1. 너머지거나 자빠지기 때문에~^^
      의미가 다른건가?
      너머지는건 앞으로고 자빠지는건 뒤로?^^
      두분처럼 살고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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