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2층 베란다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몇개의 화분에
어머님인지, 아님 그녀인지 꽃대신 고추를 심었습니다.
꽃대신 심었지만 고추도 꽃을 피웁니다.
그런데 고추의 꽃은 위로 고개를 들고 햇볕을 구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거의 예외없이 고개를 아래로 숙이고 바닥만 묵묵히 내려다 봅니다.
그건 고추가 유난히 가로등 놀이를 즐기기 때문입니다.
갓 몽오리가 잡혔을 때보면 고추의 꽃은 영락없는 가로등 모양입니다.
그때는 하얀 알전구 속에 빛을 딱 그만큼만 물고 있습니다.
그러다 조금더 꽃이 피면
꽃잎을 벌려 전구의 갓을 만들고
그 작은 꽃속의 꽃술을 전구로 삼습니다.
한번 시작된 가로등 놀이는 그 뒤에도 계속됩니다.
아마 이제 곧 꽃은 떨어지고
그 자리에선 초록색 고추가 머리를 내밀 겁니다.
그건 이제부터 초록의 빛입니다.
초록이 좀 지겨워진다 싶어지면
고추는 그 초록의 빛을 붉은 빛으로 바꿉니다.
보통 초록과 붉은 빛을 띄었을 때
우리는 그 빛을 따다가 물에 잘 씻은 뒤
우리의 뱃속으로 삼킵니다.
고추의 빛을 삼키면 입안이 얼얼하고 뱃속도 화끈 거립니다.
아마도 그 얼얼함이나 화끈거림은
빛을 제대로 쬐지 못한 그곳에 고추의 빛이 들어갔을 때의 눈부심 같은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는 그 눈부심에 때로 눈물을 쏟기까지 하면서도
종종 고추의 빛을 삼켰을 때의 그 매운 눈부심을 좋아합니다.
붉은 빛을 그대로 두면 색이 바래면서 흰색의 빛이 되기도 합니다.
지난 해도 그랬지만 올해도 역시 2층 베란다의 화분에선
한해내내 고추가 가로등 밝히기 놀이를 하면서 놀겁니다.
10 thoughts on “고추의 가로등 놀이”
강동원 ㅎㅎㅎㅎ흐흐흐 활펴다 ㅎㅎㅎㅎ흐흐 ?
강이 아니고 김인디…
어쨋거나 들러주셔서 고맙습니다.
강동원은 우리 아들 이름인데.^^
정말 김동원님이 보시는 눈은 저희들과는 너무 다르네요.
동화쓰시면 아주 재밌을듯.^^
아, 맞아요. 아드님 이름이 저랑 똑같죠.
이것도 참 드문 우연 같아요.
강 동 원 씨 꽃이꼭 동원씨내요…. 강동원씨도 멋이어요
너무예쁜 내요 …. 꽃이 ㅎㅎㅎㅎ ^.^
고추꽃이 아래로 피는 것 처음 알았어요.
정말 가로등 같네요.
그래서 사진찍기 너무 어려워요.
납짝 엎드려야 꽃이 보이고, 그냥은 뒷모습만 보여요.
오늘 은행에 가는 길에 고추꽃을 보았어요.
동원님 덕분에 자세히 들여다 보았네요.
신기하고 예쁘네요.
화분에 하나 키워보는 것도 괜찮은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