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 겨울,
많은 눈이 내릴 것이란 기상 예보에 이끌려
강원도의 백담사를 찾았습니다.
절의 한켠, 물을 받으려 서 있는 스님 한 분이 제 시선을 끌어 당깁니다.
한 눈에 보기에 아주 젊은 스님입니다.
물은 쫄쫄거리며 흐르고 있었습니다.
물통은 천천히 차오릅니다.
물통이 차오르는 동안 스님은
스스로를 텅 비우고 계신 듯 보입니다.
아마 그곳이 절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속세의 세상이었다면 생각에 가득찬 모습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곳이 절이어서 그런지 그날 스님은 생각을 지우고,
물이 차오르는 동안 자신의 텅 비워가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그리고 물이 다차고 나자 물통이 스님의 한쪽 팔에 매달립니다.
그 순간 텅빈 스님의 한쪽 팔에 차오른 물의 무게가 채워집니다.
그 때문에 물통을 들고가는 스님의 어깨가 한쪽으로 기울어집니다.
그러나 다른 쪽 어깨는 여전히 비워놓아 가볍게 약간 위로 들립니다.
스님이 가져간 물은 또 물통을 비우면서
스님들의 갈증난 속을 채울 것이 분명합니다.
물통이 채워질 땐 스님이 스스로를 비워가고 있었는데
물통을 들고갈 때는 그 무게로 한쪽 어깨를 채우고,
물통이 내려서면 또 스님은 물통의 무게를 고스란히 내주고 어깨를 비워둡니다.
그리고 물통이 비어갈 때는 스님들의 갈증난 속이 채워집니다.
절에선 스님들이 물통 하나를 들고 다녀도
채우거니 비우거니 하면서 서로 맞물려 돌고 돕니다.
절에 가면 절이라서 그런지
속세에 있을 때면 그저 제각각이었던 세상 만물이
내가 네가 되었다, 네가 내가 되었다 하면서 맞물려 돕니다.
4 thoughts on “채움과 비움”
어느 장소에 있느냐는 것, 누구랑 있느냐는 것
참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비우며 채우고, 채우며 비운 스님 이야기.
무더웠던 주말, 가득 쌓인 눈 보며 시원하게 들었어요.
오늘 상당히 덥네요.
더우니 더 피곤한 것 같기도 하고.
일 하나 마무리하면 어디든 하루는 갔다가 와야 겠어요.
중2때인가 인생 사는게 재미없다며 그 어린 나이에 스님이 되셔서 인터넷 명상 방송까지 개국하신 정목 스님이 생각나네요.
유나 방송이라던가요. 한번 들어봐야지 생각했는데.^^
사진찍으면 수도하는데 방해되겠지만
스님들이 가끔 절을 거닐고 있는 모습을 보면
저절로 카메라가 따라가요.
마냥 평온한 느낌이 들어서 그런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