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눈길에 차에 체인을 감고 운전을 한 것은 딱 한번 있었다.
그때의 길은 2003년 2월 4일에 시작되었다.
그날 우리가 나섰던 길은 속초에서 마감이 되었지만
그 중간의 경유지는 어딘지 불투명하다.
기록에 의하면 횡계로 갔다고 되어 있다.
아무튼 우리는 중간에 눈에 띄는 곳을 여기저기 들리며,
강원도 깊숙히 들어가다가 예정에도 없이 속초로 넘어가고 말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루를 묵었다.
다음 날인 2월 5일, 우리가 눈을 떴을 때
세상은 하얗게 바뀌어 있었고,
눈발이 펄펄 날리고 있었다.
그날 그녀는 차의 바퀴에 체인을 감고 눈덮인 미시령을 넘었다.
나는 그때 마냥 좋았다.
그때의 하얀 기억을 꺼내 본다.
아마도 강원도의 어디쯤일 것이다.
그러나 아직 동해로 가는 고개를 넘기 전이다.
세상은 눈에 덮여 있었지만
나무는 모두 머리 끝의 눈을 털어낸 뒤였고,
산자락에 놓인 집도 지붕에서 눈을 털어낸 건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중간에 휴양림의 표지판을 보고
잠깐 산 속으로 차를 몰고 들어갔다.
그곳에선 사람들이 다니던 길이 모두 눈의 차지였다.
눈은 길을 차지하면 그때부터 가질 않고
그 자리에 눌러 앉아 버린다.
눈이 눌러 앉으면 아무도 길을 가기 어렵다.
그녀는 동해로 가는 강원도의 고개 중에선 안넘어본 고개가 없다.
동해로 가는 고개는 여러가지이다.
진부령, 미시령, 한계령, 구룡령, 진고개, 대관령이 그것이다.
그녀는 이때 넘어간 고개를 구룡령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고개를 넘어가는 내내 차를 한대도 만나지 못했다.
중간에 차를 세우고
고개의 중간쯤에 올랐을 때
차창으로 눈을 뒤집어쓴 산이 펼쳐져 있었다.
우리는 파도 소리가 밤새도록 귓전으로 밀려드는
바닷가의 민박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바다민박>이란 곳이었다.
바다가 바로 코앞에서 보인다는 이유로
상당히 비쌌던 기억이다.
비쌌지만 우리는 바다가 보인다는 바로 그 이유 하나만으로
그곳에 묵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세상엔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모래밭이 하얗게 바뀌어 있었다.
우리는 민박집의 4층에서 잤다.
베란다에서 내려다본 5일날의 아침 풍경이다.
여전히 눈이 날리고 있었다.
눈덮인 미시령 풍경.
그녀는 올라가는 내내 바싹 긴장한 눈치였지만,
나는 신난다고 소리를 질렀다.
눈에 파묻힌 미시령 휴게소.
그녀가 몰고 올라온 우리 차.
주차장도 모두 우리 차지.
그날 눈덮인 미시령을 올라온 나의 그녀.
미시령을 다 내려왔을 때,
그곳의 덕장에서 눈을 맞으며 겨울을 나고 있던 황태들.
아저씨는 거의 겨울이면 3개월 정도는
차들이 지나다니는 법이 없다고 했었다.
미시령으로 들어가는 길목쯤에 있는 얼음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들린 소양호.
겨울에는 빙어 낚시터가 되어 버린다.
빙어.
그 이름 때문인지 마치 투명한 것처럼 보인다.
여름이면 물이 줄줄 샜을텐데
겨울엔 그 물이 추락을 거절한다.
고드름은 그러므로 지상의 중력을 거절하는 물의 반란이다.
누군가 그 반란을 한자리에 모아
고드름의 함성으로 이 겨울을 목놓아 부르짓게 하고 싶었나 보다.
그 때문일까, 나무로 만든 터널을 지나가는 동안
고드름이 질러대는 함성의 열기로 인하여
갑자기 그곳이 후끈 달아오른 느낌이었다.
14 thoughts on “눈덮인 미시령을 넘던 그녀”
매일 눈팅만하려니 죄송해서 흔적남김니다.
저희가족도 어디 다니는것을 좋아해서 가본곳은 많은데
같은 풍경을보면서도 어찌이리 느낌과 표현이 다른지…,
새해에도 자주 뵈요 꾸우뻑
요 며칠간 업데이트도 못하고 있어요. 이것 저것 밀린 것들 정리하느라고 시간을 다보내고 있네요. 항상 건강하길 빌께요.
진표랑 하은이 생각하면 정말 하나님이 주신 귀한 선물이예요.
진표 아빠랑 엄마도 언제나 예쁘고 행복하시기를…
캬… 내가 정말 저기를 넘었다는 말쌈^^?
올해도 한번 해볼까나… 안그랴요^^
오늘 이마트 나가서 튼튼한 체인이나 하나 사자. 눈이 오니까 왜 그렇게 차가 아쉽냐. 옛날 그 체인은 좀 문제가 있었던 것 같아. 옛날에 강원도 가다가 차가 어떻게 되는지 알아보자고 일부러 브레이크 밟아서 180도 돌았던 기억난다. 그때는 정말 아찔했었는데. 장소도 기억난다. 거기가 주천에서 영월로 가는 다리를 건너 조금 간 지점이었는데. 지금도 그 길에는 얼음이 얼어있을까.
서재석과 같은 집에 사는 사람입니다.
가끔 들어와 사진과 좋은 글들 몰래 즐기고 가다
오늘은 마지막 고드름 사진과
그 아래 글귀에 시선이 한참 고정되어
그냥 갈 수 없어 흔적 남기고 갑니다.
사진도 사진이지만 그 예술같은 표현력에
자주 감탄하고 있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이렇게 반가울 데가.
몇번 얼굴은 뵌 적이 있었죠.
오늘은 바깥분이 챙겨주시는 점심까지 먹고 왔어요.
두 분 모두 오늘 크리스마스야 당연히 즐거우셨을 것 같고, 저는 새해의 기쁨을 미리 빌어드릴께요.
저도 너무 반갑습니다…
늘 가깝게 뵙고 있는데 직접적으로 글은 처음이네요.
두 분 모두 행복한 연말과 기쁨이 넘치는 새해가 가득하시기를…
저 흰산위에 크리스마스 장식과 꼬마전구가 반짝이면 정말 감동적인 크리스마스 트리가 될 거 같아요~
따뜻하고 정겨운, 음식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행복한 크리스마스 되세요~ 메리 크리스마스~!
아키님도 크리스마스 즐겁게 보내시길.
전 한번도 넘어본적없는 고개들이네요.^^
스무살의 겨울 대관령인가를 넘으려 친구들이랑 떠났다가
눈길에 더이상 못가고 오대산에서 신나게 눈싸움하고 산채 비빔밥 맛나게 먹고왔던 추억은 있어요.ㅋㅋ
대관령은 초보운전 딱지를 붙이고 넘었어요. 그때 대관령 넘어갔다가 오더니 초보 운전 딱지를 떼어버리 더군요. 가장 험악하지 않은 고개는 진부령. 가장 험악한 고개는 구룡령. 미시령, 한계령, 진고개는 한밤중에 넘어갔죠. 근데 이런 고개는 정상에서 차를 세우고 그곳을 둘러보는 기분이 그만이예요. 모두 정상에 휴게소가 있거든요. 그녀가 운전을 잘하기도 하지만 저는 완전히 살아있는 네비게이터라서 편안하게 운전할 수 있도록 방향 지시를 잘해요. 그래서 그녀의 차에 동승할 때는 사실 무척 피곤해요. 어디로 가야하는지 다 가리켜 주어야 하거든요. 그렇지 않으면 눈깜짝할 사이에 엉뚱한 곳으로 새버려요.
정말….대단하신 분 들이세요^^
성탄절 행복하시길~~!
밤 12시가 넘어서 깜깜한 밤에 바다를 보겠다고 동해로 간 것도 세 번이나 되는 것 같아요. 사실 강원도 길은 밤엔 그렇게 위험하질 않아요. 졸지만 않으면, 지나다니는 차가 거의 없거든요. 그걸 생각하면 충청도나 전라도 쪽의 바다는 밤 12시가 넘어도 다니는 차가 너무 많더라구요. 아주 위험하게 느껴졌어요. 차들도 너무 달리고.
크리스마스 즐겁게 보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