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에게 카메라가 생겼다

Photo by Kim Dong Won
2007년 6월 5일
카메라, 렌즈 두 개, 필터, 그리고 가방


그냥 집에 놀러와서 같이 밥먹고 얘기 나누는 것만으로 즐거운 손님이 있다.
요즘 그런 즐거운 손님들이 자주 집을 찾아준다.
어제도 그런 손님이 왔다.
그냥 와서 함께 시간을 나누다 가는 것만으로도 즐거운데
어제의 손님은 아내에게 큰 선물을 갖고 왔다.
언젠가 한번 써보고 아내가 갖고 싶어 했던 카메라,
바로 펜탁스 K100D를 그가 들고 왔다.
40mm의 밝은 단렌즈 하나와 18-55mm의 편리한 줌렌즈 하나까지 마련해온 것은
아마도 그에게서만 기대할 수 있는 꼼꼼함과 배려일 것이다.
가방까지 그녀의 마음에 쏙 들 것이 분명한 것으로 세심하게 골라왔다.
마음의 부담을 떨치기 어려울 정도의 큰 선물이 분명했지만
그걸 그냥 술상을 차려서 함께 한잔하고
찌게를 곁들여 내놓은 밥 한 그릇의 부실한 저녁을 대접하고는
냉큼 받아 챙겨버리고 말았다.

아내는 가끔 그런 얘기를 했었다.
“이 집안엔 내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거 같아.”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집에서 처음 장만한 MP3 플레이어는 딸의 몫이었으며, 두번째 장만한 것은 나의 몫이었다.
아내의 MP3 플레이어가 생긴 것은 딸이 새로운 MP3 플레이어를 장만하면서 자신의 것을 제 엄마에게 물려주면서부터 였다.
아내는 그렇게 딸에게 물려받아 자신의 MP3 플레이어를 마련할 수 있었다.
나는 그동안 카메라는 두 대를 장만하며 새로운 기기로 갈아타기까지 했지만
내가 딸에게 별도의 카메라를 장만해줄 때도 아내의 카메라는 없었다.
한동안 아내는 가끔 임대료 명목으로 용돈을 내주면서
딸의 카메라를 빌려가지고 나의 사진 여행에 함께 하곤 했다.
그렇게 자신의 것은 하나도 가진 것이 없는 듯한 아내에게
이번에 그가 고맙게도 아내의 것을 장만해 주었다.
그가 너무 고맙다.
화가인 아버지를 둔 그는
아마도 문학이나 예술을 하며 사는 남자의 아내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것인지 아는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는 내 아내의 빈 손에 카메라를 들려주면
그게 나를 살릴 수 있는 길이란 것도 아는 정말 현명한 사람이다.

자신의 카메라가 있다는 건
그냥 가끔 남의 것을 빌려서 찍는 것과는 크게 다르다.
카메라는 카메라임에도 불구하고
남의 카메라는 자꾸만 남의 창으로 세상을 보는 듯한 어색한 느낌을 가져다 준다.
며칠전 그녀가 내 카메라를 들고 나가 사진을 찍어갖고 들어왔다.
그녀가 찍어갖고 왔는데도 그 사진은 내 것만 같았다.
카메라가 내 것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녀에게도 그녀의 카메라가 있어야 한다.
그때부터 비로소 그녀의 사진에 그녀의 세상이 담길 수 있다.
온전히 카메라와 함께 하며 뒹굴 때, 카메라 앞에서 그녀의 세상이 열린다.
이제 그녀에게도 그녀의 카메라가 생겼다.

Photo by Kim Dong Won
2007년 6월 5일
카메라 가방 속에 넣었을 때의 모습

15 thoughts on “아내에게 카메라가 생겼다

  1. 저두 그 행운의 메신저에 속하는 건가요? ㅎㅎ
    빌려쓰는 똑딱이로 이미 멋진 사진을 남기시기에
    그 이상의 카메라는 빨리 구입하지 않으시리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좋은 선물을 받으셨네요.
    동원님이 더 기뻐하시는거 보여요~

    1. 당연히 포함되죠.
      그냥 니콘의 입문자용 카메라를 하나 구입해줄까 하는 생각도 했었는데 니콘의 카메라는 다들 커서 기옥이 손에 잘 맞질 않는 것 같아 주저하게 되더라구요.
      같은 취미를 본격적으로 함께 하게 되어 저도 많이 설렙니다. 어제 김포가서 사진을 좀 찍었다고 하니까 아마 저녁 때쯤 올리지 않을까 싶어요. 잠깐 들여다 봤는데 역시 SLR로 찍은게 다르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2. 인건님이 정말 좋은 선물을 해 주셨네요.
    저도 펜탁스를 살짝 눈여겨보고 있었는데, 포레스트님 사진보며 대신 감동을 느끼겠습니다.
    * 올림픽 공원은 좀 먼데… 일부러 가봐야겠습니다.^^

    1. 귀국하실 때즘 제 핸펀 번호 알려드릴께요.
      올림픽 공원 근처를 지나칠 기회가 있으면 꼭 들리세요.
      잔치국수나 된장찌게에 곁들인 점심 또는 저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맛은 그다지 보장 못하지만 그런대로 먹을만합니다.

  3. 읽다보니 가슴이 훈훈해지는 멋진 사건(?)입니다.
    부디 포레스트님께만은 장비병이 안생기길 기원하며, 카메라 렌즈와 파인더를 통해 세상이 외면하는 것을 보시고 그걸 고이 마음속에 담는 멋진 사진들 많이 찍으시길 바랍니다.

    1. 저번에 사이클론님 댁에서 모였을 때 인건님이 잠시 forest님 손에 건네주었던 그 카메라가 결국은 forest님 차지가 되고 말았었요. 참 고마운 사람이예요. 그리고 세랑님도 올림픽 공원쪽으로 올 기회가 있으면 집에 들러서 밥먹고 가요.

    1. 좋은 카메라 선물받으신거 축하드려요~^^
      얼마나 좋으실까요.^^
      감각이 멋지시니 김동원님보다 더 멋진 사진들 찍으실거에요.^^

    2. 축하, 고맙습니다, 가을소리님.
      오늘 마침 놀러갈 일이 있어서 그 카메라 들고 김포로 갔어요.
      저는 일하고 있구요.
      카메라 기능 다 익히려면 좀 시간이 걸리겠지만 집안에서 찍어봤더니 아주 좋더라구요.

    3. 가을소리님 고맙습니다.
      멋진 사진이 될지는 몰라도 아마 열심히는 찍어볼 것 같아요.

      카메라를 선물해준 분에 의하면
      빛을 이해하려면 적어도 4만장 이상을 찍어야 한다는군요.
      비록 전공을 할 건 아니지만 열심히는 찍어보려구요.
      그것이 선물한 사람에 대한 보답인 것 같기도 하구요…^^

  4. 카메라도, 그 속에 담긴 마음도 참 아름다와요.
    (물론 당연히 동원님의 그녀님이 기쁘실테지만,)
    왠지 동원님이 더 기뻐하신 것 같으신대요.

    1. 가끔 살다보면 꿈같은 일들이 일어나요.
      펜탁스는 특히 색감이 마음에 들어서 더욱 좋은 것 같습니다.
      올해는 일이 잘 풀리려는 지…
      어제는 새로운 일을 하나 계약하려고 들어갔는데 그것도 잘 될 듯 싶고…
      그 일 계약하면 저도 카메라를 D200으로 새로 마련해 준다는 군요.
      이번 일은 사진 찍을 일이 많거든요.
      요 며칠 사람들이 들락거리면서 더더욱 좋은 일들이 많이 생기는 거 같아요.
      우리 집에 찾아오는 사람들, 모두 행운의 메신저들이예요.

    2. 그러게요, 찍어놓은 사진 보고 왔는데 색감이 좋아요.
      동원님은 또 새 일에다가 D200(탐나는 DSLR)까지!!
      기쁜 소식에 덩달아 즐겁습니다~ ♪

      아참, 그러고보니 저도 좋은 선물 있었어요^^
      어제 집에 해남호박고구마 한박스가 배달해온 거예요.
      겨우내 한창 시켜먹다가 이제 철 끝났지싶어
      한동안 안 시켰는데 이게 왠건가 싶었죠.
      ‘최우수고객사은품’이란 글자를 보고는,
      하도 고구마를 많이 시켜먹은^^ 날 위한 선물인 걸 알 수 있었어요.
      흣, 선물이라는게 기분 좋게 만드는 마술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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