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두번째 방문에서 낯익은 반가움이 아니라
너무 많은 사람들로 인하여 당혹감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런 기억 중의 하나가 정동진이다.
널리 알려지기 전에 그곳을 찾았던 우리는
두번째 그곳을 갔을 때는
건널목이 닳도록 해변으로 밀려드는 그 많은 사람들 때문에
자꾸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이곳이 예전에 우리가 왔던 곳인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도 남이섬도 그곳을 다시 찾으면 그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딱 한번 그곳을 찾은 것은 2002년 10월 28일이었다.
가끔 그곳이 어찌 바뀌었을지 궁금해 지기도 한다.
배가 섬으로 들어갈 때
섬은 완연한 가을 분위기의 풍경을 선사했다.
그 풍경은 아름답다.
풍경이 아름다우면 우리의 머리 속에서 생각이 지워진다.
생각이 지워진 자리를 아름다운 풍경이 가득 채우면
바로 그 순간 우리의 눈가에 눈물이 번지곤 한다.
왜 아름다운 것들은 우리를 눈물짓도록 만드는 것일까.
아름다운 것에 대한 헌사는 여러가지이지만
나는 가끔 눈물이 아름다운 것에 대한 최고의 헌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아마도 섬의 동쪽 부분이지 않을까 싶다.
나무는 호젓하게 혼자 서 있는 듯 했지만
그 날도 여전히 푸른 하늘과 물빛이 그의 친구였다.
단풍이 고개를 내밀고
지나는 바람과 사람들을 엿보고 있다.
길은 대개는 어딘가를 가기 위한 것이지만
때로 그저 걷기 위한 길이 있다.
그 길에 들어서면 우리는 행선지를 찾지 않는다.
그 길에선 그저 걷는 것만으로 우리의 마음이 그득찬다.
말하자면 그 길의 행선지는 우리들의 마음 속으로 나있는 셈이다.
그렇게 발걸음을 분주하게 만들었던 행선지를 버리고
내 마음 속으로, 또는 그대 마음 속으로 걸어가는 길이 있다.
은행잎은 물들어 떨어지고,
은행은 익어서 떨어진다.
은행잎은 색에 물들고,
은행은 맛으로 익는다.
은행나무는 가을이면 그렇게 한해 동안 가꾼 색과 맛을 이 지상으로 돌려보낸다.
오늘 은행나무 밑의 세상은 그 색과 맛으로 그득했다.
갈대는 바람에 흔들린다.
여린 바람에도 흔들린다.
그러나 갈대가 뿌리를 딛고 선 굳건한 땅은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는 법이 없다.
혹시 갈대가 흔들리는 것은 바람 때문이 아니라
그가 딛고선 땅의 굳건함 때문이 아닐까.
바람이 불고,
그 바람을 따라 땅이 흔들리는 상상을 한다.
그 순간 갈대는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고 균형을 잡으려 집중력을 모은다.
내 상상 속에서 갈대는 이제 바람이 불 때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균형을 잡고 그 자리를 지키려 한다.
바람따라 나도 흔들린다.
내가 흔들리면 그녀가 굳건하게 자기 자리를 잡는다.
둘 다 흔들리면 끝장이다.
당신을 위해 여기에 이렇게 노란색 주단을 깔았다고 뻥을 치라.
뻔한 거짓말이지만 그래도 속아주지 않겠는가.
하긴 거짓말이 아닐 수도 있다.
당신의 마음은 보여줄 수가 없고,
은행잎의 고운 빛은 눈에 완연하다.
그러니 노란 가을길은 당신의 마음이 은행으로부터 잠시 빌려온 채색이다.
우리들 마음의 운명이 그러하여
그 노란빛을 빌렸다면 그건 사실 거짓이 아니다.
남이섬은 섬이다.
섬에선 단풍이 들면 섬의 단풍이 모두 한자리로 모이는 느낌이다.
뭍이었다면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바람에 날릴 때마다
이리저리 흩어지는 느낌이었겠지만
섬에선 그 모든 잎이 눈처럼 소복히 섬안에 쌓이는 느낌이다.
단풍은 생각을 지워버리고,
그리고 말을 앗아간다.
어느 날 오래된 책을 뒤적이다
책갈피에서 곱게 마른 낙엽 하나가 고개를 내밀 때가 있다.
누군가는 그런 순간을 가리켜
삶의 즐거움 중 하나라고 적어놓았던 기억이다.
그저 가을에 색이 고운 낙엽 하나를 책갈피에 끼워놓는 수고 정도만 기울이면
누구나 그런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우리가 떠날 때
사람들을 싣고 다시 배가 섬으로 들어간다.
배는 사람들을 싣고가 그들의 가슴 속에 섬의 가을을 그득 채워준다.
우리는 남이섬을 갈 때와 올 때의 길을 달리했다.
갈 때는 널리 알려진 큰 길로 갔고,
올 때는 북한강변의 작은 길을 따라 구불거리며 집으로 왔다.
그 길로 들어서면서 언덕을 올라서자
남이섬이 저만큼 아래쪽에 있었다.
4 thoughts on “남이섬의 추억”
전 초등4학년때 부모님과 남이섬에 처음 가봤었죠.
지금도 컴옆에 그때의 사진이 있어요.
진한 핑크색 블라우스에 남색 주름스커트를 입은 소녀로.ㅋㅋ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네요.
그 다음해에 아빠가 돌아가셨으니.
기억나는것도 없지만 다시 한번 가보고싶은 곳이네요.^^
주차비가 좀 비싸요(4000원이었던 기억인데 맞는지는). 아무튼 그날 돈은 많이 든 거 같아요. 배삯도 있고 해서. 어쨌거나 사진찍기에는 그만인 곳이었어요.
햇살이 좋은 날이었나봐요~ 단풍든 가을인데도 따사로운 봄의 햇살 같아요~
저는 학교다닐때 가본 남이섬이 마지막인데… 지금은 많이 변했겠죠. 그곳을 지키는 예술가도 한 명 있다는 방송을 본 기억이 나네요. 봄이 되면 남이섬에 가야 겠어요.
무척 좋았던 기억이예요. 그러고 보니 이것도 강촌가는 길에 있네요. 바로 요 옆에 자라섬이라고 섬이 또 하나 있어요. 눈오면 춘천이나 한번 갔다 오면 좋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