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7월 12일날은 비가 많이 왔다.
원래 그날 나의 일정은 일찌감치 군산으로 떠나 선유도로 가는 것이었으나
비가 워낙 많이 와서 그냥 집에서 뒹굴고 있었다.
그러다 빗발이 약간 가늘어지는 틈새를 보이자
그녀와 나는 청평으로 나섰다.
전에 한번 비올 때 그곳을 간 적이 있던 나는
비가 오면 그곳의 풍경이 남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청평도 좋지만 그곳으로 가는 길도 못지 않게 좋다.
우리는 양수리에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많이 다니는 길을 따라 가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반대편, 그러니까 수종리 방향의 길을 타고 청평으로 가기도 한다.
어느 길로 가나 사잇길로 새어나가 청평댐이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그 길은 차들이 잘 다니질 않아 언제나 호젓하다.
항상 젖은 빨래를 입에 물고
빨래가 말라갈 때의 그 바삭바삭한 느낌을 즐겼던 빨래집게가
오늘은 온통 비에 젖어 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눈의 채색도 희고,
안개의 채색도 희다.
둘 모두 세상을 그저 흰색 하나로 덮거나 가린다.
그러나 그때마다 세상은 다른 풍경으로 새롭게 탄생이 된다.
보통 그림은 흰색 캔버스를 색으로 덮어 탄생하지만
눈과 안개의 그림은 정반대이다.
산에서 내려다 보다가
강가로 내려가 눈높이를 맞추었다.
내려다 볼 때는 산을 피어오르는 안개가 먼 손짓이지만
눈높이를 맞추면 하얀 속삭임이 된다.
로코 갤러리.
점심 먹은 카페이다.
음식도 맛있다.
앞의 차는 우리 차가 아니다.
비오는 날의 흔한 물 같지만
이렇게 계곡으로 물이 흐르는 것을 볼 수 있는 날은 많지가 않다.
비오는 날 계곡은 물로 채워지고,
또 그 물이 흐르는 투명한 소리로 채워진다.
이 도로는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라고 불린다.
2차선의 좁은 도로이며,
가평으로 가다가 중간쯤에서 옆으로 새어들면 된다.
물론 우리는 청평호를 끼고 가다가 이 드라이브 코스를 올라가며
정상쯤에서 차를 돌려 다시 내려온다.
이 도로에선 어느 누구도 속도를 내지 않는다.
가끔 사람들은 차라는 것이
마냥 달리라고 만들어진 것이 아닐 때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가끔 불은 그냥 어둠을 밝히는 것 이상의 느낌을 준다.
불은 때로 그냥 켜두기만 하는 것으로도 따뜻한 위안이 된다.
로코 갤러리의 불빛도 그 느낌이 따뜻했다.
아마도 불빛이 그냥 불빛이 아니라
그 속에 사람이 있다는 표시로 읽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날 내가 찍은 나의 그녀.
그녀는 그날 창안의 그녀였다.
그날 그녀가 찍은 그녀의 나.
로코 갤러리의 안주인은 사람들이 날 때마다 몸소 바깥에서 배웅을 했다.
웃음이 고운 여자였다.
북한강은 사실 강이라기 보다 강과 호수를 반복한다.
앞선 물줄기가 호수를 이루고,
뒷따르는 물줄기는 강으로 흐르다 호수에 합류한다.
비오는 날 수상 스키를 타면 즐거움이 하나 더 있다.
맑은 날은 바람과 물을 가르는 즐거움이 있지만
비오는 날엔 그 두 가지 즐거움에
빗속을 뚫고 가는 즐거움이 보태진다.
강아지풀아, 물 속에 뭐가 있니?
아까부터 그리 목을 빼고 자꾸 들여다보게.
6 thoughts on “비오는 어느 7월의 청평호”
청평은 외가가 있어서 어릴적 자주 갔던곳인데 저렇게 멋진곳은 전 첨보네요.^^
그리고 김동원님의 모습은 “자기야~나 많이 사랑하지??”하는듯이 보여요.^^ 맞죠?^^
청평의 시내 방향과는 완전히 다른 쪽이죠. 청평과 북한강 사이에 산이 있잖아요. 그리고 길이 강쪽으로 가는 길과 내륙쪽으로 가는 길의 두 갈래가 있는데 강쪽 길은 사실 차들이 잘 다니질 않아요. 그게 험하거든요. 이 풍경은 바로 험한 길 쪽이죠. 이때 갔을 때도 아직 비포장 부분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이쪽 길로 계속 가면 남이섬이 곧장 나오죠. 길이 완전히 계속 구불텅 구불텅…
비온 후라 그런가요. 선명하고 깨끗하고 싱싱(?)해요~ ^^
저 로코갤러리 건물도 너무 이쁘네요. 그 앞의 차도.
세상의 이쁜 것을 많이 보려면 부지런하기도 해야하지만 차도 있어야겠어요.
운전 면허하고 차있는 여자나 남자를 구하면 되죠. 저처럼.
ㅋㅋㅋ 지금은 친한 언니가 그 역할을 하고있죠.
사실 이게 편하긴 한데, 그쵸?
특히 생각이 많으면 절대로 운전하면 안되요. 큰일나게. 길이나 잘 안내하면 되는 거죠, 뭐. 같이 다니면 운전하는 사람도 심심하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