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놓은 것을 뒤져 봤더니 2001년 11월 25일이었다.
영흥도에 다리가 세워져 차를 갖고 섬에 들어갈 수 있다는 소식을 신문에서 보고
영흥도가 어떤 섬인지는 관심의 뒷전으로 밀어놓고
그냥 그 섬을 찾아갔던 날이 그 날이었다.
6월 19일 어제, 다시 그 섬에 갔다.
소래포구의 아래쪽에 오이도가 있고,
오이도 아래쪽에 제부도가 있으며,
제부도 옆에 더 서쪽으로 선재도가 있다.
선재도에서 다시 더 서쪽으로 가면 영흥도이다.
모두 이름은 섬이지만 이제를 다리로 길을 내주어 차로 들어갈 수 있다.
낮시간은 오이도와 선재도에서 보내고
저녁 무렵의 시간은 영흥도의 장경리 해수욕장에서
지는 해를 배웅하는데 썼다.
해지는 바닷가에 다시 앉아 본다.
6시 34분.
우리가 가끔 바닷가에 가야 하는 것은
빛을 보기 위해서이다.
빛은 심지어 흐린 날에도
우리의 머리맡에서 환하게 빛나고 있지만
한낮의 우리 눈엔 그저 세상이 보일 뿐, 빛은 눈에 들지 못한다.
하루의 낮시간을 모두 함께 보내면서도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빛,
가끔 우리는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 지워져 있는 그 빛을 보기 위해 바닷가로 가야 한다.
드디어 저녁 시간이 되고,
그러면 바다 위에서 우리는 볼 수 있다.
바로 하루 종일 우리와 함께 했던 그 빛을.
6시 36분.
해는 사실 하루 종일 사람들 머리맡에
꽃가루처럼 날리는 반짝이는 빛을 축복처럼 뿌리며
멀리 동해로부터 여기 서해까지 하룻길을 걷는다.
그렇지만 그 중에서 가장 반짝이는 빛은 저녁 때까지 아껴둔다.
저녁이 가까워오면 해는 아껴둔 그 빛을
드디어 은빛 물감을 풀듯 바닷물 위에 내려놓는다.
그 저녁빛을 선물로 받는 것은 그리 어렵지는 않지만
그러나 시간을 내서 바닷가를 찾고,
해가 질 때까지 그곳에 머물러야 한다.
혹 운이 좋으면 그 기다리는 시간을
바닷가에 떠 있는 배와 함께 할 수 있다.
배와 함께 하면 기다리는 시간은 더더욱 낭만적이 된다.
6시 50분.
날은 흐려있었다.
반짝이던 빛으로 바닷물 위에 은빛 주단을 깔았던 저녁해의 길이
갑자기 잿빛으로 지워진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 자리를 지키기로 했다.
7시 10분.
구름이 가리자 저녁이 밋밋해졌다.
그러나 구름의 아래 자락으로 붉은 기운이 엷게 새고 있었다.
우리는 그곳을 태양의 길목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계속 바닷가에 앉아 있었다.
잠시 해가 저녁빛을 거두어들인 바닷가엔
밀물 때를 맞은 바다가 끊임없이 밀려들고 있었다.
바다는 아는 것일까.
그곳에 모여 태양을 배웅해야 한다는 것을.
7시 20분.
멀리 커다란 화물선 하나가 지나간다.
그때쯤 눈여겨 봐두었던 태양의 길목으로
저녁 해의 얼굴이 언듯 다시 나타난다.
은색의 빛이 붉은 빛으로 바뀐 것으로 보아
그 사이 구름의 뒤에서 색조 화장이라도 했나 보다.
7시 30분.
태양은 레드 카펫을 깔았다.
우리들을 위해.
-황홀하게 걸어서 오라, 나의 품으로.
7시 32분.
우리는 가고 싶다.
그 레드 카펫을 걸어 붉은 태양의 한가운데로.
-새카맣게 타죽을 텐데.
걱정하지 마시라.
우리가 레드 카펫을 걸어 가고 싶은 태양의 품은 누군가의 가슴이므로.
그 가슴은 아무리 뜨거워도 절대로 타죽는 법은 없다.
불새처럼 부활할 뿐.
7시 35분.
날이 흐리다고 기다림을 접어선 안된다.
태양의 길목을 짐작하고 있다면
그 길목에 자리를 잡고 앉아 저녁 해를 기다려야 한다.
그럼 저녁 해가 나타난다.
그 둥근 얼굴을 온전히 모두 다 내민다.
불꽃으로 일렁이는 태양의 시선이
바닷물을 헤치고 눈식간에 날라와 우리의 발밑까지 이른다.
7시 37분.
해는 다시 길을 접는다.
우리는 이번에는 해를 기다리지 않기로 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해에게 손을 흔든다.
해는 기다려야 할 때가 있고,
또 보내야 할 때가 있다.
7시 38분.
해도 머리 위로 붉은 손을 뻗어 우리에게 안녕을 고했다.
서서히, 그리고 천천히. 또 붉게.
7시 42분.
해는 가고 약간의 붉은 자취만이 하늘에 남았다.
배와 함께 계속 그 자취를 바라보고 있었다.
7시 45분.
하루 종일 그 넓은 하늘을 모두 다 차지했던 태양이
이제 그 하늘을 깨끗이 비워 놓았다.
바닷가에 가면 태양이 항상 하루의 걸음을 마무리하면서 그렇게 하늘을 비운다.
태양이 비워놓은 그 하늘에 이제 저녁이 밀려든다.
그 빈하늘에 우리의 저녁이 가득찬다.
6 thoughts on “해지는 바닷가에서 – 영흥도 장경리 해수욕장”
일몰을 시간차로 보는 재미가 있군요!
전 해가 구름에 가리기에 미련없이 돌아 서버렸는데…
이렇게 보니 반짝 얼굴을 드러내기도하군요.
난 냉정한 걸까요? 인내심이 없는 걸까요??
보통은 다들 그러죠.
사실은 비밀이 하나 있는데 제가 팔이 길어서…
사람들이 해졌다고 빠져나가 버리면 아무도 안본다 싶을 때 슬쩍 팔 뻗어서 손톱으로 구름 사이를 약간 벌려놓아요. 한번은 다섯 군데를 벌려놓은 적도 있었죠. 그래서 저는 사람들 빠져나가도 끝까지 개긴답니다. ㅋㅋ
뭐, 워낙 사진을 잘 찍으시니까 다 아시겠지만 저녁빛은 해가 지고 20~30분 정도 뒤가 가장 좋더라구요. 사실은 일몰보다 그 저녁빛을 찍기 위해 많이 기다렸던 것 같아요. 해가 져야 찍을 수 있는 사진이 있으니까요. 하얗게 실같이 움직이는 롱 노출의 파도 사진도 그렇고…
해지는 풍경은 언제봐도 가슴설레입니다.^^
색조화장! 넘 재밌어요.^^
지난번 안면도에서 남편이랑 투닥거리다 해지는 풍경에
화났던것도 모두 사라져버렸던거 생각나요.ㅋㅋ
얼른 저도 바다로 떠나고 싶어지네요.
우리집은 또 바다에서 여름휴가를 보낼것같아요.
텐트치고 찌개끓여먹으며 해지는 풍경이랑 이른 아침엔
파도소리에 잠을깨고..^^ 생각만해도 마구 행복해지네요.
오래간만에 바다에 갔는데 파도 소리들으니 아주 좋았죠.
재미난 생각도 많이 나고…
사실은 일몰 사진 멋지게 찍는다고 너무 멀리 나갔다가 들어오는 물이 하도 빨라서 쫓기듯 나온 뒤에 해수욕장에서 한숨 돌렸어요.
역시 서해바다는 조심해야 겠더라구요.
지금 소개해주신 ‘달’ 노래 들으며
지는 ‘해’ 보는 느낌이 남달라요. 덕분에 ^^
구름이 적당히 있는 일몰이 아름답죠.
어제 그런 멋진 바닷풍경과 어우러진 노을 사진 담아오셨네요.
한낮에 컴퓨터 앞에 앉아 서해 일몰도 다 보고 감사합니다.
엇, 저는 도루피님 블로그 펼쳐놓고 그 노래 듣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