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추위, 노래, 그리고 노동자가 모두 집회의 일원이 되어 열어놓은 새로운 세상 – 이소선합창단의 명동 세종호텔 해고노동자 투쟁문화제 공연

Photo by Kim Dong Won
2022년 12월 15일 세종호텔 해고노동자 투쟁문화제 공연
서울 명동 세종호텔 앞 거리

이소선합창단은 2022년 12월 15일 목요일 명동의 세종호텔 앞에서 열린 이 호텔 해고노동자들의 투쟁문화제에 함께 했다. 날씨는 추웠고 눈이 내렸다. 집회 하루전에 내가 읽은 시인 강혜빈의 시 「녹음」은 “땀 흘리는 두 사람이/마스크를 반만 벗고/입 맞추는 장면을,/나무는 기록한다/떨며, 떨며 자신의 잎 위에”라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실제로는 잎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나무 아래서 연인이 입을 맞추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의 세상에선 그때 나뭇잎의 떨림이 연인들의 사랑을 마주했을 때 떨리던 나무의 마음이 된다. 내게 있어 시인의 미덕은 바로 그런 식으로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을 내게 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명동의 세종호텔 앞에서 매주 목요일 열리는 이 호텔 해고노동자들의 집회를 오늘은 시인이 내게 준 눈으로 바라보기로 했다. 눈이 내리고 추위가 몰려와 있었지만 그것이 기록한 다른 세상이 보일 것이다.
언제나 처럼 세종호텔의 바깥엔 노동자들이 세워놓은 판넬들이 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 하지만 보통 때와 달리 내린 눈이 판넬을 흘러내려가 판넬의 밑에 쌓여있었다. 아래쪽은 눈에 가려져 보이질 않았다. 아니다, 그렇지 않았다. 판넬의 글자들을 읽어내려가던 눈은 판넬의 목소리를 지나치지 못하고 글자의 끝에서 걸음을 멈추고 그 글귀와 함께하고 있었다. 눈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노동자들의 목소리였다. 눈이 그렇게 걸음을 멈추고 오늘의 집회에 함께 했다.
날의 추위는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으로 유감없이 확인이 되었다. 옷들은 두터워진 두께를 확연하게 보여주며 우리들을 마치 눈사람처럼 잔뜩 부풀려놓고 있었다. 그런데도 겨울은 두껍게 껴입은 옷을 파고들며 계절을 추위로 우리 몸에 새기려 든다. 하지만 집회가 시작되자 사람들에게 새겨진 것은 겨울 추위가 아니라 연대하여 함께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의 뜨거운 마음이었다. 겨울 추위도 순서를 기다릴 줄 안다. 추위도 그 마음을 앞서는 것이 이 세상에 있어선 안된다는 것을 안단는 듯 그 마음의 뒤로 줄을 섰다. 겨울은 이제 추위를 우리 몸에 새기는 계절이 아니라 사람들의 옆에 줄을 서서 집회를 함께 하는 일원이었다. 내린 눈과 겨울 추위가 모두 집회에 함께 했다.
이소선합창단은 언제나 그래왔듯이 노래를 불렀다. 가장 먼저 합창단의 소프라노 최선이가 <찬가, 그날>을 불렀다. 기타 반주는 합창단의 테너 이응구가 맡았다. 날이 어찌나 추웠는지 이응구가 연신 핫팩에 손을 문질러 언손을 녹여야 했다. 기타 반주에 노래가 합류하고 그러자 노래는 마치 오늘의 추위를 다 안다는 듯이 “추위 속에서 슬퍼 말아라 따스했던 기억은 영원히 눈부실 뿐 사라지지 않는다”는 김정환의 싯구절을 멜로디에 얹어 사람들의 귓속으로 나른다. 이 추위에 집회의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이제 잊히지 않을 따뜻한 기억이 된다. 노래는 그 자리의 사람들을 사람이라 하지 않고 “아름답고 강한 사랑”이라 했다.
빠뜨리고 건너뛴 얘기가 있다. 노래를 시작하기 전에 음향기기가 고장나 노래가 멀리 뒤까지 가질 못하니 모두 일어나서 앞으로 붙어달라는 부탁이 있었다.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모두 앞으로 붙었다. 기계가 망가지자 노래와 사람 사이의 거리가 좁혀졌고, 거리가 좁혀지자 노래를 듣는다기 보다 사람들이 노래와 손을 맞잡은 느낌이었다.
합창단의 사회를 본 베이스 김언철은 자신이 지난 번에 이곳의 집회에서 사회를 보며 사회자로 데뷰를 했는데 오늘 두 번째 사회도 다시 이곳에서 보게 되었다며 자신을 사회자로 키워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사람들이 와하하 웃었다. 유머와 웃음이 있는 집회였다.
최선이의 노래에 이어 합창단은 목소리를 모아 <설거지>를 불렀다. 맨목소리로 부르는 노래이다. 노랫소리는 작았으나 거리를 좁히자 앞쪽에선 잘 들렸고 뒤쪽에서도 집중하면 희미한 목소리를 귀에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로 모을 수 있었다. 노래는 “실망했던 것들에 상처받아 잠 못 이루는 날들이 설거지처럼 쌓인다”고 시작한다. 자기 이익에 눈먼 자본가의 탐욕 앞에서 평생을 바쳐 일했던 직장을 쫓겨나야 헸던 날들도 그 실망의 날들 중 하나일 것이다. 노래는 그 실망 앞에 주저 앉지 않고 “그래도 닦아내야지”라고 노래하며 “내일은 다른 몸부림으로 일어나야지 일어나야지”하고 마무리를 한다. 노동자들은 모두 앉아 있었으나 그들은 모두 어제와는 다른 몸부림으로 일어난 사람들이었다.
합창단의 마지막 노래는 <사랑 그것은>이었다. 노래는 “일어서는 것은 이미 수천의 미래”라고 했다. 노랫말과 상관없이 내게 노래는 때로 사랑은 노동자들이 함께 모여 연대하고 싸우는 형태로 나타난다는 전언으로 들렸다. 합창단이 <사랑 그것은>을 노래할 때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사랑이었다.
눈이 노동자의 목소리가 담긴 판넬을 읽다 걸음을 멈추고 시위에 함께 했으며, 겨울 추위도 노동자들의 뒤에 줄을 서 집회의 일원이 되었다. 따뜻한 한끼의 밥으로 연대하는 밥차, 밥통도 그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합창단이 노래를 불러 일어나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사랑이란 이름으로 확인했다. 명동 세종호텔의 해고노동자들이 열고 있는 새로운 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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