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선합창단이 2022년 5월 4일,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수요일에 장승배기역에 있는 공간음악에서 정기공연에 대비한 연습 시간을 가졌다. 7시반에 시작된 연습은 9시반에 끝났다. 이날의 연습은 조금 특별했다. 마치 실제 공연처럼 진행하면서 연습을 했기 때문이다. 전체적 구성을 맡은 유은경 연출이 함께 자리하여 공연의 진행을 일일이 설명해주었다.
연습실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장면은 피아노를 둘러싼 소프라노와 알토였다. 단원들은 피아노를 둘러싸고 피아노가 짚어주는 음을 참고해가며 노래를 부분부분 연습했다. 나는 마치 조각 케익을 맛보는 느낌이었다. 연습 참관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별한 혜택이었다.
그동안은 악보를 보고 연습했는데 이번 연습은 악보를 모두 외워서 하는 첫연습이었다. 첫 노래는 <오월의 노래>이다. 노래 중에 “사랑이여, 사랑이여”라는 부분이 있다. 소프라노가 부르고, 또 테너가 부른다. 소프라노가 부를 때는 감미롭고 아름다우며, 테너가 부를 때는 힘차고 우렁차다. 나는 두 사랑을 노래로 맛본다. 사랑이 갖추어야할 것이 달콤함만도 아니고 힘만도 아니란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랑은 둘을 모두 갖추어야 한다. 오월의 노래에서 우리는 그 사랑을 귀를 통해 몸에 담을 수 있다. 합창단이 알려주는 노래의 매력이다.
연습에선 임정현 지휘자의 지적을 듣고 보는 것이 큰 재미 중의 하나이다. 노래를 잘 모르는 내게는 그것이 노래가 만들어지는 과정처럼 보인다. 노래가 빚어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가령 지휘자는 이주노동자의 힘겨운 삶을 다룬 <춥고 배고프다는 말>에서 가사와 정서가 분리되어 있으며 그 둘을 이어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노래 중에 “하얗게 하얗게 눈이 내려 오늘을 지우네요”라는 부분에서 그 눈이 내리는 장면에 이국에 와서 춥고 배고픈 노동에 처한 이주노동자의 현실이 담겨야 하는데 그 연결이 부족하다는 지적이었다. 공연 때는 아마도 사람들이 눈내리는 날이 마냥 기쁜 날이 아니라 이 땅을 이국으로 살아가는 이주노동자들의 춥고 배고픈 현실을 느끼는 날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때쯤 눈에 그 정서가 담길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노래는 신비롭다. 봄눈에 노동의 현실도 담는다.
연습의 마지막 곡은 <우리라는 꿈>이었다. 노래가 소리를 아주 낮게 줄이는 부분에 이르렀을 때 지휘자는 이 부분은 음을 낮추면서도 아주 결기있게 불러야 한다고 했다. 대개 결기는 소리를 높이게 만들지만 노래는 낮아지면서 결기를 높인다. 노래의 또다른 신비이다.
가사를 모두 외워서 부른 첫 연습이었다. 임정현 지휘자가 외운 악보를 들여다 보느라 눈이 모두 뇌쪽으로 들어가 있다고 했다. 나는 그만 사람들 눈이 모두 머리속으로 돌아가 있는 장면이 상상이 되어 킥킥 웃고 말았다. 지휘자는 어려운 두 곡을 부를 때 특히 그렇다며 노래를 머리가 아니라 입으로 외워야 한다고 말했다. 간혹 글을 쓸 때도 어떤 사람의 생각을 받아적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몸을 받아적는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노래도 경지에 오르면 머리가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가 보다. 아마도 공연날은 우리가 머릿속에서 나오는 노래가 아니라 몸으로 울리는 노래를 듣게 될 것이다. 연습의 노래가 그런 순간을 향해 가고 있었다.
공연은 5월 21일 토요일 오후 네 시에 있다. 장소는 광진구의 나루아트센터이다. 공연 참관은 감동으로 보상받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