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은 수요일이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싣고 나눔의 집을 출발한 승합차는 팔당을 거쳐 올림픽 대로를 따라 달리다가 반포대교를 건너 곧장 일본대사관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12시에 수요시위를 시작하죠.
그런데 지난해, 그러니까 2006년 7월 12일엔 행선지를 좀 달리했습니다.
할머니들의 차량은 먼저 외교통상부 앞에서 멈추었습니다.
이 날은 대구에 사시는 이용수 할머니께서 외교통상부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하는 날이었습니다.
“소모적인 논쟁”을 낳을 뿐이라며 이 문제를 외면하고 있는 우리 정부에 대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일본과 적극적으로 협상할 것을 촉구하기 위한 것이었죠.
첫날이라 지지자들이 많이 모였고, 나눔의 집 할머니들도 그 자리에 함께 했습니다.
하지만 그 1인 시위는 결국 이용수 할머니의 몫으로 남겨두고 다른 할머니들은 모두 일본대사관 앞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습니다.
매주 해오고 있는 수요시위가 할머니들의 또다른 몫이었기 때문입니다.
차를 타고 일본대사관 앞으로 출발하면서 이옥선 할머니가 걱정을 합니다.
“아니, 이용수를 혼자 내버려 두고 가는 거야?”
1인 시위란 것이 혼자서 하는 거라고 설명을 드렸지만 할머니의 걱정은 가시질 않습니다.
“그럼 안되는데. 혼자 내버려 두면 안되는데. 혼자는 너무 외로워.”
할머니의 고개가 자꾸만 혼자 서 있는 이용수 할머니쪽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할머니에게 혼자는 버려진 외로움입니다.
왜 아니 그렇겠습니까.
멀리 이국땅으로 끌려가 위안부의 삶을 살고 있을 때 아마도 할머니의 하루하루는 버려진 외로움으로 눈물을 쏟아야 했던 나날이었을 것입니다.
할머니의 눈에는 이용수 할머니가 홀로 나선 1인 시위가 혼자 벌이는 시위로 보이질 않고 버려진 외로움으로 보입니다.
이옥선 할머니는 그 버려진 외로움에 자꾸만 눈길이 갑니다.
같은 해 7월 26일 수요일, 혼자는 너무 외롭다며 자꾸 고개를 돌리던 이옥선 할머니는 결국 외교통상부 앞에서 이용수 할머니가 ‘외롭게’ 혼자 벌이고 있던 1인 시위의 자리에 옆으로 나란히 서서 ‘2인 시위’를 벌였습니다.
그리고 사실 이 날 대학생 두 명이 이 시위에 함께 동참했습니다.
그 두 대학생의 이름은 최선용과 안병훈이었습니다.
1인 시위가 2인 시위가 되고 또 때로는 4인 시위가 되기도 합니다.
10만인, 100만인 시위가 되면 아마도 할머니의 기억 속에 남겨진 외로움마저도 깨끗이 씻어 드릴 수 있지 않을까요.
4 thoughts on “혼자는 외롭다 –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이야기 6”
의자라도 하나 가져다가 앉아서 하시면 안되나요.
어르신들 저렇게 딱딱한 블럭에 서 계시는게 보통일은 아닌데요.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아요…
수요시위 때는 앉아서 하시는데 1인 시위 때는 서서 하시더라구요.
그렇죠. 1인 시위는 외롭고 힘없어 보여요.
저라도 같이 동참해드리고 싶었을거에요.
제 생각에도 가을소리님이 곁을 지나치셨다면 분명히 할머니 옆에 같이 섰을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