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언 댄트와 그 부모 이야기

라이언 댄트


웹 브라우저의 주소창에 http://ryanfoundation.org 라는 주소를 치고 그 주소가 이끄는 대로 따라 들어가면 우리는 라이언 재단의 홈 페이지를 눈앞에 두게 된다. 우리는 그 홈 페이지에서 환영 문구와 함께 사진 한장에 담긴 라이언 댄트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홈 페이지의 내용을 훑어보면 그가 지난해(2004년) 16살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현재 그는 고등학교 2학년이며 165cm의 키에 몸무게 59kg의 체구를 지니고 있다. 학교에선 레슬링팀의 학생 매니저역을 맡고 있다. 하지만 그는 13살 때만 해도 140cm의 키에 몸무게가 39kg에 불구한 왜소한 아이였다.
사실 라이언은 의사나 과학자들이나 발음할 수 있는 그런 희귀한 병을 갖고 태어난 아이였다. 그들은 그가 10살이 되기 전에 죽을 것이며, 그가 그런 잔인한 운명을 벗어난다고 해도 평생을 허약한 환자로 살아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의사들이 예견했던 그의 미래는 빗나갔으며, 그는 이제 그의 부모들이 살고 있는 주에서 켄터키 대학이나 루이스빌 대학으로 진학하는 것이 소원인 아주 일반적인 고등학생으로 성장해 있다. 의사들이 처음 그를 접했을 때 그의 삶엔 미래가 없었으나 지금 그의 삶엔 분명하게 미래가 자리잡고 있다.
그의 아버지 마크는 “이는 매우 놀라운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보다 정확히 이는 기적같은 일이다.
라이언 댄트는 뮤코다당체 침착층(Mucopolysaccharidoses)이란 병을 갖고 있었다. 이는 흔히 MPS 1이라 불린다. 이 병에 걸리면 우리의 몸에서 당분을 물질대사로 바꾸어주는 효소가 부족해지게 된다. 당분이 부족하면 몸의 세포가 제대로 발달하지 못한다. 그러면 그 결과는 아주 무섭다. 발육이 부진하고 왜곡되며 관절이 굳게 된다. 두뇌를 포함하여 몸의 각종 기관이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게 된다.
라이언이 이 병의 진단을 받은 것은 그의 나이 3살 때였다. 심한 두통이 왔으며, 탈진하여 잠들 때까지 심한 구토를 했다. 그는 비정상적으로 체구가 작았고, 배는 불룩하게 튀어나왔으며, 머리는 아주 컸다. 다리가 뻣뻣하게 굳기 시작했고 옷을 입을 때 양팔을 들어올리지 못했다. 손가락이 굽어지기 시작했으며, 그 상태로 굳어갔다.
10살쯤 죽을 것이라는 의사의 진단은 그의 아버지 마크 댄트와 어머니 짐 댄트를 깊은 슬픔 속으로 빠뜨렸다. 그의 아버지는 몇달 동안 “문을 닫아 걸고 엉엉 우는 수밖에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댄트 부부는 결국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바로 그 불치병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기로 결심했다.
그들이 그 행보 끝에 알게 된 것은 MPS 1이란 이 병이 아주 희귀하여 이 병의 환자가 전세계적으로 3천명밖에 되지 않으며, 치료법을 찾기 위한 연구 기금도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치료법을 찾는 데 도움이 될 성금을 모으기로 결심했다.
그때만해도 그들은 얼마나 많은 돈을 모아야 하는지 모르고 있었다.
또 어떻게 성금을 모아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들은 먼저 거리에서 즉석 구운 요리 판매에 나섰다.
그것으로 그들이 모은 돈은 342달러였다.
일반적으로 희귀 질병의 과학적 연구에는 천문학적 돈이 들어가며, 그 액수는 몇백 달러가 아니라 몇 백만 달러에 이른다. 따라서 댄트 부부가 미국의 MPS 협회에 그 정도 액수의 돈을 갖다주려면 하찮은 즉석 구운 요리 판매 이상의 것을 해야 비로소 가능하다.
이런 경우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다.
바로 행운이다. 행운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평범한 사람들이 몇 백만 달러를 모을 수 있겠는가.
결국 라이언의 아버지 마크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러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도움을 청하러 다니다가 <어떤 부탁도 사양합니다>란 문구가 걸려있는 한 회사 앞을 지나게 되었다. 보통 그런 문구가 걸려있을 경우 그 의미는 (1)“우리는 무지 바쁩니다. 그러니 제발 방해하지 마세요”라는 뜻이거나, 아니면 (2)“사실 우리는 당신보다 더 가난합니다”란 뜻이다.
하지만 댈러스 외곽 지역의 경찰이었던 마크 댄트는 <어떤 부탁도 사양합니다>란 그 문구를 무시하고 그냥 그 회사로 걸어들어 갔다. 그는 1992년 10월에 골프에 입문한 초보 골퍼였으며, 골프 대회가 자선금을 모으는 행사로 아주 유용하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전화 번호부를 뒤져 <아담스 골프>라는 회사를 찾아냈고, 바로 그 회사를 찾아간 것이었다. 그 회사의 사장은 바니 아담스라는 사람이었다.
바니 아담스는 자신의 이름을 붙여 클럽 제조 회사를 만든 뒤 아빌렌에서 댈러스로 상점을 옮긴 상황이었다. 좀더 많은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상점을 옮겼지만 당시 그의 회사는 직원이 단 두 명에 불과했다. 어쨌거나 그 회사를 찾은 마크 댄트는 그의 얘기를 털어놓았고 자선 경매에 내놓을 3, 4개의 클럽을 기부받아 그 회사를 나왔다.
라이언 댄트를 돕기 위한 첫 자선 골프 대회에서 골퍼들은 2만7천 달러의 자선금을 내놓았다. 이제 즉석 구이 요리 판매는 끝이었다. 이때의 자선금을 기반으로 MPS 어린이를 위한 라이언 재단이 설립되었다. 얘기의 첫머리에서 소개된 홈 페이지는 바로 이 재단의 홈 페이지이다.
그 다음 5년 동안 댄트는 매년 아담스로부터 클럽을 기증받았다. 그러던 중 그는 캘리포니아의 생화학자이자 유전학자인 에밀 카키스란 사람에 대해 듣게 되었다. 그는 MPS 1 환자에게 유용한 효소 대체 치료법을 개발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과학자는 돈의 부족 때문에 자신의 연구를 중단해야할 위기에 처해 있었다.
바로 그 순간 몇년전 단 두 명의 직원이 전부였던 아담스 골프가 이제는 성공한 기업체로 성장해 있었다. 그 회사의 사장 바니 아담스는 “타이트 라이즈”라는 이름의 골프 클럽으로 골프업계에 선풍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는 수많은 골퍼들에게 그 제품을 파는데 성공했다. 댄트의 얘기를 듣던 아담스는 그 박사에게 필요한 돈이 얼마냐고 물었다.
“20만 달러라고 하더군요.” 댄트의 대답이었다.
아담스는 골프 코스 설계가인 톰 파지오와 손을 잡고 카키스 박사가 연구를 계속하는데 필요한 충분한 돈을 확보해 주었다. 카키스 박사는 자신이 개발한 치료제를 시장에 내놓을 생물공학 업체인 바이오마린 제약회사와 5백만 달러의 계약을 맺게 되었다.
그러나 치료제가 개발되었다고 하여 라이언 댄트의 치료가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니다. 그는 현재 일주일에 4시간 정도 주사를 맞아야 하는 실정이다. 아울러 병의 완치도 장담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현재의 방법으로 생명이 계속 이어지고 있으며, 의사는 이렇게 말한다. “치료가 되고 있는지는 부모에게 물어보아야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기로 최소한 지금의 상황도 그들은 기적으로 여기고 있다.”
카키스 연구의 상당 부분은 라이언 재단으로부터 자금을 조달받고 있으며, 200만 달러로 추산되는 이 재단의 돈은 10년 동안 자선 골프 대회를 통하여 모은 것이다.
라이언 댄트의 상황은 크게 좋아졌다. 두통은 거의 없어졌다. 더 이상 숨이 차지도 않다. 주사 치료도 현재는 병원이 아니라 집에서 받고 있다. 뼈의 발육 문제 때문에 아홉 차례에 걸쳐 수술을 받긴 했지만 더 이상은 수술이 필요없다는 것이 의료진의 견해이다. 라이언의 말이다. “나는 내가 10살이 되기 전에 죽을 것이란 사실을 모르고 있었지만 지금은 오늘의 내가 기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1992년 즉석 구이 요리를 판매하며 아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오랜 여정에 나섰던 마크 댄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재단이 우리의 생명이 되었다. 우리 재단에선 매년 여기저기서 작은 돈도 마다않고 기금을 모았다. 그 중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바니 아담스가 맡아주었다. 그는 친구들과 각종 협회에 부탁하여 기금을 모았다. 그는 누구도 들어보지 못한 희귀병의 치료를 위하여 크나 큰 일을 했으며, 지금도 그 일을 계속하고 있다.”
MPS 1의 진단을 받고 나서 13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라이언 댄트의 가족은 10살을 넘기지 못하리라던 아들의 삶에 미래가 펼쳐지는 기적같은 삶을 눈앞에 두고 있다.
때로 운명은 가혹하다. 자신의 아이가 10살을 넘기지 못하고 죽을 것이라는 운명도 가혹한데 하늘은 그런 운명을 극복하라고 요구한다. 때로 그 가혹한 운명 앞에 놓인 부모들에게 그런 운명에 부딪쳐 보라는 요구가 너무 가혹하다는 느낌을 받는 한편으로 라이언 댄트와 그의 부모들 얘기를 들으면서 그 가혹한 운명 앞에 무너졌던 많은 부모들에게 이 얘기를 작은 희망의 실마리 삼아 건네고 싶다.

***기사 출처: http://www.golfdigest.com/features/index.ssf?/features/gd200501kindred.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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