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버스터미널에서 선원사까지 걷다

7월 28일에는 강화의 선원사를 찾아가 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곳의 연꽃 축제는 논두렁 연꽃 축제로 알려져 있더군요.
논에 연을 심어서 그런 이름을 붙였나 봅니다.
인터넷을 뒤져보았더니 선원사는 버스터미널에서 가까워 보였습니다.
걸을만한 거리로 생각되었습니다.
10시 반쯤 집을 나섰고,
신촌에서 버스를 탄 뒤 강화에 도착한 것은 오후 1시쯤이었습니다.
신촌에서 강화가는 버스는 여기저기 많이 들러서 갑니다.
끄덕끄덕 졸면서 갔습니다.
강화 터미널에서 내려 차편을 물었더니 대문리행 버스를 타라며
버스가 두 시에 있다고 알려주더군요.
한 시간을 터미널에서 보내는 건 좀 그렇습니다.
대충의 방향을 짐작으로 정하고,
터미널을 나가 왼쪽으로 방향을 잡은 뒤,
큰 길을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곧바로 다리 하나를 만났습니다.
다리 아래쪽으로 수로가 이어져 있었고,
수로의 이쪽편 뚝길을 타고 갈 것인지,
아니면 건너편 뚝길을 탈 것인지 잠시 고민합니다.
결국 다리를 건너 건너편의 뚝길로 접어들었습니다.
풀들이 무성한 길이었습니다.

구글 어스 캡쳐 화면.
숫자는 사진을 찍은 대략적인 위치.
붉은 색 선은 선원사 갈 때 걸어간 길,
노란 색 선은 버스터미널로 다시 올 때 걸어온 길.
Photo by Kim Dong Won

1. 멀리 논에 백로 두 마리가 보입니다.
백로는 사람들이 계속 걷고 있으면 그다지 긴장하는 법이 없는데
걸음을 멈추면 그때부터 완연한 긴장의 빛을 보여줍니다.
내가 카메라를 든다 싶으면 하나의 망설임도 없이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물론 그 긴장의 정도는 거리에 따라 또 달라지지요.
좀 멀리 있으면 내가 걸음을 멈추고 카메라를 들어도 곧바로 날아오르진 않습니다.
그러나 이 두 마리의 백로 중 왼쪽의 한마리는 셔터를 누르기 시작하자
이내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백로에겐 지나가는 인간들은 안 무서운데
자신들을 지켜보는 인간들은 영 무섭습니다.
하긴 우리들도 누가 계속 지켜보고 있으면 영 신경이 쓰이긴 하지요.

Photo by Kim Dong Won

2. 안개가 아주 심한 날이었습니다.
멀리 마을을 안개가 하얗게 지워놓고 있었습니다.
저기 마을에서 보면 아마 나도 하얗게 지워져 있겠지요?

Photo by Kim Dong Won

3. 갈매기 한마리가 전봇대 위에서 여기저기를 두리번 거립니다.
-이거 뭐 여기를 봐도 하얗고, 저기를 봐도 하얗고…
어디가 어딘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군.
갈매기따라 나도 여기저기 둘러보지만 도무지 방향을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아마 맑은 날이라고 해도 종잡을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처음 온 동네에서 뭘 알 수가 있겠어요.
하지만 약간의 두려움을 동반하는 그 처음이 또 매력이기도 합니다.

Photo by Kim Dong Won

4. 뚝길을 따라 한참을 걷다보니 다리가 하나 나타납니다.
그러나 다리를 건너지 않고 그냥 가던 길로 계속 걸었습니다.
다리 밑에선 백로가 휴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나를 피해 기둥 뒤쪽으로 몸을 숨겼는데
제가 모른척 다가가선 슬쩍 그곳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더니
화들짝 놀라서 도망을 가더군요.
백로에겐 간떨어지는 일이었겠지만
내겐 잠깐의 즐거운 숨바꼭질 놀이였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5. 또 다시 다리 하나가 나타났습니다.
원래 이 다리 위에서 멈춘 것은 수로의 저 아래쪽에서
그림 같은 구도로 앉아있던 백로 몇 마리를 사진에 담기 위한 것이었지만
백로들은 촬영에 협조를 해주지 않았습니다.
흥, 싫으면 말구.
나는 하얗게 부서지는 물줄기에 카메라의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렇지만 물이 더러워서 오래 들여다보기는 좀 그랬습니다.
역시 물과 시간을 보내기에는 강원도 깊은 산의 계곡이 딱입니다.

Photo by Kim Dong Won

6. 다리를 건너 다시 뚝길로 들어서니
잠자리떼들이 자꾸만 눈길과 발길을 붙잡습니다.
가만히 몸의 움직임을 줄이고,
그 중 한마리 곁으로 시선을 가까이 붙이는데 성공합니다.
바람이 풀잎을 심하게 흔들고 있는데도 균형을 잘 잡고 있습니다.
하긴 다리가 여섯이니 어느 하나 삐끗해도
균형잡는데는 아무 이상이 없을 것 같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7. 잠자리도 색깔이 제각각입니다.
노란 것이 있는가 하면 이렇게 새빨간 것도 있습니다.
너는 어떻게 이렇게 새빨갛니?
응, 쟤네들은 설익어서 그렇고, 나는 잘 익어서 그래.
정말 잘 익어 보입니다.

Photo by Kim Dong Won

8. 아무래도 길을 종잡을 수 없어
밭에서 김을 매던 할머니께 길을 물었습니다.
손가락으로 짚어 방향을 알려주십니다.
할머니께 논에 군데군데 피어있는 하얀꽃이 무어냐고 물었더니 두아리라고 일러 주십니다.
두아리인지 두알이인지 헷갈렸지만 그것까지 묻지는 않았습니다.
바로 요 꽃입니다.
꽃이 두 개씩 쌍으로 피어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두알이가 된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할머니 얘기로는 뽑아주어야 하는데 귀찮아서 내버려 두고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알고 보니 논에선 꽃이 아니라 잡초 신세입니다.

Photo by Kim Dong Won

9. 드디어 큰 길을 만났습니다.
길의 한복판, 아스팔트에 구멍을 내놓은 자리에
풀들이 삶의 둥지를 틀었고, 그 삶이 초록의 섬으로 떠 있습니다.
보통은 바다가 흔들리고 섬은 굳건한 법인데
아스팔트의 바다에선 바다가 굳어있고,
초록의 섬이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리며 살아있음을 증명합니다.

Photo by Kim Dong Won

10. 철없는 나그네의 눈에는 잡초 두아리가
그저 예쁜 꽃으로만 보입니다.
강화의 쌀은 꽃향기를 맡으며 자라니까
밥을 하면 꽃향기가 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집에 와서 찾아보니
두아리는 아무래도 이 꽃의 일반적인 명칭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 꽃은 보풀아니면 벗풀 같아 보이며, 그 중에서도 벗풀꽃 같습니다.
둘을 구별하려면 꽃으로는 어렵고, 잎을 살펴야 한다는데
아쉽게도 잎을 찍어놓은 사진은 없었습니다.
어쨌거나 이 꽃은 강화에선 두아리라 부릅니다.

Photo by Kim Dong Won

11. 세시쯤 연꽃 단지에 도착했습니다.
한 두 시간쯤 걸은 셈입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가다보니 그렇게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이제 선운사의 연꽃단지에서 한참 동안 연꽃 사진 찍고
다시 버스 터미널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다리도 좀 아프고, 발바닥도 뜨겁고 하여 버스를 타려 했으나
버스가 일곱 시에 있다고 합니다.
시간을 보니 다섯 시입니다.
터미널 방향으로 걷기 시작합니다.
이제는 아는 길입니다.
그렇지만 그 길을 다시 가야한다는게 좀 아득합니다.
길가에 앉아계신 동네 할머니께 지름길이 없냐고 물으니 눈앞의 동네를 가리키며
그 동네의 교회 뒤쪽으로 산을 넘어가는 지름길이 있다고 일러줍니다.
그 언덕 너머가면 또 하나의 언덕이 나오고, 그러면 집이 나온다고 합니다.
그 집이 있는 마을에서 다리를 건너 뚝길로 쭉 가면 된다고 일러주었습니다.
정말 교회 뒤쪽으로 마치 비밀처럼 길이 숨어 있었습니다.
가로등까지 서 있더군요.
다섯시 반밖에 안되었는데 숲이 좀 어두워서 인지 벌써 불을 밝히고 있었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12. 그 숲속길을 빠져나가자
정말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이 나타났습니다.
그곳에서 다시 터미널 가는 길을 물어보았습니다.
집 뒤의 길로 가라고 합니다.

Photo by Kim Dong Won

13. 좀전에 넘어온 길보다는 좁았지만
이번에도 또 작은 언덕을 넘어가는 길이 있습니다.
이제 길을 찾아가는 재미가 쏠쏠하게 붙기 시작합니다.

Photo by Kim Dong Won

14. 언덕길 초입의 참나리에서 잠시 발길을 멈추었습니다.
그 전에 초록빛 가시로 무장을 하고 있는 밤송이도 만났습니다.
걸어가면 차를 타고 갈 때 지나치는 많은 것들과 만나게 됩니다.

Photo by Kim Dong Won

15. 언덕을 넘어가니 내가 지나갔던 곳입니다.
어찌나 반가운지요.
말해준 다리가 바로 저 다리였구나.
백로 놀려먹었던 바로 그 다리입니다.
다리를 건넌 뒤 뒤돌아서서 다리에게 눈길 한번 더 보내줍니다.

Photo by Kim Dong Won

16. 아무래도 이 길이 동네 사람들이 차편이 뜸할 때 자주 다니는 길 같습니다.
아주머니 한 분을 그 길에서 만났습니다.
터미널로 가려면 그냥 그 길로 쭉가라고 합니다.
그럼 터미널 뒤쪽으로 갈 수 있다는 군요.

Photo by Kim Dong Won

17. 가다보니 그 길을 따라 걸어가며 운동하는 사람도 있고,
또 차도 다닙니다.
차는 두 대를 만났습니다.
그리 흔하게 다니는 것은 아닙니다.
한번 마주치면 꼼짝없이 한쪽이 뒤로 후진을 해야 하는 좁은 길입니다.

Photo by Kim Dong Won

18. 터미널을 눈앞에 두고 길가에서 잠시 쉽니다.
발아래 개망초가 하얗게 무리를 지어 피어 있습니다.
어쩌면 저렇게 무성하게 피었을까요.
흔한 꽃이지만 이렇게 무리를 지으니 은하수 못지 않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19. 이제 거의 다왔습니다.
자전거 한 대가 논길을 따라 가고 있고,
그 뒤를 백로 한마리가 따라갑니다.
사진에선 잘 보이질 않습니다.
하늘에 떠 있는 작은 티끌같은게 사실은 백로입니다.
6시 20분경 터미널에 도착했습니다.
7시에 버스가 있다고 했으니 40분은 일찍온 셈입니다.
곧바로 서울오는 버스가 있어 그거 타고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신촌에 도착하니 여덟시쯤 되더군요.
걷고, 걷고, 걷다가 온 여행이었습니다.
이번에도 걸으면서 많은 것들을 만났습니다.

8 thoughts on “강화 버스터미널에서 선원사까지 걷다

  1. 12번에 길이 맘에 드신다고 하다니~ㅎㅎ
    저길은 도깨비불 밨다는 사람도 많고 해서 왠만하면 사람이 피합니다.
    무심리고개라고 불럿든가?
    암튼 낮에도 음산해서 저리로는 잘 안갈라고 합니다~ㅎㅎ

    1. 무심리 고개라… 마음은 비우고 가야 하는 고개네요.
      모르면 그냥 풍경만으로 좋지요, 뭐.
      저는 가로등불은 봤어요.
      아직 어두울 때는 아니어서 좀 의아하기는 했지만요.

  2. 논에 핀 하얀 꽃이름이 올미라는군요.
    연못가나 논가에 주로 피는 꽃이라구요.
    오늘 들어가야하는 작업물중에 어디서 본듯한 사진이라고 생각해서
    찾아들어와보니 맞네요.^^

    1. 그게 꽃은 다 비슷해서 꽃을 보곤 알 수가 없다고 들었어요.
      올미도 꽃모양은 비슷해서 잎을 보고 구별을 해야 한다고 하더라구요.
      다음에는 꽃을 찍을 때 잎도 찍어야 할까봐요.

  3. ‘천천히’ 갈 수록 더 많은 걸 본다- 요근래 저에게 확 와닿은 문구였어요.
    느리게 여행하신 강화기행, 그리고 며칠 후에 그 길을 달리며 보아서 반갑네요.
    그리고 간혹 생생하게 들은 이야기까지 곁들여 있어 즐겁구요.

    1. 그때 차로 간건 좀 허무했을 거 같아요.
      넷이서 걸어갔어야 하는 건데 말예요.
      그게 차로는 금방이었는데 아마 걸었으면 40분 정도는 걸렸을 거예요.

    1. 사람을 거의 볼 수 없는 길인 걸요.
      걸어가면 40분 정도 걸리는 것 같아요.
      짧은 거리는 아닌 듯.
      물론 저에겐 걸을만한 거리지만요.
      마을 사람들에게는 다 아는 길이겠지만 겉으로는 전혀 알 수 없는 길이라 그런게 마음에 들어요.
      자꾸만 도보로 걷는 여행에 자신감이 붙어요.
      이제 어떻게 생긴 길이 산너머로 이어지는 길일지 조금씩 짐작도 가구요.
      그 길을 다 아는 마을 사람들은 모르는 나그네의 은밀한 기쁨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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