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선합창단은 2023년 6월 24일 토요일 류형수 앨범발매 기념공연 ‘하루’의 무대에 올랐다. 공연은 왕십리의 소월아트홀에서 열렸으며 오후 다섯 시에 시작되어 일곱시까지 두 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공연은 1부와 2부로 나누어 중간에 휴식 시간을 가졌으며 이소선합창단은 2부에 출연했다. 작곡가 류형수는 <저 평등의 땅에>의 작곡가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아마도 아하, 그 곡을 만든 분이구나 할 것이다.
2부의 첫순서를 연 것은 테너 임정현의 <먼 훗날>이었다. 그는 이소선합창단과 합창단 그날의 지휘자이나 이 날은 먼저 테너로 무대에 섰다. 노래는 “먼 훗날 혁명의 날”이 오면 “부활꽃 피어나는 봄날 함성비 내리는 여름”이 우리와 함께 할 것이라 말한다. 혁명의 세상에선 봄날에 피어나는 꽃이 부활이 되고 여름에 내리는 비가 함성이 되리란 뜻이리라. 그러면 꽃이 필 때 삶을 다시 살고 비가 내리는 것만으로 세상을 바꿀 혁명의 함성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얼마나 혁명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랴. 그것은 혁명이 그렇게 어김없는 계절의 흐름처럼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노래를 부르는 임정현의 뒤로는 이소선합창단과 합창단 그날이 서 있었다. 두 합창단은 노래가 마지막 구절에서 “먼 훗날 혁명의 날에 먼 훗날 혁명의 날에”를 반복할 때 그 구절에 “먼 훗날 날에 먼 훗날 날에”의 화음을 보탰다. 언젠가 임정현은 이소선합창단이 <유월의 노래>를 연습할 때 소프라노의 노래 뒤로 흐르는 알토의 “아아아, 우우우”라는 화음을 “독재타도 민주쟁취 하나된 소리”에 동의를 하는 함성 소리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이러한 임정현식 해석에 의존하면 마지막 구절에서 합창단이 부른 화음은 혁명을 거스를 수 없는 계절의 흐름처럼 만들어낸 민중의 물결 같은 것이다. 노래는 혁명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혁명이 어떻게 구현되는가를 노래로 보여주고 있었다. “먼 훗날 혁명의 날”이 잠시 모두의 것으로 그 자리의 우리와 함께 했다.
두 번째 곡은 이소선합창단과 합창단 그날이 함께 불렀다. <너를 위하여>란 곡이었다. 민주화의 과정에서 잃은 친구를 위한 진혼곡이라고 소개가 되었다. 노래는 “네가 묻힌 밤 기억하리라” 말한다. 우리는 그 기억이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란 것을 알고 있으며 잊지 않는다는 것이 단순히 너에 대한 망각과의 싸움이 아니라 부당하게 너의 목숨을 앗아간 총과 칼에 대항하는 일임을 알고 있다. 때문에 너를 기억하는 한 우리는 부당한 정권에 대항하여 싸우며 살게 된다. 노래가 바로 그 기억을 위해 두 합창단의 목소리를 모두 모았다. 때로 기억을 위해선 정말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한 자리에 모아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모인 사람들이 기억의 노래를 부를 때 듣는 사람도 그 노래의 기억에 마음을 내주게 된다. 기억은 이제 우리의 모두가 부당한 현실에 맞서게 해주는 힘이 된다.
합창단 그날이 <한 걸음>을 부른 뒤, 이소선합창단은 이번 공연의 마지막 순서로 <선언 1, 2>를 이어서 불렀다. 선언은 장벽을 무너뜨리고 “흐르는 자유의 물결”을 따라가면 “참인간의 세상”이 나온다고 노래한다. “우리가 가야할 땅”이다. 이어 노래는 “가자 가자 저 자유의 땅에 억센 팔과 다리로”라고 노래한다. 공연이 다 끝난 뒤, 선언은 처음에는 소리가 작게 느껴지다가 가자, 가자부터 우렁차게 느껴진다고 했더니 이소선합창단의 알토 김종아가 그건 <선언 1>은 여자들만 부르는데 <선언 2>는 남자들이 같이 부르기 때문이라고 알려주었다. 나는 듣는 귀가 섬세하질 못해 그것을 구별하지 못했으나 그러니까 선언은 사람들이 목소리를 모을 때의 증폭되는 힘을 보여주는 노래였다. 합창단의 노래는 단순히 노래에 그치지 않고 그 증폭되는 힘을 구현한다. 그 증폭된 힘이 “참인간의 세상”으로 우리를 이끄는 힘이기도 하다. 노래는 우리가 가야할 세상만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세상으로 가야할 힘을 어떻게 증폭시키는가도 함께 보여준다.
노래가 때로 단순히 노래가 아니다. 혁명의 노래를 부를 때 보태는 화음이 이 땅의 민중들이 만들어내는 도도한 혁명의 물결이 되고 우리의 기억이 부당한 정권을 막는 항거의 힘이라고 알려준다. 또 우리가 꿈꾸는 세상으로 가는 걸음을 위해 증폭되는 힘을 모아주기도 한다. 공연 ‘하루’에서 이소선합창단이 노래로 구현한 세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