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에 가지 않을래?” 그 말을 들었을 때 나의 즉각적인 반응은 “바다보러?” 였다. 바다를 보겠다고 한밤중에 강원도 고개를 넘은 적이 몇 번 있었다. 밤은 길을 막지만 바다를 보고 싶은 마음은 그 밤의 어둠 속을 더듬어 바다로 가는 길을 찾아낸다. 아득한 옛기억이다. 그러나 울산에 갔다가 다들 바다가 옆에 있는데도 술자리를 일어서지 않는 것이 너무 분하고 억울해 일행을 모두 버리고 밤에 택시를 잡아타고 혼자 바다를 찾아간 적이 있다. 가는 비가 내리는 바다를 한참 동안 걷는 것으로 울산에 와서 바다도 안보고 가는 인간들에 대한 화를 조금 삭힐 수 있었다. 그리 오래된 기억이 아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일행 중 누군가가 먼저 내게 목포를 얘기했다. 목포는 항구가 아니라 내게는 바다였다. 나는 바다를 말할 때 그 말만으로 내 눈이 반짝이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행선지로 목포라는 지명을 들을 때 우리가 있던 곳은 광주였고, 다음 일정은 우리가 떠났던 서울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었다.
많은 일행 중에서 목포행을 느닷없는 행선지로 삼아 다시 일행을 꾸린 것은 다섯 명이었고, 나는 그 다섯 명 가운데 한 명이 되었다. 광주행 일행의 한 명이었지만 따로 차를 몰고온 양현이 우리를 광주송정역까지 태워다 주었다. 차를 타고 가는 동안 이번 목포행의 최초 기획자인 정은이 말했다. 자기는 썬글라스까지 준비했고 자고로 여행객은 썬글라스 정도는 써줘야 한다며 목포에 가면 밤이라도 썬글라스를 쓰고 다니겠다고 했다. 밤에 썬글라스라니 그게 도대체 무슨 정신나간 짓일까를 생각하는 한편으로 내 머릿속은 썬글라스를 쓰면 밤이 갑자기 한 시간쯤 더 깊어지는 것일까를 더듬어 보고 있었다.
역 입구에 도착한 우리의 급한 마음은 우리를 뛰게 만들었다. 목포 기획에 최초의 동조자였던 하영은 이 정도 시간이면 기어가도 된다고 만류를 했지만 뛰기 시작한 다리에는 제동이 걸리질 않았다. 우리는 무사히 9번 승강장에 도착했다. 아직 열차는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리고 도착하고서야 후회를 했다. 역앞에서 사진 한장 찍어둘걸. 그러나 그 후회는 승강장의 선명한 역명 앞에서 사진을 찍는 것으로 달랠 수 있었다.
여행은 사람을 들뜨게 하고 사람은 들뜨면 시끄럽게 떠든다. 객차안에서 떠드는 것은 우리밖에 없었다. 우리는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내일 아침 첫버스로 서울로 가자고 했다. 첫버스는 5시반에 있다고 했다. 내일의 계획으로 우리가 시끄럽자 객실 안의 여기저기서 우리를 째려보는 눈길이 생겼다. 눈치 빠른 용우가 그 눈길을 눈치챘다. 그 눈길 중의 한 아주머니를 골라 용우가 우리가 목포에 처음 놀러가는 것이라 신이 나서 좀 시끄럽다며 이해해 달라고 했다. 째려보던 눈길이 금방 누그러졌다. 우리는 계속 시끄럽게 떠들었다.
열차를 내리자 마자 정은이 “바다 냄새야”라고 했다. 내 코의 후각으로는 이것이 바다 냄새인지 확인이 되지 않았다. 하영이 “맞아, 바다 냄새야”라고 동조를 했다. 이럴 때 내가 모르겠는데 라고 사실을 말하는 것은 눈치를 버리는 일이다. 할 수 없이 나도 “역시 목포는 바다구나”라고 했다. 나는 후각에 잡히지도 않는 바다의 자장으로 끌려들어가고 있었다. 목포역 앞의 우리는 여유가 있었다. 역이름에 선명하게 불이 들어와 있는 목포역 앞에서 잊지 않고 사진을 한 장 찍었다.
가장 먼저 간 곳은 횟집이었다. 언제 문을 닫냐고 물었을 때 목포에서 가장 유명하다고 검색된 영란횟집은 오늘 손님은 더이상 받지 않는다고 했으며 결국 한시반 정도의 여유를 두고 우리는 그 옆의 중앙횟집에서 자리에 앉았다. 바다바다 했지만 우리에게 바다보다 급한 것은 술이었다. 주문한 회가 나오기도 전에 우리가 술을 한잔씩 했음은 물론이다. 술을 마시면 육지를 걸어도 바다처럼 일렁이는 걸음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잠깐 문제가 생겼다. 하영이 밤1시에 목포를 떠나 제주로 가는 배가 있다며 우리 제주로 갈까 했기 때문이었다. 목포행으로 한껏 탄력을 받은 마음은 제주행 제안을 곧바로 받아들였다. 더구나 제주에는 우리 모두가 잘알고 있는 현아가 내려가 공연 중이었다. 우리는 모두 제주로 가서 그의 공연을 보기로 했다. 나는 전화를 걸어 현아에게 우리가 오늘 밤배를 타고 내일 일요일의 현아 공연을 보러 제주로 간다고 알렸다. 현아는 놀라면서도 공연장소를 알려주었다.
뜻은 쉽게 모았지만 하영이 아무리 해도 핸드폰으로 배편이 예약되질 않는다고 했다. 횟집 주인에게 물었더니 배는 분명히 있는데 그건 여객선터미널에서만 예약이 된다고 했다. 하영이 정은과 함께 배표를 끊어 오겠다고 나갔을 때 유진은 핸드폰으로 비행기편을 살펴보고 있었다. 유진이 비행기표가 이틀 뒤인 월요일 저녁 7시밖에 없고, 그것도 두 장밖에 없다고 했다. 나는 앞을 생각지 말고 일단 제주로 가자고 했다. 그러는 동안 하영과 정은이 예상보다 일찍 다시 횟집으로 돌아왔다. 둘도 여객선터미널로 가다가 돌아올 비행기편을 생각했다고 한다. 월요일 첫 비행기를 탈 수 있어야 하는데 비행기편이 없다는 것이었다.
각자의 일정을 물었다. 유진은 일주일에 딱 하루 음악 강의를 하는데 그게 월요일이라고 했다. 용우는 회사를 다니고 있었지만 회사 사장이 자신의 친구라고 했다. 월요일의 하루쯤 시간 낼 수 있다는 소리였다. 하영과 정은은 월요일에는 서울에 있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일주일 내내 제주에 있어도 상관이 없었다. 그러나 나 하나의 비는 일정으로 제주를 갈 수는 없었다. 일정은 비어도 비는 일정을 누구에게도 나누어 줄 수 없었다. 길게 비는 한 사람의 일정은 비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제주행은 좌절되었다.
다시 제주의 현아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가 돌아오는 일정에 문제가 생겨 못가게 되었다고 했다. 현아의 일정을 물었더니 자신은 일요일날 저녁에 서울로 돌아온다고 했다. 내려간다고 했다가 취소하는 것이 미안해서 그럼 돌아올 때 공항으로 마중 나가겠다고 했다. 지키지도 못할 약속이었지만 다행이 현아가 만류해 주었다. 우리는 제주에 갔으면 현아쫓던 개가 될 수밖에 없었고 현아는 졸지에 닭이 될 형국이었다.
횟집은 일찍 문을 닫았다. 남은 것은 싸달라고 했다. 나와서 우리는 편의점에 들러 맥주를 샀고, 바다의 방향을 물은 뒤 바다로 갔다. 목포항동시장의 바다가 나왔다. 우리는 좀 후회를 했다. 그곳에 아직 문을 연 횟집이 있었기 때문이다. 술이 아니라 바다를 먼저 찾았어야 했다. 그럼 술과 바다를 모두 해결할 수 있었다. 가로등이 있었으나 우리의 자리까지 미치지 못하는 컴컴한 항구의 바다를 앞에 두고 우리는 술을 마셨다.
부산에서 살았던 용우는 이게 무슨 바다냐고 불만스러워했다. 바다는 발을 담글 수 있어야 비로소 바다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머지 우리는 모두 만족이었다. 특히 정은이 아주 만족스러워했다. 배가 떠 있었고 바다는 어둠을 끌어안고 속을 알 수 있는 시커먼 깊이로 잠들어 있었다. 우리는 바다가 보여주는 그 심해의 수면만으로 충분했다. 사랑할 때의 우리들도 밤마다 심해의 바다가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얕아도 우리는 밤이 되면 밤마다 깊어진다. 우리가 모두 심해처럼 깊어진 밤바다의 곁에 있었다.
내일 아침까지의 시간을 술로 밝혀야 하는 우리는 유진의 친구가 하는 카페로 가기로 했다. 그곳은 목포의 구도심이라고 했다. 불이 다꺼진 그곳에서 딱 한 곳이 우리를 기다리며 불을 밝히고 있었고 노래로 맺어진 유진의 인연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가게의 벽에 <추억의 1986 실내포장마차>라고 적혀 있었지만 가게 이름은 <올빼미운동장>이었다. 포차의 주인은 예전에 <국도1호선>이란 밴드에서 활동했었다고 한다. 그 포차의 안에 현아수퍼마켓이 있었다. 술의 보관하는 냉장고가 있는 곳이었다. 우리는 제주에 가서 현아를 못만난 한풀이라도 하듯 뻔질나게 그 수퍼마켓을 드나들며 그곳의 냉장고에서 현아의 마음이라도 우리의 자리로 나르듯 맥주를 꺼내왔다. 주인은 우리를 위해 노래를 불러주었다. 그리고 정은과 유진이 기타를 잡고 노래를 불렀고 용우가 가세를 했다. 듣는 즐거움은 나와 하영의 것이었다. 목포에 가면 밤이라도 썬글라스를 쓰고 다니겠다고 했던 정은이 썬글라스를 꺼내든 곳도 그 카페였다.
1시쯤 그곳을 나온 우리는 목포의 신도심이며 밤새 술을 마실 수 있을 것이라는 곳으로 이동했다. 평화광장이란 곳이었다. 평화는 밤새도록 마시는 술과 함께 오는 것이 틀림이 없었다. 그곳에서 택시를 내렸을 때 거리가 술집의 불빛으로 환했기 때문이었다. 술을 먼저 찾았다가 실수를 한 우리는 이번에는 바다를 먼저 찾기로 했다. 그래서 바다를 찾아 걷기 시작했다. 바다는 나오질 않고 아파트의 숲을 계속 걸어야 했다. 다행이 그 늦은 시간에 아파트 바깥에 주민이 한 명 있었다. 그에게 물어 우리는 드디어 바다로 가는 길을 찾았다.
바다는 모든 문제의 답이다. 바다에 도착하자 그곳에 화장실이 있어 우리의 생리 문제를 해결해 주었고, 또한 편의점이 있어 밤새도록 우리의 주류 제공처로 유감없는 기능을 발휘했다. 우리는 술을 샀고 요트가 앞에 그림처럼 떠 있는 바닷가에서 술을 마셨다. 요트에서 마셨으면 더 좋았겠지만 요트를 보며 바닷가에서 마시는 술도 괜찮았다. 요트는 인공물이라기보다 바다에 떠 있는 자연물에 가깝다. 마시는 술과 함께 밤이 갔고 밤이 가면서 하늘이 훤하게 밝았다. 어둠이 슬그머니 물러나는 희부연한 하늘을 가리키며 내가 말했다. 봐, 아침이 오고 있어.
고속터미널로 가는 택시를 잡는 일이 쉽지 않았다. 결국 첫 버스를 놓치고 말았다. 하지만 때로 아쉬움이 행운으로 반전된다. 그 다음 버스는 비쌌지만 놓친 첫버스를 아쉽지 않게 만든 행운이 되었다. 7시까지 버스를 기다리며 우리는 근처의 해장국집에서 또 술을 마셨다. 술이 한잔 들어간 나는 하영과 용우가 주로 떠들 때 벽에 머리를 기대고 잠이 들었다. 잠 속에서 듣는 둘의 대화는 꿈이 된다. 내가 깨고 나면 둘의 대화가 꿈처럼 끝날 것이다. 아니, 이제 그만해. 너네 둘의 대화가 내가 자는 동안 시끄럽게 내 잠을 어지럽힌 내 꿈 속의 대화였단 말이야. 그런데 이제 내가 꿈에서 깼어. 그러니 이제 너네 둘의 대화도 여기서 끝이야. 나는 그렇게 말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내가 한 말은 이제 시간 다 되서 버스타러 가야 한다 였다.
우리는 술에 취한 것이 분명했다. 나는 하영이 내미는 버스표 가운데서 한 장을 받는다며 두 장을 받았고, 하영은 버스표가 다섯 장이어야 하는데 왜 이제 세 장밖에 없냐고 했다. 다행이 우리는 금방 문제를 해결했다.
버스를 탄 나는 좌석만으로는 이게 비즈니스석을 탄 비행기 같다며 우리가 혹시 서울까지 날아가는 건 아니냐고 기대를 했다. 하영은 비행기랑 똑같이 머리맡에 백을 넣을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했다. 좌석을 눕히는 법은 옆사람에게 물어야 했다. 생전 처음타보는 프리미엄 버스였다. 우리는 모두 잠에 빠져들었다. 버스가 중간에서 쉬었지만 내렸다 탄 사람은 정은밖에 없었다. 오전 11시에 서울의 고속터미널에 도착했다. 뿔뿔이 흩어져 다들 집으로 갔다.
광주행이 일정이었지만 목포로 새고 목포에서 제주로 가려다 좌절하고 밤을 술로 벗겨내 아침을 불러온 뒤 서울로 다시 돌아온 여정이었다. 때로 어떤 여행은 혼자로선 어림도 없다. 다섯이 필요한 느닷없는 여행이 있다. 야밤의 목포 기행이 그렇다. 과도한 낭만파에 휩쓸릴 때 돌연 그런 여정이 시작된다. 우리는 모두 그럴 나이를 지났으나 낭만은 나이를 잊게 만들고 바다의 자장을 광주까지 밀고가 그곳의 우리를 밤의 목포로 부른다. 거처로 돌아와 가방을 풀었을 때 나는 낭만적 여행이 목포를 그 행선지로 삼게 되면 잎새주 한병이 함께 따라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보해에서 나오는 소주이다. 편의점에서 소주를 사긴 했으나 컵이 없어 병나발을 불어야 하는 처지가 되자 다들 그에 대해선 난감해 했으며 결국 캔맥주만 상대를 했다. 남은 소주는 내 가방 속에 들어가 집까지 왔다. 나는 곧 잎새주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목포의 추억을 마시게 될 것이다.
그리고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있다. 돌아다닐 때는 몰랐으나 올라와서 뒤늦게 깨닫는다. 낭만은 고되다.
(사진 속의 사람들은 모두 글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실제 인물이다. 내가 함께 하면 사람들의 행적은 모두 기록되고 기록은 공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