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큰 즐거움은 술자리에 있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때로 공연의 뒤풀이 자리에서 그런 행운을 만난다. 류형수 앨범발매 기념 공연 ‘하루’가 끝난 뒤에도 그런 시간이 있었다.
누군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그러다 술자리의 저만치서 그의 노래가 들리기 시작한다. 이소선합창단의 지휘자 임정현의 노래이다. “그날은 오리라 가자 이제 생명을 걸고”라고 노래가 말한다. 그의 손에 들린 것은 소주잔이다. 그는 잔에 술대신 노래를 담는다. 그의 노래는 모두의 잔에 녹아든다. 그러니 다음 잔에 사람들이 마시는 것은 술이 아니라 술에 녹아든 노래이다. 노래가 “벗이여, 해방이 온다”고 말한다. 술잔을 든 모두가 그의 벗이 되고 술잔에는 해방의 내일이 찬다.
노래는 신비로운 힘을 가졌다. <벗이여 해방이 온다>를 부르면 세상이 일어나 그 해방을 향해 가는 파도가 된다. 우리는 술자리의 한쪽 구석에서 윤하영과 김현아가 들어올린 팔에서 그 파도를 본다. 파도는 모름지기 높낮이가 있어야 한다고 가운데의 엄태기는 자리에 앉아 파도의 골을 고집한다. 그리하여 엄태기를 가운데 두고 두 사람의 팔에 의지하여 일어난 파도가 좌우로 넘실거린다.
또다른 놀라운 점은 <벗이여 해방이 온다>가 처음에는 임정현의 노래였지만 어느 새 그 노래가 그곳에 자리한 모두의 노래가 된다는 것이다. 노래는 술자리를 모두의 합창으로 가득 채운다.
노래가 끝나자 누군가 우리의 노래는 결코 멈추어선 안된다고 말한다. 기타가 이소선합창단의 이응구에게로 넘어오고 소프라노 최선이가 곧바로 마이크를 급조한다. 리허설 때 그렇게 까다롭던 사람들이 이제는 전혀 까다롭질 않다. 소주병에 숟가락을 꽂는 것으로 마이크가 만들어진다. 최선이가 <민주>를 불렀다. 그 노래 또한 그의 노래로 한정되지 않는다. 합창단 그날의 단원이 이중창으로 노래를 확대한다. 다시 파도가 인다. 이제 파도는 높낮이를 버리고 모두의 파도로 일어난다.
노래가 멈추면 마치 세상의 진보가 멈추기라도 하듯 노래는 끊이지 않는다. 그리고 이소선합창단은 드디어 <대결>을 부르기로 한다. 기타리스트 이응구가 말한다. <대결>을 부르는 건 좋은데, 조건이 있어. 잘 불러야 해. 단원들의 표정은 단호하다. 그건 노래의 기본이 아니냐는 표정이 역력하다.
그리고 <대결>이 시작된다. “라라라라 라라라 힘찬 투쟁 라라라라 라라라 민주노조 만만세”로 시작되어 노래가 “길길이 날뛰는 기업주”에 맞서고 “온세상이 평등과 사랑 일치될 것을 믿는다”며 그런 세상을 위해 빠른 속도로 달리기 시작한다. 노래는 그 끝을 다시 “민주노조 만만세”로 확고하게 마침표를 찍어 마무리한다. 노래의 중간쯤부터 이진희의 손이 주먹을 쥔다는 것도 이 노래의 특징이다.
술자리의 우리는 이중으로 취한다. 술에 취하고, 또 노래에 취한다. 술은 우리를 흔드나 노래는 주먹 쥔 손의 힘으로 굳게 우리의 중심을 잡는다. 물론 술에 취하면 우리의 걸음은 비틀거린다. 그러나 자본과 권력의 부당한 탄압에 맞서는 우리의 노래는 아무리 술에 취해도 흔들림이 없다. 그러니까 아무리 술에 취해도 우리의 걸음은 흔들리나 우리의 노래는 흔들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