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일요일날(2월 12일) 오후에
그녀와 함께 검단산을 올랐다.
검단산은 약수터 길은 항상 사람들로 붐비는 편이고
팔당쪽으로 있는 두 갈래 길은
사람들의 발길로부터 한가한 편이다.
숲을 즐기려면 한가한 편이 좋다.
그래서 어제는 중간에서 버스를 내려
팔당쪽 길로 올랐다.
그녀는 3분의 1 정도 오른 뒤 내려가고 말았다.
정상에 오른 뒤,
계속 한가하게 산을 즐기려는 마음에
어제는 산마루를 타고 용마산까지 걷다가 은고개로 내려왔다.
나뭇가지가 잎을 모두 떨꾸면서
겨울엔 햇볕이 숲속 깊숙이 파고든다.
알고보면 한여름 내내 나뭇가지 끝에서 햇볕을 독차지했던 나뭇잎이
겨울에 지상으로 내려오면서
여름내 가졌던 햇볕과의 연분을
지상으로 끌고 내려온 셈이다.
그러고 보면 정이란 정말 무섭다.
새잎이 돋을 때까지 그 정이 끊기지 않는 것을 보면.
나뭇잎이 무성할 때는
나무가 하늘을 가린다는 느낌이었는데
겨울엔 빈 나무가지 사이로 하늘이 그득한 느낌이다.
하늘빛이 파랄 때는 더더욱 그런 느낌이 선명해진다.
검단산엔 자태가 멋진 소나무가 상당히 여러 그루이다.
그 소나무의 자태를 하나하나 감상하며 올라가는 것도
검단산을 오르는 또다른 재미이다.
멀리 팔당대교가 내려다 보인다.
그 아래쪽 한강엔 철새들이 상당히 많다.
우리는 겨울이면 움츠러드는데
그때 철새들은 이곳을 헤집고 다니며 제 세상을 만든다.
가끔 멀리 인천에서부터 날아왔을 갈매기도 눈에 띈다.
우리는 내려다보며 그 풍경에 즐겁고
새들은 그곳이 삶의 터전이 되어 즐겁다.
그리고 새들이 살면 강의 풍경이 더욱 풍요롭다.
팔당댐 풍경.
예전에는 팔당댐 위로도 차가 오갔었는데
새로 길이 나면서 지금은 그 위로는 차가 못다니게 되었다.
건너 편이나 이 편이나 모두 풍광이 좋아
종종 차를 몰고 나가곤 한다.
검단산의 정상을 알리는 표지석이
저녁 햇살을 받으며
657m의 높이를 지키고 있다.
하늘 한쪽으로 비행기 한대가 길게 꼬리를 끌며 날아간다.
시골에서 자란 내겐 지나가는 버스 한대도 구경거리였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니 하늘을 가르는 비행기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내가 날아가는 비행기를 구경하며
옛생각을 더듬는 동안
나뭇가지들도 모두 비행기 쪽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자연은 예나 지금이나 촌스럽긴 여전하다.
그 촌스러움이 자연의 매력이긴 하지만.
가끔 행복이란 게 별게 아니란 생각이 든다.
그 중의 하나가 지는 해가 물들이는 붉은 색감의 하늘과
그것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롭고 한적한 산속의 저녁 시간이다.
사람들의 무리로부터 떨어져
홀로 용마산으로 걸음을 옮겨놓다
나뭇가지 사이에 걸린 지는 해에
한참 동안 시선을 주었다.
대부분은 나뭇가지가 서쪽 하늘을 가리고 있지만
용마산으로 가다보면 갑자기
서쪽으로 경관이 트이는 곳이 나타난다.
그곳엔 누군가가 탑도 하나 쌓아놓았다.
역시 가장 붉기는 태양이다.
저녁해가 제 붉은 빛으로 물들인 하늘을 바라보며
또 한참 동안 시간을 보냈다.
이제 태양은 거의 서쪽으로 절반쯤 몸을 감추었다.
태양이 몸을 감추자 주변의 산들도
그 윤곽을 절반쯤 감추기 시작했다.
고개를 돌려보니 반대편 하늘에
보름달이 하얗게 떠 있었다.
달은 있었지만 달빛으론 길을 구분할 수 없었다.
전등불로 길을 밝히고 산길을 내려왔다.
전등불에 놀란 산짐승 하나가 줄행랑을 놓는다.
멀리 길게 늘어져 있는 흰색 천도 보였다.
누가 굿을 했나 싶었지만
가까이 가보니 나무에 걸친채 아직 녹지 않은 눈이었다.
산을 다 내려온 뒤 돌아보니
산이 짙은 어둠에 쌓여 있었다.
낮에 산을 오를 때는
빛이 산에 있는 듯 했는데
밤이 되니 빛은 도시의 것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산에 있을 때 내 것 같았던 달빛이
도시로 내려오자 이젠 산의 것이 되어 있었다.
역시 달빛은 산이나 시골에 묻혀
깜깜한 밤에 올려다 보아야 하는 것인가 보다.
4 thoughts on “검단산을 오르며”
가끔 오후나 저녁 나절 산에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만,
산은 으레 아침이나 오전에 오르는 거라는 핑계 앞에
머뭇거리다가 한 번도 실행한 적이 없었는데,
김 선생님의 글과 사진은 너도 한 번 시도해 보라는
암시와 용기를 주는 것 같습니다.
첫사진의 입체감이 마음에 와 닿는군요.
오후 늦게 가실 때는 반드시 손전등을 챙겨가지고 가셔야 합니다.
검단산이 다 좋은데 종종 부딪치게 되는 사람들의 얼큰한 막걸리 냄새가 좀 그렇더군요.
술먹고 내려오다 미끄러진 사람도 자주 본 것 같아요.
아..해지는 풍경에서부터 달뜨기까지 너무 아름다워요.
어제 보름달 볼 틈도 없이 바빴었는데 잘 보고갑니다.^^
하늘에 해와 달이 동시에 떠 있는 것도 오랜만에 봤어요.
인기척 하나 없는 산길에서 홀로 독차지한 풍경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