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 이야기

Photo by Kim Dong Won
설악산에서

가을이 왔을 때 나뭇잎은
한해내내 간직해 왔던 초록을 비우고
붉게 혹은 노랗게 물들었다.
초록도 분명한 색이었지만
색의 절정은 바로 가을에 얻은 그 붉고 혹은 노란 색이었다.
나뭇잎은 영원히 그 가을의 색과 함께하고 싶었다.
그러나 계절이 겨울로 다가가면서
바람은 나뭇잎에게 선택의 시간이 왔음을 알렸다.
나뭇잎은 먼저 가을의 색을 그대로 간직한채
나무끝을 박차고 날아올라
바람을 타고 지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렇게 지상으로 돌아간 나뭇잎은
땅속으로 제 색을 묻어두었다가
봄에 다시 초록으로 피어나고
가을엔 땅에 묻어두었던
지난 가을의 색을 길어올려 또 다시 화려한 색으로 가을을 단장한다.
많은 나뭇잎이 그 길을 선택했다.
그렇게 바람이 불 때마다 우수수 우수수 가을 단풍이 졌다.
그러나 겨우내내 제 있던 가을의 자리를 부여잡고
봄까지 버틴 나뭇잎이 있었다.
그 나뭇잎은 겨우내내 조금씩 조금씩 제 색을 내놓아야 했다.
바람이 한번 흔들 때마다
나뭇잎은 제 자리를 지키기 위하여
조금씩 조금씩 가을에 얻었던 제 색을 바람 속에 내놓았다.
그러나 그렇게 제 색을 조금씩 내놓은 덕분에
나뭇잎은 봄까지 나무끝을 떠나지 않고
제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단풍은 가을에 제 색을 지키며 거의 대부분
바람이 불 때마다 우르르 우르르 지상으로 떨어져 내린다.
그러나 삶은 그와 반대여서
대부분의 삶이 제 색을 조금씩 조금씩 내놓으며
봄까지 끈덕지게 겨울을 난다.
그러고 보면 가을은 꿈의 계절이고,
겨울은 분명한 삶의 계절이다.
단풍의 색을 조금씩 거두어갔던
그 삶의 계절, 겨울이 가고 있다.
봄이 오면 나는 또 가을의 색을 꿈꾸며 한해를 살아갈 수 있을 거다.
빨리 봄이 왔으면 좋겠다.

Photo by Kim Dong Won
남산에서

4 thoughts on “단풍 이야기

  1. 지난번에 날씨 무지 따뜻할때는 동네 담장집의 매화가 진한 연두색으로 물이 오르고 곧 피어날듯 통통했는데 갑자기 추워지더니 주춤해졌어요.
    따뜻해지면 금새 필거같아요.
    그때부터는 지나다니면서 봄을 더욱 느낄수 있겠지요.^^

    1. 봄을 맞는데 무슨 준비가 필요 있겠어요.
      그저 들뜬 마음 하고 올봄에는 좋은 일 있겠지 하는 기대 정도만 챙겨두면 되죠.
      일이 바쁜가 봐요.
      나는 요즘 시간나는 대로 사진 공부좀 하고 있어요.
      사진 공부 하다보니 결국 사진 공부가 뽀샵 공부가 되어 버리지 않을까 싶어요.
      사진을 잘 찍어야 되는 건지, 뽀샵으로 보정을 잘해야 하는 건지, 너무 헷갈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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