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의 사랑 – 영화 <오펜하이머>

Photo by Kim Dong Won
2023년 8월 17일 서울 가양역 롯데시네마에서
영화 입장권

•영화 봤다. <오펜하이머>이다.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표를 예매했다. 이 작품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란 것도 몰랐고, 오펜하이머가 원자 폭탄을 만든 물리학자란 것도 몰랐다. 러닝 타임이 세 시간이란 것도 표를 끊어 놓은 뒤에 알았다. 소셜 미디어에 오펜하이머라는 제목이 자꾸보여서 그냥 이거나 한 번 봐야 겠다고 생각한 것이 전부였다. 표를 끊고 난 뒤에 영화가 놀란 감독의 영화라는 것을 알았다. 이 감독의 영화가 처음은 아니다. <인터스텔라>와 <덩케르크>를 본 적이 있다. <인셉션>과 <맨 오브 스틸>도 본 적이 있다.

•영화보기 전에 화장실 가는 것이 좋다. 영화 끝나면 말 안해도 일단 화장실부터 가게 된다. 러닝타임 세 시간의 위력이다.

•세 시간이 여섯 시간쯤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는 감상이 있었는데 그렇게 지루하진 않았다. 두 시간 반쯤 되는 것으로 느껴졌다. 30분 줄여서 말한 것은 지루하지 않게 본 내 심정을 수치로 환산하여 조정한 러닝 타임이다.

•영화를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었던 것은 영화관의 좋은 좌석이 한몫했다. 다리를 쭈욱 뻗고도 30cm 정도 여유가 있을 정도로 좌석이 넓었다. 다만 앞자리에 앉은 녀석이 가끔 대가리를 들어서 화면 한가운데를 둥글게 파먹는 것이 흠이었다. 다행이 몇 분 되지 않아 다시 대가리를 내렸다.

•오펜하이머의 일생을 영화의 형식을 빌어 세 시간의 러닝 타임 속에 담아놓은 다큐멘터리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영화에서 두 가지의 사랑을 보았다. 하나는 오펜하이머와 진 태트록의 사랑이다. 둘은 같이 자는 사랑을 보여준다. 다른 하나는 오펜하이머와 그의 아내가 된 키티와의 사랑이다. 둘은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가족을 이루어 함께 산다. 아이를 낳았으니 둘도 같이 잤을 텐데 둘은 키스하는 장면만 나오고 같이 자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 속의 사랑을 같이 자는 사랑과 가족으로 함께 사는 사랑으로 나누었다. 나는 같이 자는 사랑을 몸으로 하는 호흡으로 느꼈다. 가족으로 함께 사는 사랑에는 그 호흡이 없을 수 있다. 호흡 없이 산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숨을 참아보면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금방 알 수 있다.

•진 태트록이 오펜하이머에게 산스크리트어로 씌어진 힌두교 경전 바가바드 기타에서 한 페이지를 펼쳐 읽어달라고 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오펜하이머가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라는 그 부분을 읽기 시작하면서 둘의 성행위가 화면을 채운다. 나는 그 구절이 진을 흥분시켰다고 생각했다. 매력적인 여자네, 저런 구절에서 흥분이 되다니라는 느낌이었다. 글을 쓰는 내게선 그것이 내가 쓰는 글이 누군가의 성적 흥분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기도 했다. 그게 가능할까. 영화는 가끔 짧은 장면 하나에서 거의 불가능할 것 같은 가능성을 내비칠 때가 있다.

•영화에는 오펜하이머의 사생활, 물리학자 시절의 삶, 원자폭탄의 개발 책임을 맡아 개발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공산주의자로 몰려 추궁을 당하는 청문회가 담겨 있다. 이게 상당히 오래 전 일이다. 지금이야 블랙홀의 존재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아직 블랙홀이란 개념도 없던 시절의 일이란 짐작을 가능하게 하는 대사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오래 전에 한 물리학자를 공산주의자로 몰아 청문회에서 핍박하던 일이 공교롭게도 우리나라에서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정부에 대한 비판론자들을 공산주의자로 매도하는 우리나라 굥산주의에 대한 경고로 읽히기도 한다.

•하이젠베르크가 나치였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망할 자식, 왜 그런 짓을 했을까.

•나는 영화의 결론을 매우 비관적으로 보았다. 우리의 행성 지구가 결국 싸움질하다 보유한 핵폭탄으로 서로를 공격하여 자멸할 것이란 예언이 이 영화의 결론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핵폭탄에 대한 환호가 핵폭발로 사람들이 모두 죽는 화면으로 변환되는 장면을 두 번이나 본 것 같다. 두 번은 강조한 것이다. 우리는 핵의 위력에 환호하고 있지만 알고 보면 우리의 죽음에 환호하고 있는 것이다.

•놀란 감독의 영화였지만 나는 그다지 놀라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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