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맑으면 하늘이 푸르다.
그런 날, 하늘은 사람의 마음까지 그 푸른 빛으로 물들인다.
그럼 누구나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서울에선 하늘이 아무리 푸르러도
하늘과 구름의 느낌을 푸른빛과 흰빛의 그 느낌 그대로 즐기기가 어렵다.
우선 어지러운 전선줄이 눈엣가시가 되곤 한다.
그 가는 전선줄이 하늘을 가려보아야 얼마나 가릴까 싶지만
전선줄은 마치 좋은 그림을 긋고지나간 칼자국 같아서
하늘이 푸를수록 전선줄이 눈앞을 가리면 그 느낌이 불편하기만 하다.
잿빛 느낌이 나는 서울의 빌딩들도
하늘의 느낌과 그다지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그 둘이 별로 어울리는 배색이 아니란 뜻이다.
그래서 하늘과 구름이 좋은 날은 어디론가
그 색을 방해없이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곳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8월 11일, 그날은 하늘과 구름이 좋았다.
우린 그날 서울을 버리고 경기도 광주의 천진암에서
몇시간 동안 하늘만 올려다보았다.
나무는 산이 피워올리는 초록빛 구름이다.
아니, 나무가 그 푸르름을 모으면,
산 전체가 거대한 녹빛 구름이 된다.
구름이 좋은 날엔
그 거대하고 진한 녹빛 구름 위로 흰 구름이 뜬다.
그 아래 서 있으면
나는 녹빛에 물들었다, 푸른빛에 물들었다, 흰빛에 물들었다 한다.
그러니까 구름이 좋은 날, 나는,
산밑에 서 있으면 세 가지 색을 왔다 갔다 한다.
산의 능선을 따라가면 하늘이 어떻게 보일까.
능선을 내려가면 하늘이 아득해지고,
능선을 따라 올라가면 하늘이 성큼 다가오는 느낌일까.
그렇게 하늘이 깊어졌다 얕아졌다 할까.
산아래서 능선을 따라 시선을 옮겨갈 때는
마치 그럴 듯한 느낌이었다.
산에 올라가 보고 싶다.
구름이 길게 누워 몸을 살짝 걸치고
산 뒤에서 내 있는 곳을 엿보고 있을 때는 더더욱 그렇다.
후, 한번 불어볼까.
구름은 폭발한다.
부드러움을 뭉치고 뭉쳐서 아무 소리없이.
하늘과 구름을 올려다 볼 때의 좋은 점은
그냥 고개를 젖히고 있으면
끊임없이 그림이 바뀐다는 것이다.
한 자리에 있는데 자꾸 어딘가를 끊임없이 떠도는 기분이다.
가끔 시선을 내려 주위를 돌아보곤 했다.
구름과 구름 사이로
푸른 강이 흘렀다.
푸른 강은 흘러가 넓고 깊은 하늘에 이르렀다.
가끔 하늘이 넘쳐 구름을 지우기도 하였다.
또 구름이 넘치기도 하였다.
구름이 넘치면
구름과 구름 사이에서 푸른 강이 흰 구름으로 메워졌다.
곳곳에 작은 푸른 웅덩이가 파이기도 하였다.
잠시 하늘은 구름의 나라가 되기도 하였다.
하늘의 나라에선 구름이 그 위를 떠다녔는데
구름의 나라에선 하늘이 구름의 사이사이로 우리를 엿보고 있었다.
혹은 구름의 나라에선 구름 사이로 하늘이 언듯언듯 비쳤다.
음, 저긴 맑은 날 거대한 섬이 눈앞에 보이는
어느 대륙의 남쪽 끝자락,
음, 저긴 해변을 따라 돌면 내내 바다가 보이는 거대한 섬나라,
음, 저긴 자잘한 섬들을 흩뿌려 놓은 어느 바다의 그림 같은 군도,
음, 저긴 일년내내 무더위가 발끝을 한치도 물리는 법이 없다는 열대의 대륙…
어어어어, 갑자기 하늘과 내가 서 있는 땅이 스르르 뒤집힌다.
나는 하늘 아득한 곳에서 푸르고 흰 대륙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푸른색과 흰색만으로도 얼마든지 그림이 된다.
오늘의 하늘이 그걸 보여준다.
정말 그림은 그림인가 보다.
한쪽으로 붓자국도 보이는 걸 보면.
붓이 머문 곳에선 흰빛 물감이 고여 붓자국이 그에 묻히지만
붓이 지나간 자리에선 붓자국이 선명한 흔적으로 남는다.
구름으로 그리는 그림은 붓이 머물거나 지나치면서 그려진다.
아니야, 아니야, 이건 아니야.
하늘에선 그림이 마음에 안들어 마구 지워버리면
그림은 지워지지 않고 그 흔적만 어지럽게 남는다.
하늘이 좋은 날엔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하늘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찾아가
그냥 고개를 젖히고 하늘을 올려다 보다 오기만 해도 좋다.
다만 목은 좀 아프다.
돌아오는 우리의 뒤켠에서 하늘이 새로운 그림을 시작하고 있었다.
6 thoughts on “하늘과 구름”
이제 가을 온거 맞나봐요.
하늘보고 이런 저런 말을 할 수 있어 기쁘데요 다들~
비오는거 너무 지겨웠다는데 전 비오는거 나름 좋아하는데^^:
전 콧물 감기로 가을을 환영하고 있어요.
흐린 날씨보다는 차라리 비오는 날이 나은 거 같아요.
빗소리는 듣기에 참 좋잖아요.
빗소리 들리면 떠오르는 얼굴도 있다고 하고…
그러고 보니 전 비오는 날 떠오르는 얼굴은 없네요.
하늘구름이 만들어내는 한 폭의 그림에 폭 빠져듭니다.
높은 곳에 오르면 더 넓게 많이 볼 수 있고,
자연의 품으로 들어가듯 산을 가는 것일까나요.
추석때 우리는 지리산을 올라볼까 생각만하고 있어요.
저는 추석때 죽어라하고 일만하자고 생각하고 있어요.
지리산 처음갔을 때, 노고단에 올랐는데 하늘이 노래졌다는…
지금은 오히려 그때보다 더 건강한 듯 싶어요.
노고단의 노란 하늘~_~ 제 일이 될 수도 있겠어요. ㅎ
일이 그렇게 많으세요?
추석도 얼마 남지않았어요, 아빠는 오늘 벌초 가셨네요.
일이 두세 개가 겹쳐있어요.
그동안 한달반 정도 잘 놀았죠, 뭐.
전 노고단에 올라갔을 때 거의 땅바닥에 주저앉아 버렸어요.
강원도서 자란 내가 산에 올랐다가 하늘이 노래진 건 그때가 처음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