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톤 체홉을 해체하여 새로운 세상으로 구축한 6인의 여인들 – 은평구 마을축제의 독백극 6인의 여인들

Photo by Kim Dongwon
2023년 10월 14일 서울 은평구 평생학습관 공감홀

안톤 체홉의 연극 네 편이 해체되어 6인의 여인들 속으로 흩어졌다. 그 네 편의 연극은 <갈매기>, <바냐 아저씨>, <세 자매> 그리고 <벚꽃 동산>이다. 극속에서 살던 인물들은 대사의 일부를 갖고 도망쳐 6인의 여인들을 만났고, 그러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대개는 연기자가 연기를 하면 잠시 극속 인물의 삶을 사는 것이나 연극이 해체되어 6인의 여인들을 만나자 보통의 경우와 달리 대본이 그 여섯 여인들의 삶을 살았다. 그래서 여인들이 독백으로 들려준 이야기는 그들 자신의 삶이 되었다. 신기한 체험이었다. 은평구의 평생학습관에서 마을 축제의 하나로 열린 행사 중 일반 사람들이 참여하여 만든 <6인의 여인들>이란 독백극이었다.
일찍 도착하여 리허설을 잠깐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다. 리허설 때 연출자인 김현아가 출연자 중 한 명에 대하여 몸을 낮추면서 앉을 때 천천히 앉으라고 말했다. 그 말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무대에서 연기로서 앉을 때는 앉는 것이 아니라 앉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너무 빠르게 앉으면 앉는 것을 보여주지 못한다. 보기도 전에 그 장면이 지나가 버리기 때문이다. 문득 예술이란 속도에 대한 저항이란 생각이 든 부분이기도 했다. 연기는 눈이 지나치지 않고 볼 수 있는 속도로 이루어진다. 우리의 세상은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지나칠 정도의 빠른 속도로 내달리고 있다. 연극을 본다는 것은 잠시 빠른 속도로 내닫고 있는 우리 시대의 속도를 버리고 앉는 것마저 섬세하게 살펴보는 일이다.
15주 동안, 매주 하루 세 시간씩 시간을 내 연기를 배우며 준비를 했다고 들었다. 모두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은 직장인들이었으나 의외로 연기를 배우는 시간이 삶의 스트레스를 크게 이완시켜 주었다고 했다. 좋은 경험이었을 것 같다. 없는 시간을 쪼개 그 시간을 할애했을 때 우리가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이 예술에 있을지도 모른다.
앞쪽 순서로 자리에 앉아 대본을 읽기만한 낭독극이 있었다. 구성을 하고 직접 대본을 외워 연기한 독백극과 비교가 되어 몸짓이 얼마나 큰 언어인가를 실감할 수 있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인데 출연자 중 한 명이 무대에서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가를 일일이 배운 것이 아니라 대사를 하면 자연스럽게 몸이 말을 따라 움직였다고 했다. 말이란 단순히 언어에 그치지 않는다. 말은 우리의 몸을 움직이는 동력이며, 몸이 어디로 움직여야 하는지 그 방향까지 말이 이미 알고 있을 수도 있다. 말은 몸과 따로 살지 않으며 몸과 더불어 몸을 움직이며 살고 있다. 연극 무대는 그것을 가장 극적으로 알려주는 공간일 수 있다.
6인의 여인들로 해체된 체홉이 그 6인의 여인들로 모두 산산히 흩어져 버린 것은 아니다. 여인들은 얘기의 시간을 서로에게 넘겨주며 그들의 얘기를 하나의 흐름으로 만들고 결국은 그 흐름 끝에서 하나로 모였다. 하나로 모인 여인들은 앉고 서는 높낮이를 달리하면서 불꽃의 형상이 되었다. 해체되어 흩어진 삶이 모여 빛이 되는 순간이었다. 빛이 된 여인들은 모두 객석으로 달려나가 그들의 삶을 신나는 춤으로 마무리했다. 해체된 체홉이 불꽃으로 모여 새로이 구축된 세상을 만드는 순간이자 그 순간이 만들어내는 신나는 즐거움이기도 했다. 짧은 시간에 이루어진 해체 구축이 경이로웠다.
좋은 공연으로 감동과 즐거움을 안겨준 출연자들과 연출자에게 감사드린다.

8 thoughts on “안톤 체홉을 해체하여 새로운 세상으로 구축한 6인의 여인들 – 은평구 마을축제의 독백극 6인의 여인들

  1. 정말 소중한 글 잘 읽었습니다. 정보 전달이 제대로 된 느낌이네요.
    귀한 글 쓰시느라 고생하셨고, 또 감사드립니다.
    집사람이 참여했지만, 출근해서 일을 하느라 가볼 수가 없었는데 현장의 느낌이 그대로 전달이 되는 기분이라 너무 좋습니다.
    다시 한번 더 감사드리고, 참여하신 분들, 준비하신 분들, 기획하신 분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앞날에 건강과 좋은 일이 함께 하시기를 ^^

  2. 진정성 & 상상이상의 사진과 글에 너무 감사드립니다.
    저의 길이 아니라는 강한 거부감에 여기까지 오는 길이 무척 힘들었는데 작가님의 글을 읽으며 그래도 희곡읽기팀에 민폐를 끼치지않았구나라는 안도감이 들어 왠지 울컥합니다.
    이제야 비로소 남편과 아이에게 저의 새로운 도전의 결과물을 자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3. 공연이 끝나고나니 무대도 삶도 순간의 예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순간을 추억하며 살게되는… 깊이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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