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딸 2

Photo by Kim Dong Won
2007년 4월 15일 잠실 롯데백화점 갔다오다 버스 속에서


그녀와 문지는 엄마와 딸 사이입니다.
문지는 우리의 딸이기도 하죠.
처음에 딸은 그녀의 뱃속에서 열달을 살았습니다.
딸이 그때를 기억할까 모르겠습니다.
기억이 아주 명민한 어떤 녀석은
어느 날 엄마 아빠와 소풍가던 날을 기억하더군요.
갈 때는 분명 아빠랑 같이 갔는데
올 때는 엄마랑 같이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크크, 웃기자고 한 얘기입니다.
아마도 우리 딸이 그때를 기억한다면
아빠랑 하루 종일 집안에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 엄마랑 같이 출근하고 있었다고 기억할 것 같습니다.
결혼하고 몇년 동안 저는 집안에서 일하고
그녀는 미아리에서 멀리 잠실까지 출근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그녀는 임신하고 난 뒤에도 집에서 쉬질 못하고
딸아이를 뱃속에 품고 출근을 하며 일을 해야 했습니다.
뱃속에 품었으니 그때 딸은 생명을 온통 제 엄마에게 기댄 셈입니다.
세상에 나와서도 그건 마찬가지였습니다.
한동안 엄마 뱃속에서 엄마와 하루 종일을 보내던 딸은
다시 제 아빠와 하루 종일을 보내게 되었죠.
아빠는 일을 해야 하니까 하루 종일 아이를 재우면서 일을 했습니다.
그러니 아이는 밤낮이 거꾸로 되어 버렸습니다.
엄마는 일에서 돌아오면 보채는 아이를 품에 안고 계속 노래를 불러주었죠.
“엄마가 섬 그늘에 굴따러 가면…
아이는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 노래에…
팔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그녀는 그 노래밖에 아는 노래가 없었습니다.
밤새도록 그 노래만 불러주었죠.
졸지에 나는 바다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상한 것은 아이가 그 노래만 들으면 평온해 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는 먹을 것, 입을 것을 온통 제 엄마에게 기대면서 컸습니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입을 것을 제가 고르는 고집이 생겼습니다.
딸이 서서히 홀로 서가기 시작했죠.
그러면서 온통 엄마에게 기대어 자라온 딸이
엄마가 기댈 어깨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요즘은 딸이 제 엄마에게 기대고 있다기 보다
엄마가 제 딸에게 기대고 사는 느낌입니다.
어느 날 잠실의 롯데백화점으로 구경나갔다 돌아오는 길,
제 엄마가 딸의 어깨를 잠깐 빌리려 하자
쌀쌀맞은 딸이 무겁다며 밀어내려 합니다.
그러나 엄마는 마치 칭얼대는 아이처럼 막무가내로 들이댑니다.
딸이 못이기는 척 슬쩍 어깨를 내줍니다.
세상에서 가장 푸근한 어깨에 기댄 표정으로
그녀가 달콤한 휴식을 청합니다.
그녀에게 기대어 큰 아이였는데
이제는 그녀가 기댈 어깨가 되어 있었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7년 4월 15일 잠실 롯데백화점 갔다오다 버스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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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thoughts on “엄마와 딸 2

  1. 모녀의 표정이 생생 살아있네요^_^
    딸을 좋아해 미소 짓고 눈 감은 forest님 사랑스러우세요.
    물론 따님의 새침함도 어여쁘구요.

    때마침 저도 오늘 일어난 비슷한 경험 들려드릴께요.
    일 마치자마자 급히 치과 가는 엄마에게 끌려가며
    배고프다고 오만상을 찌프렸네요.
    기다리는 내내 (-.,-) 요런 얼굴이었죠.
    그래도 엄마가 좋대요~ 딸이 가래도 가지 않고
    기다려주고 함께 와서 좋다네요.
    다시 (^.,^) 바로 펼 수도 있지만, 펴지 않고 내심 감동했어요.
    우리 모두 마음 약한 엄마들께 잘해야할 딸들이네요.

    1. 그냥 딸들은 자기 세계를 살아가면 그게 엄마의 어깨가 되는 거 같아요. 그냥 자기 세계를 살아가면, 엄마는 그게 흐믓한 거죠.

  2. 며칠만에 앉아 이것저것 확인하고 있는데 발자욱을 남기셨네요.
    한가위는 잘 보내셨는지요?
    추석전에 뜻하지 않은 일이 생겨 이삼일에 한 번 정도 접속을 하고 았습니다.
    제게는 올 한가위가 다시 맘가짐을 새로 잡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새로 잡는다고 개과천선은 못하지만 적어도 맘가짐은 한 번 더 다잡게 되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선배님도 행복한 한가위가 되셨길 바랍니다. ^^

    추신)저도 잘 모르겠지만 “미투데이”라는데 이끌려 온라인상에 “만” 여러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혹 마약이나 술(?)에 취약하지 않으시면 아주 짧은 블로그에 가끔 흔적을 남기시는 것도 좋을 듯 싶습니다. 제 홈피 링크 사이트, 미투데이 초대에 가서 가입하시면 됩니다. (ex. 플레이톡의 이외수 선생같은 기능입니다.)
    추신2) 가끔씩 혹은 매일 들려 사진이랑 글들을 보면 야생화나 관상초가 되는 기분을 느낍니다. 아주 싫은듯 하면서 몰래 훔쳐 보는 썬데이 서울 같은….
    정말 제가 남한산성을 가지 않았다면 모르고 지나갔을지도 오아시도 같답니다.

    1. 전 온라인 뿐만 아니라 온라인 친구들을 오프라인에서도 만나는 걸요. 저랑 나이가 대충 12살 차이가 넘게 나요. 그래도 얘기 통하는 거 보면 신기해요.
      현재로선 블로그만으로도 벅차서요…
      그렇지만 신경써준 마음 고맙습니다.

    1. 이러다 밤마다 온나라에서 엄마들이 이 노래 부르는 거 아녜요.
      아이가 엄마 회사 옆에서 함께 있다 올 수 있는 세상이 되면 좋은데…

  3. 이 노래는 직장생활 하는 모든 엄마들의 노래인 것 같아요.
    저는 아픈 아이들과 함께 노래하는 직업인데, 어느 날 집에 있는 다섯 살 아이에게 전화를 받았어요.
    ‘엄마! 엄마 얼굴이 나오는 비디오를 봤는데…나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 지금..’
    슬픔이 가득 베인 목소리였죠.
    바로 일을 하면서 이 노래를 부르게 됐어요. 부르다가 제 설움에 겨워 막 울었죠.^^;;

    이 노래 2절 혹시 아세요?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소리 맘이 설레여
    다 못 찬 굴 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래 길을 달려 옵니다.

    가끔은 2절을 부르면서 위로를 받고 했어요.^^
    저렇게 아이가 커져서 엄마가 기댈 수 있는 어깨를 내 줄 나이가 되는 날이 있겠죠?

  4. 요즘에 섬집아기를 불러주고 있는 도연이 아빠입니다.
    도연이 엄마는 학원에서 선생님을 하고 있는데
    얼마전에 도연이가 말하길
    “엄마는 학원에 굴따러 갔다”고 하더군요. ㅋㅋㅋ
    일견 틀린말은 아니지요.
    저도 어서빨리 굴을 따야 할텐데…
    밤샘작업하다가 너무 ‘글’쓰기 싫어서 ‘글’ 남깁니다.
    안녕하시죠?

    1. 저도 일하면서 지내고 있어요.
      아이는 키우면서 누리는 즐거움이 아주 깊고 큰 거 같아요.
      며칠 전에 아이 키우면서 써놓았던 일기를 들여다 보았는데 아이 때문에 인생을 많이 배우게 되는 거 같아요. 크면 또 큰대로 주는 즐거움이 틀리구요. 그냥 아이에게 뭘 바라질 말고 아이의 있는 그대로를 즐기는게 중요한 거 같아요.
      작업 잘 마무리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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