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시가 넘은 시간, 한강변을 걷습니다.
10월의 초입으로 들어선 한강에선
바람이 강물에 몸을 뒤채며 강을 건너곤 합니다.
몸을 뒤챌 때마다 잔물결이 입니다.
여름날의 훈증된 바람을 생각하면
바람의 체온은 이제는 한참 낮아져 있습니다.
바람이 그 시원한 체온을 온몸에 나누어줍니다.
바람의 시원한 체온을 나누어 가지면 기분이 아주 상쾌해 집니다.
밤늦은 시간이지만 가끔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빠른 속도로 옆을 지나갑니다.
자전거가 지나갈 때마다
내 걸음걸이에 맞추어 조용히 보폭을 함께 하던 바람이
자전거 뒤꽁무니를 따라잡기라도 하려는 듯
잠시 달음박질을 하며 급하게 앞으로 달려나갑니다.
그러나 바람은 금방 멈춰서서 숨을 고릅니다.
그리고는 내가 따라잡길 기다리다
다시금 내 걸음걸이에 보폭을 맞춥니다.
청담대교가 불을 밝히고 서 있습니다.
불빛이 이불처럼 보입니다.
적당한 두께로 다리의 밤을 덮어준 포근한 불빛 이불입니다.
불빛 이불은 그 끝자락을 물속 깊이 넣어
물속에 잠긴 다리의 발까지 모두 덮어줍니다.
다리의 불빛은 일렁이는 물결 위로
그 빛을 한줌씩 뿌리기도 합니다.
그때마다 강물 위에서 빛들이 반짝입니다.
머리맡으로 지하철이 지나갑니다.
마치 늘어놓은 필름처럼 지나갑니다.
한 프레임엔 사람 셋이 보이고,
또 한 프레임엔 사람 둘이 보입니다.
가운데를 짧게 나누어놓은 작은 두 칸짜리 프레임엔
누군가가 강을 내려다보며
그 작은 한쪽의 프레임을 혼자 독차지하고 있습니다.
지하철이 필름처럼 지나갑니다.
저만치 그녀가 오고 있습니다.
한강에서 만나기로 했거든요.
어둠이 그녀를 슬쩍 가리고 있지만
그녀란 걸 난 알 수 있습니다.
좀전에 통화했거든요.
배터리가 다 되어가고 있는 핸드폰으로 마지막 전화를 걸며
이 마지막 전화를 네 몫으로 남겨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내참, 겨우 배터리 떨어지기 일보직전인 것 뿐인데
무슨 전장터에서 보내는 비장한 마지막 전화 같습니다.
나도 참 못말립니다.
배터리 떨어지는 핸드폰을 이렇게 비장하게 울궈먹다니 말입니다.
난 청담대교를 지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녀가 무슨 말인가 하려는 순간
핸드폰은 문자판을 밝히고 있던 환한 불빛을 모두 놓아버리며
어둠으로 가득차 버렸습니다.
마지막 전화는 완전히 그녀의 몫이었습니다.
잠시 뒤 나는 그녀를 만났습니다.
보름이 지난지 꽤 되었나 봅니다.
강건너로 보름을 지나도 한참 지낸 기색이 완연한 달이 낱으막하게 떠 있었습니다.
손을 뻗으면 잡힐 정도로 가까이 보였습니다.
별도 보이더군요.
하나, 둘, 셋, 넷… 별은 왜 세면 셀수록
여기저기서 나도 나도 하며 자꾸만 얼굴을 내미는 거지요.
조금 세다가 그만 두고 그냥 거기까지 센 별들로만
“오늘은 참 별도 많다”는 말을 뭉뚱그리며
모든 별들을 다 그 말속에 쓸어담아 버렸습니다.
둘이 한참 달과 별과 하늘을 올려다 보았습니다.
사랑하며 살아야 겠습니다.
사랑한다는 건 별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냥 밤늦은 시간에 거니는 한강변에서
바람이 다르고, 불빛이 다르며,
달이 다르고, 별이 다른 세상 같습니다.
한강변을 걷는 그 하찮은 것만으로도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게 사랑할 때의 우리들이지 않나 싶습니다.
둘이 잠시 한밤의 한강을 걸었습니다.
사랑하면 살아가는데 그다지 많은 것이 필요치 않습니다.
잠시 강변을 함께 거니는 그 시간만으로
얼마든지 세상을 함께 살아갈 수 있습니다.
8 thoughts on “한밤의 한강 산책”
그날 밤 달 너무 인상적이었어.
쟁반처럼 둥근 달을 본 적은 있지만 그믐달로 가기 직전의 달을 그렇게 크게 본 건 처음인것 같지.
나도 카메라 들고 나갔어야 했는데…
약간 휘어진데다가 크기는 또 왜 그렇게 큰지…
우리 둘이 올라앉아 시간 보내기에 충분하더라.
엉덩이 다 얼겠다~~~^^
그럼 내 무릎에 앉아라
아니, 깜깜한 곳에서 forest님이 홀로 걸어오시다니..
넘 위험해보여용.
동원님 어찌 나약한 그녀님을 홀로…
담부턴 forest님의 영원한 그림자가 되어주세요.
저는 깜깜한 밤길 못걷습니다.
늘 뒤돌아보는 습관이있죠.
택시도 혼자서는 거의 안탑니다.
미인은 사는 게 참 불편할 때가 많아요.
저도 forest님이 미인이라서 딱 그 이유 하나만으로 결혼했는데
그게 평등공주님이야 공인받은 입장이지만
저는 저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더군요.ㅋㅋ
사랑한다는 건, 서로의 시간을 내어주는 것.
예~전에 본 문구인데 왜 그렇게 제게 와닿던지^^
여태 지켜본 바로는 두분 꼭 그런 ‘사랑’하는 부부세요.
이 마지막 전화를 네 몫으로 남겨주고 싶다 ㅋㅋ
제가 배 부를 때 배를 부여잡고,
‘나의 죽음을 아무에게나 다 알려달라’는
위대한 장군님 패러디랑 비슷한 느낌이에요. 킥.
기분좋게 술에 취해서 좀 필받은 상태였죠.
누군가는 저의 이런 행동을 강력한 로맨틱 스킬이라고 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