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에 있는 카페 <대추와 자몽>에서 술을 마셨다. 내가 카페에 들어가서 한 일이라곤 자리를 정하고 앉은 것이 전부였다. 메뉴를 살피며 안주거리와 마실 술을 정하는 일은 없었다. 주인이 만두국을 먹어보겠냐고 물었다. 그리고는 섬세하게 손을 놀려 만두를 빚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 배가 부르다고 말하여 맛이 틈입하기 어려운 내 처지를 알렸다. 만두국이 나왔을 때 양은 그릇의 바닥 가까이 깊이를 낮추며 내게 적절한 양으로 조절되어 있었으나 나는 만두국을 먹는 순간 알 수 있었다. 그 그릇에 맛은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손님이 많지를 않았다. 나는 조금 씁쓸해졌다. 없는 손님이 마치 좋은 시집에 대한 사람들의 외면 같았기 때문이다. 카페의 주인은 시인 유현서이다. 카페의 탁자에 그의 시집이 있었다. 술마시다 사인본 시집을 구매할 수 있는 카페는 처음이었다.
내가 카페에서 마신 술은 셋이었다. 내가 셋이라고 말한 것은 그 셋이 병도 아니고 캔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 주인장이 내준 빅 웨이브는 큰 파도처럼 일어나 나를 덮쳤다. 하와이의 파도였다. 이 맥주가 하와이에서 만들어진다. 에일 맥주였다. 하이네캔이 나왔을 때 나는 한 캔을 마시면서 네 캔을 마신 기분이 되었다. 세 번째 스텔라 아르트와에선 벨기에를 여행하는 기분이 되었다. 나는 맥주를 마실 때면 항상 그 맥주를 만든 나라를 술로 여행하는 기분이 되곤 했으며, 그 습관은 이 카페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소주도 있다고 했으나 나는 맥주만 마셨다. 소주를 마셨을 때의 느낌은 다음 기회로 남겨두었다.
때로 카페는 그것이 위치한 장소도 아니며 그곳에서 내주는 음식이나 술도 아니고 그곳을 운영하는 주인일 때가 있다. 시인 유현서가 그곳의 주인이다. 그곳에 그의 시집도 있다. 술을 마시면서 그의 시에 취하는 일이 그곳에선 가능하다.
같이 간 시인 차주일이 이곳은 주인장의 미모보다 음식맛이 뛰어나다고 했다. 나는 단호하게 그의 말을 자르며 그의 말에 동의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음식맛이 좋기는 하나 주인장의 미모에는 한참 모자란다고 했다. 곧장 실수를 눈치챈 차주일이 주인의 미모도 뛰어나나로 수정을 하면 안되겠냐고 했으나 이미 뱉은 말은 주어 담을 수가 없었다.
이태원의 카페 <대추와 자몽>에서 술을 마셨다. 녹사평역 2번 출구를 나와 길을 걷다 지하도로 길을 건너고 오르막의 길을 조금 오르다 보면 그곳에 이르게 된다. 때로 걸음을 하나하나 짚어주며 사람들을 그 앞으로 데려가고 싶은 곳이 있는 법이다. <대추와 자몽>이라 했다. 다른 무엇보다 그곳에 항상 시인이 있어 좋았다.
주소: 서울 용산구 회나무로13가길 37 1층 2호 (우)04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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