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2023

올해는 2월에 베트남의 다낭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그곳 역시 돈을 쫓아가는 삶이 밀려와 있었지만 여전히 순박함이 남아 있었다. 나는 그 순박함이 가난에서 온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그곳의 가난이 좋았다. 여건이 허락하는대로 동남아로 자주 나가고 싶다.
맥북 인생이 시작되었다. 중고로 2019년형 맥북을 하나 장만했다. 그동안 아이맥으로 작업해 왔으나 이제는 모든 작업을 맥북으로 하게 되었다. 작은 화면을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갖가지 방법이 있었다. 이 작은 컴퓨터 하나만 있으면 어디를 가서도 일하며 살 수 있을 것만 같다.
3월에는 집을 나와 방화에 얻은 거처로 독립을 했다. 생전 처음 집나와서 혼자 살아보는 삶이다. 잘 적응했다. 혼자사는 삶은 그냥 자신만 감당하면 된다. 지난 해부터 다시 일을 시작한 것이 독립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 내 안의 분노가 컸었는데 집나와 혼자 지내면서 많이 수그러들었다. 일주일에 한번 꼴로 집에 다녀오고 있다.
원래의 계획은 매달 다섯 권 정도의 시집을 읽고 좋은 시들을 고르고 모아서 좋은 글을 쓰는 것이었으나 한 해가 다 가도록 겨우 두 권을 읽었다. 새해에는 다시 다짐을 해야 할 것 같다. 시대가 좋아져서 영어로 된 책들도 빠른 속도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아쉬움이 많지만 맥의 시스템에 기본으로 장착된 번역 기능이 영어책을 읽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이 또한 글을 쓰는데 큰 도움이 되는 일이나 책 앞에 앉는 시간이 너무 적다. 분발해야 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좋은 술친구를 만나는 행운이 있었다. 집에 들어갈 생각을 않고 술을 마시는 친구였다. 새벽 세 시를 넘긴 경우가 몇 번 있을 정도였다. 살면서 좋은 술 친구를 갖는 것만큼 괜찮은 일도 없다. 그러고 보면 올해는 좋은 일이 많이 생긴 셈이다.
올해도 한 달에 한 장씩의 사진을 골라 한해를 마무리한다.

Photo by Kim Dong Won
(2023년 1월 20일 경기도 하남에서)

1
가로등이 밝힌 나무를 올려다본다. 때로 어떤 아름다움은 가로등 불빛에 보아야 비로소 알 수가 있다. 밤벚꽃놀이는 벚꽃놀이 때만 유효한 것은 아니다.

Photo by Kim Dong Won
(2023년 2월 7일 베트남 다낭에서)

2
베트남의 다낭 해변에서 자주 반달배를 만났다. 가이드는 바구니배나 코코넛배라고 불렀다. 나는 첫느낌대로 반달이란 이름을 고집했다. 내 고집 속에서 베트남의 어부는 반달을 타고 나가 그물은 달빛처럼 내리고 물고기를 낚았다.

Photo by Kim Dong Won
(2023년 3월 12일 서울 방화동 한강변에서)

3
봄의 허공을 적시는 푸른 빗줄기처럼 버드나무 가지에 물이 오른다.

Photo by Kim Dong Won
(2023년 4월 8일 서울 개화동에서)

4
방화에 처음 왔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동네를 돌아다니며 나무들과 안면을 트고 꽃이 피면 다시 오겠다 약속하는 일이었다. 그때 복숭아 나무와 한 약속이 있다. 오늘 갔더니 환상적으로 그려놓은 도화 한폭을 내게 내밀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23년 5월 27일 서울 방화동에서)

5
앵두가 익었다. 여름과 입맞추고 가장 먼저 뜨거워진 열매이다.

Photo by Kim Dong Won
(2023년 6월 7일 인천 계양산 장미원에서)

6
일본 장미 탄초이다. 탄초는 두루미란 뜻이다. 하지만 정확히는 두루미 머리이다. 두루미 머리의 붉은 부분이 장미가 되었기 때문이다.

Photo by Kim Dong Won
(2023년 7월 21일 서울 방화동에서)

7
나무의 가지를 전구의 필라멘트라고 상상하곤 한다. 잎들이 모두 초록의 불빛이 된다. 오늘도 거대한 초록의 전구 앞에서 잠시 눈이 부셨다.

Photo by Kim Dong Won
(2023년 8월 27일 경기도 장흥에서)

8
간만에 벼의 아침을 보았다. 이슬방울로 반짝이는 아침이기도 하다. 이슬만 먹고는 살 수 없다고 하지만 우리가 먹는 쌀은 벼의 시절을 아침마다 이슬 방울 먹으며 익어간다. 아침 일찍 논가에 서야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Photo by Kim Dong Won
(2023년 9월 3일 강원도 영월에서)

9
기차가 서강을 건널 때 나는 영월의 하늘을 건넌다.

Photo by Kim Dong Won
(2023년 10월 16일 서울 방화동에서)

10
잎들이 사실은 잎을 가장한 꽃이었음을 가을이 폭로하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23년 11월 27일 서울 방화동에서)

11
사철나무의 열매가 붉다라고 말하기 보다 사철나무의 가을꽃이 겨울을 이기고 있다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열매를 꽃삼아 추위를 이기는 것이 나무의 진화 방식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열매꽃이 질 때쯤 봄이 올 것이다.

Photo by Kim Dong Won
(2023년 12월 14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12
도시엔 밤에 봐야 예쁜 빛의 장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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