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과 혼밥

Photo by Kim Dong Won
2023년 12월 18일 우리 집에서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집에 간다. 집에 가는 날엔 첫차를 타고 있다. 열차는 새벽 다섯 시 반에 역을 떠난다. 잠에서 일찍 깨어 네시쯤 책상 앞에 앉고 이런저런 일을 하다 보면 열차가 떠날 시간이 20여분 남는다. 그러면 맥북을 끄고 가방 속에 챙겨 넣는다. 그때쯤 나가면 집에 가는 첫열차가 역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칸에는 많아야 두세 명의 사람들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가다보면 그 새벽의 열차에서도 빈자리는 없어진다.
집에 도착하면 아침 일곱 시이다. 아직 시간이 일러 겨울에는 베란다에서 도시의 동쪽 윤곽선을 헤치며 솟아오르는 아침해를 볼 수 있다. 일출의 해에 맞추어 일어나선 출근 준비를 하는 그녀를 볼 수가 있고, 나는 내 방에 들어가 맥북을 꺼내놓고 이런저런 일을 시작한다. 그녀가 출근하고 나면 부엌에서 이것저것 알아서 챙겨먹는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녀가 내 방문을 열더니 나오라고 했다. 처음에는 부엌에 무엇인가 고칠 것이 있나 보다 했다. 나갔더니 부엌의 탁자 위에서 만두국이 얌전한 자태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 오래간만에 그녀가 차려준 아침이었다. 조금 어색했다. 내가 그녀가 차려주는 아침상의 자연스러움을 잊은지가 오래라는 얘기가 된다. 또 세상에 당연한 일이란 없다는 얘기도 된다. 여자가 상을 차리고 남자는 그것을 받아먹는 당연함이 이 세상에 팽배한 적이 있었으나 원래부터 그런 것이란 없다는 얘기이다. 아침상의 어색함이 그 사실을 일깨운다.
어색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런 아침을 그냥 먹어치울 수는 없다 싶어서 냉장고에 있던 맥주를 꺼내 한잔 곁들였다. 마치 어떤 만찬처럼 술로 환영하지 않으면 안될 아침상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구운 조기 한 마리를 만두국 옆에 곁들여 주었다.
거처에선 혼자 밥을 먹는다. 흔히 말하는 혼밥이 거처의 일상이다. 집에 가면 혼자 먹어도 집밥이다. 내게선 집밥과 혼밥이 완연히 다르다. 내가 먹는 혼밥은 거의 포장지를 뜯고 전자렌지에서 돌린 것으로 이루어져 있어 그 맛이 일률적이다. 표준화된 맛으로 나는 배를 채운다.
그러나 집에 돌아오면 밥에 우리 집 만의 맛이 있다. 포장지를 뜯어서 먹는 음식에서는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우리 집만의 맛이다. 음식을 먹으며 내가 집에 왔다는 것을 실감한다. 집밥이란 집에서 한 밥이 아니라 내가 집에 왔다는 것을 맛으로 확인시켜 주는 밥이다. 집은 누웠을 때 몸을 편안하게 하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집밥에 이르면 집의 공간은 그 자장이 뱃속까지 빠짐없이 미친다. 심지어 포장지를 뜯어서 하는 음식도 집에서는 국물을 낼 때 집만의 고유한 방법을 사용해 표준화된 세상의 맛을 지워버리고 집의 맛을 음식에 새겨 넣는다.
혼밥이 편리하고 간단하긴 하지만 집집마다 갖는 고유의 음식맛을 없애고 일률적으로 표준화해서 그 맛이 얻어진다. 어찌보면 혼밥이란 혼자 먹는 밥이 아니라 그 맛으로 우리가 혼자라는 사실을 환기시켜 주는 밥일 수도 있다. 우리는 혼자 먹어서 혼밥이 싫은 것이 아니라 혼자라는 사실을 환기시켜 주는 혼밥의 맛이 싫을 수도 있다.
집을 나왔지만 나는 혼밥과 집밥의 사이를 오가며 살고 있다. 아침 일찍 거처를 나가 집밥으로 세 끼를 모두 챙겨 먹으며 배를 채우고는 다시 거처로 돌아온다. 몸무게가 집 나올 때보다 더 불었다. 집을 나왔으나 나는 밥에 관한한 집밥과 혼밥의 사이를 오가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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