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에 삶이 담기다 – 이정록의 시 <의자>

Photo by Kim Dong Won


사람들에게 있어 나이는 두 가지로 작용하는 것 같다. 하나는 나이가 생각의 폭이나 시야를 점점 더 좁히는 경우이다. 이런 경우 사람들은 나이들면 들수록 더더욱 자기 생각에 완고해지고, 그 생각 속에서 더욱 굳어간다. 생각이 굳어있으면 말을 나누기가 어렵다. 나이든 사람들과 자리를 같이했을 때, 일방적으로 그들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 이외에 달리 할 일이 없는 고역스런 경우가 이런 경우이다.
그러나 나이가 정반대로 작용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엔 사람들의 나이 속에 그들의 삶이 담겨 숙성되어 간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나이 속에 완고한 고집이 담기면 삶이 점점 더 굳어지지만 그 속에 삶이 담겨 숙성이 되면 삶이란 것이 매우 단순하게 요약이 되면서 그 삶이 모든 이들을 향하여 따뜻하고 넓게 열린다. 아마도 그런 삶을 가리켜 지혜를 얻은 삶이나 또는 깨달음에 이른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인 이정록은 그의 어머니에게서 그 깨달음을 보고 있었다.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이정록, <의자> 전문

난 아직 나이를 덜 먹었나 보다. 이 나이쯤 되면 남들을 위해 의자를 내놓아야 하는데 아직도 어머니가 내놓은 의자에 앉아 쉴 때가 가장 좋기만 하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의자는 어머니가 내주시는 의자가 세상에서 가장 편하다. 아마, 그건 시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세상의 어머니는 거의 다 비슷비슷한 것 같다. 그 때문인지 시인의 어머니 얘기를 읽으면서 그 짧은 순간에 나는 잠시 그 어머니를 내 어머니로 착각하고 있었다. 그 어머니는 오늘 삶을 의자에 담아 내게 내밀어 주셨다.
풍경 좋은 곳이 아니더라도, 앞으로는 시골길을 지나다 누추한 집의 처마밑에 놓인 의자만 보아도 그곳에서 삶을 바라볼 수 있을 것만 같다. 예전에는 그저 녹슨 의자에 불과했던 그 의자에서 그곳에 앉았다 가며 조금씩 그 자리의 먼지를 닦아갔을 누군가의 엉덩이와 그 엉덩이의 온기가 떠오를 것만 같다. 그리고 그 따뜻한 온기가 사실은 그의 엉덩이로 뎁힌 온기가 아니라 길가는 나그네에게 잠시간의 휴식을 내준 누군가의 따뜻한 마음에서 온 것이란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될 것 같다. 어머니는 의자에 당신의 따뜻한 마음을 얹어 삶을 담아놓으셨고, 바로 그 순간 세상의 모든 의자는 더욱 따뜻해졌다.

Photo by Kim Dong Won

10 thoughts on “의자에 삶이 담기다 – 이정록의 시 <의자>

  1. 최근엔 부모님 산소에 자주 가는것“`왠지 나이탓인가“““이젠 잊혀져만가는 부모님얼굴““““`

    1. 이곳이 어려운 곳이 아니라 그냥 편안하고 가끔 들어와서 낄낄댈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어요. 님도 좋은 하루가 되시길. 아울러 부군께도 안부를.

  2. 매번 둘러보기만 하다 오늘은 용기내어 한자 남기고 갑니다.
    너무도 오랫동안 그것도 수시로 들락거려 마치 저혼자 친분있기나 한것처럼 길가다 마주쳐도 알아볼 수 있을것 같네요. 사실은 어찌어찌 편집일 시작한지 십년가까이 되다보니 맥관련 사이트에서 보고 흘러들어와 무시로 드나드는 객입니다. 여기 글들이 마음에 자꾸 들어와서 도무지 나갈 생각을 하지않아서 말이죠. 오늘은 결혼하고 처음으로 남편에게 글도 한번 써봤구요. 의자라는 시와 함께요. 사실 엄마생각이 더 나야 하는 시인것 같은데 자꾸 마음에 걸리는게 바로 골칫덩어리 남편이네요… 인천에도 한번 오시지요. 사진도 찍으시고 맛있는 막걸리집이 있는데 같이 한잔 하시자구요. 물론 사모님도 같이요.

    1. 원래 누군가 들어주길 바라고 하는 얘기들인데
      얘기가 귀에 담긴다고 하니 더없이 기분좋네요.
      인천에는 제 친구도 있죠.
      그러고 보니 그녀의 언니도 인천에 있네요.
      인천엔 자주 갔었는데, 그러고보니 가본지 꽤 오래 되었네요.
      답글 감사드려요.

  3. “사실은 그의 엉덩이로 뎁힌 온기가 아니라 길가는 나그네에게 잠시간의 휴식을 내준 누군가의 따뜻한 마음에서 온 것이란 사실…” 참 좋은 부분이네요. 어쩜 우리는 의자 그자체로 뽐내며 살았지, 누군가를 그저 받아줄 준비는 안하고 사나봐요. 그러다 다가오는 나그네를 때론 반기고, 때론 외면하고, 그렇게 사람을 가렸나봐요….그저 마음까지 얹어서 내어놓는 그런 사랑이 없는거겠죠…….많은 걸 생각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1. 시인들이란 참으로 놀라운 사람들 같아요.
      특히 이정록 시인의 이번 시집 <의자>는 뒷쪽 표지에 너무 재미나는 얘기가 실려있어서 그걸 읽으며 배꼽이 빠지도록 웃었습니다.

  4. 저도 나이들면서 숙성되어 다른 이들에게 편안한 사람이 되고싶은데.^^
    지금 현재의 제 모습은 낯을 많이 가리고 쉽게 사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어요.
    성격상 나이들어도 그게 쉬울것 같지도 않구요.
    그래도 한가지는 자신할수 있어요.
    강팍한 마음 갖지 않고 따뜻한 시선을 가질수 있다는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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