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의 거리

Photo by Kim Dong Won
2024년 3월 24일 경기도 안산의 구봉도에서

그녀와 함께 서해안의 구봉도에 놀러갔다. 대부도의 한 귀퉁이에 자리한 구봉도는 이름은 섬이지만 더 이상 섬이 아니다. 다리와 방조제로 연결된 섬은 이제 육지의 일부가 되었다.
섬의 주변을 걷다 선돌바위를 만난다. 두 바위가 가까운 거리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다. 마침 바다는 만조 때이다. 들어온 바다는 두 바위를 갈라놓는다. 물이 빠지면 두 바위는 걸어서 오갈 수 있는 사이가 된다. 너무 가까워 그때부터 바위는 한 집안의 둘이 된다.
바위 사이로 멀리 영흥대교가 보인다. 바다가 갈라놓은 섬의 고립을 견딜 수 없었던 사람들은 섬과 육지 사이에 다리를 놓았고 그때부터 섬은 더 이상 섬이 아니었다. 섬은 편리를 얻는 대신 섬이라는 정체성을 잃었다.
집을 나와 한 해 동안 그녀와 떨어져 살았다. 우리 사이는 바닷물이 들어온 만조의 시기였다. 서로를 오가지 못했으며 각자의 공간에 고립되었다. 그 고립은 세상 사람들이 전하는 말에 따르면 대개는 영원히 둘이 갈라서는 헤어짐의 직전 단계였다.
그러나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물이 들어와 둘 사이를 오갈 수 있는 길을 지워버리긴 했지만 그 길에 남겨진 둘 사이의 많은 상처들도 함께 지웠다. 서해안처럼 일정하게 간격을 두고 물이 빠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둘의 사이에서도 가끔 물이 빠지는 시기가 있었다. 서로를 오갈 수 있었다. 바다가 지워주고 새로낸 길로 다니며 둘은 그 길의 상처를 잊어갔다. 바다가 가진 치유의 힘이었다. 낯익은 새 연인을 만난 듯 둘은 물이 빠질 때마다 서로를 만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해만에 상당히 오랫동안 둘이 같이 지냈다. 한 해 동안 둘 사이를 채운 바다는 둘이 걸었던 길에 남겨진 상처들을 거의 모두 지워버려 새 길을 걸을 수 있게 해주었다. 이제 둘은 다시 같이 살 수 있을 듯했다. 둘은 둘 사이에 다시 다리를 놓을 수 있겠다고 느꼈다. 하지만 둘은 멀리 보이는 영흥대교를 두고도 다리를 놓지 않고 여전히 밀려드는 바다가 갈라놓는 격리의 시간을 살고 있는 구봉도의 두 바위처럼 살아보기로 마음을 모았다.
그동안의 한 해는 바다의 힘을 빌어 둘 사이의 길에 남겨진 많은 상처를 지운 시간이었지만 이제부터의 한 해에선 바다가 밀려들어 길이 막히는 시간은 서로에 대한 그리움을 쌓는 시간이 될 것이다. 지우던 시간이 그리움의 시간으로 바뀐다. 지워야 했던 자리를 그리움으로 복원해야 그때 사랑이 다시 우리의 것이다. 그리움은 함께 하는 시간을 꿈꾸게 만드는 가장 원초적인 사랑의 출발점이다. 물이 차 있는 시기가 많은 한 해를 살았으나 이제는 가끔 물이 차는 한 해를 살 것이다. 상처를 지우던 거리가 이제 그리움의 거리가 된다.
구봉도의 바다와 그곳의 두 바위가 우리에게 한동안 그리 살라했고, 우리는 바다의 조언을 따르기로 했다. 낙조를 보고 섬을 뜰 때쯤 바닷물이 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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