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에서 큰 행복을 보다

요 며칠, 하루 사이로 날씨가 계속 낯빛을 바꾸고 있다.
지난 토요일엔 심한 황사로 인하여
세상이 온통 희뿌옇고 코끝에서도 흙냄새가 나는 듯 싶었다.
그러더니 일요일 아침엔 하루가 밝자
하늘이 그런대로 푸른색으로 맑게 걷혀 있었다.
일요일은 거의 하루 종일 날씨가 좋았다.
오늘 월요일 아침에 눈을 떴을 땐 햇볕대신
비오는 소리가 창틈을 비집고 들어와 인사를 하고 있었다.
날씨좋던 어제 나는 카메라를 들고
장애인 봉사에 하루를 할애한 한영교회 사랑부의 사람들을 따라 다녔다.
보통은 봄이나 가을에 모두가 함께 어느 한 곳에 가서 하루를 보내다 오지만
어제는 모두가 뿔뿔히 흩어졌다.
일부는 청계천으로 가고, 일부는 올림픽 공원으로 갔다.
워커힐로 간 팀도 있다고 들었다.
내가 따라간 팀은 지하철을 타고 아차산역에 내려 어린이 대공원으로 갔다.

Photo by Kim Dong Won

차용래이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있을 때면
항상 아이들의 얼굴에서 웃음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그 순간이 흔치 않기 때문이다.
운좋게 그 순간을 한 장의 사진 속에서 멈춰 세운 날이면
나는 하루종일 기분이 좋았다.
웃음은 내가 보기에 그리 큰 것은 아니다.
우리는 모두 사진을 찍을 때면
“자, 웃어봐요”라는 소리에 맞추어 입꼬리를 올리며
그러면 모두 웃는 얼굴이 된다.
우리는 모두 손쉽게 웃음을 만들어내며
그래서 웃음은 아주 흔하다.
그러나 이 아이들과 함께 할 때면
아이들은 웃음이란 내가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기다려야 하는 것이란 사실을 내게 가르친다.
나는 항상 사진을 찍을 때면
웃음을 요구해 왔지만
이 아이들에게서 웃음은 기다려야 하는 것이란 사실을 배웠다.
그런 측면에서 그들의 웃음은 흔한 것이 아니다.
그들의 웃음은 오랜 기다림 끝에서 내게 오며
그 웃음이 오는 날,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내 손끝은 떨린다.
그들의 작은 웃음 속에
나의 큰 행복이 있다.

Photo by Kim Dong Won

장애인들이 일반 교인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는 것은
1년에 서너 차례인 것 같다.
야유회를 가거나 수련회를 갈 때이다.
그때면 사람들이 가고 오는 길의 안녕을
함께 기도해준다.
올해는 앞에 나가 간단한 공연까지 했다.

Photo by Kim Dong Won

올해 들어와 특히 다행스럽게 여겨졌던 점은
봉사자들 속에 젊은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는 점이다.
아이들이 젊은 형이나 오빠, 누나, 언니를 특히 더 좋아한다.
젊은 사람들의 봉사는 항상 기특해 보이며,
아울러 나에겐 특히 젊은 사람들이 봉사를 하고 있으면
그들이 누구보다 아름답게 보인다.

Photo by Kim Dong Won

길은 하나밖에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길 위에 또 길이 있다.
잘 깔아놓은 보도블럭을 따라 그 한가운데로 길을 가면
그저 길을 갈 뿐이지만
길의 좌우 경계를 따라 새롭게 길을 가면
그 길을 가며 재미까지 얻을 수 있다.
현우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Photo by Kim Dong Won

돈을 아끼기 위해 이마트에서 장을 보는 사이
잠시 그 앞에서 휴식을 취했다.
이마트 출입구의 광장을 사랑으로 점령한 기분이다.

Photo by Kim Dong Won

오승환.
승환이는 그가 앉은 모든 곳을
신선의 자리로 바꾸어 놓는다.
우리는 오늘 하루 그를
오신선이라 부르기로 했다.

Photo by Kim Dong Won

어때, 시원하지?
아니, 근데, 이 녀석아.
이 늙은 할머니가 꼭 이렇게 너의 안마를 해주어야 겠니?

Photo by Kim Dong Won

–어디 너도 한번 할머니 어깨좀 두들겨 봐라.
현우가 슬그머니 돌아앉더니
도탁도탁 할머니 어깨를 두드렸다.
어이구 시원하다, 어이구 시원하다를 말하는 할머니 얼굴에
웃음이 한가득이었다.

Photo by Kim Dong Won

여럿이 몰려다니면
없던 용기도 생긴다.
지하철 통로의 한가운데서 이기철씨가 갑자기
“에, 좌중의 승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라고 입을 떼었다.
그는 물건파는 사람들 흉내를 내며 우리를 웃겼지만
사실은 그가 사람들에게 팔고 싶은 것이 있었다면
아마도 무료로 나누어주는 사랑이었을 것이다.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해
무료로 사랑을 나눠드리니 마음껏 가져가세요.”
그러니까 요게 그가 하고 싶은 말이었을 것이다.

Photo by Kim Dong Won

처음 수환이를 보았을 때
그가 갖고 있는 단어는 내 기억에
“엄마”와 “예”이었던 같다.
수환이를 맡고 있는 할머니가 노래를 부르자
수환이가 노래에 맞추어 율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의 두 단어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던 내겐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Photo by Kim Dong Won

짐은 모두 김재철씨(오른쪽)가 들고 다녔다.
어찌보면 그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는 말을
톡톡히 실천한 셈이다.
사실 그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우리는 무거운 건 다 그에게 떠맡겨놓고
아이들과 노는 데만 정신을 모았다.
그가 무거운 짐을 맡아준 덕택이다.

Photo by Kim Dong Won

같이 간 아이는 넷이었지만
따라간 사람은 여섯이었다.
떠나기 전 교회에서 그들이 앞에 나갔을 때
사실 나는 그들의 빈자리가 얼마나 되나 살펴보았다.
3분의 1도 채되지 않는 것 같았다.
마음과 시간을 나누면
그들의 하루에 아이마다 둘은 따라 붙을 수 있을 것 같았다.

Photo by Kim Dong Won

아, 듣기 싫다니까요.
말을 안들어서 잔소리좀 했더니
승환이가 아예 귀를 막아 버렸다.

Photo by Kim Dong Won

그러나 꽃나무 아래서의 신선놀음을 아는 것은
역시 승환이밖에 없었다.
우리는 앞에는 신선을 두고
뒤에는 꽃나무를 두고 사진을 찍었다.

Photo by Kim Dong Won

꽃나무 아래서 승원이는
머리에 꽃을 하나 꽂았다.
그러자 다른 모든 꽃들이 숨을 죽였다.
사랑으로 승원이를 바라보는 눈에
그 작은 장식만으로 승원이는
그 어느 꽃보다 아름다웠다.

Photo by Kim Dong Won

승환이가 그 자리에 앉자
모래밭도 신선의 자리가 되었다.
아무도 몰랐을 거다.
모래밭이 신선의 자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은.

Photo by Kim Dong Won

수환이는 저 높은 곳에 올라가 무엇을 보았을까.
그의 얼굴에 번진 환한 웃음으로 보건데
아마도 함께 사는 사회의 즐거움을 보았을 것이다.
알고보면 함께 사는 사회라는 것이 별 것인가.
그냥 다른 아이들과 뒤섞여 함께 놀도록 해주는 것이다.
가끔 우리 사회가 그 별 것도 아닌 것을 못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Photo by Kim Dong Won

손을 씻겨 준다.

Photo by Kim Dong Won

그리고 닦아 준다.
씻어주고, 닦아준다는 말의 “준다”는 말 때문에
마치 이경호씨가 주고
승환이는 받는 것 같지만
아이를 따라 다니며
하루 종일 그의 얼굴을 떠나지 않았던 웃음을 생각하면
씻겨주고 닦아주고 또 보살펴주는 작은 것들을 줄 때
결국 더 큰 것,
바로 보람과 행복한 웃음이
그 속에 있음을
이경호씨는 알았던 것 같다.

Photo by Kim Dong Won

–현우야, 오늘 재미있었어?
응.
–응이 뭐야, 예라고 해야지?
예.
–재미있었으면 선생님 볼에다 뽀뽀해 줘야지.
현우가 그녀의 볼에 뽀뽀했다.

Photo by Kim Dong Won

집으로 가는 길.
가는 길은 그림자가 앞에서 길을 이끌었다.
사람이 없을 때면
그림자가 벗이 될 때도 있다.
그러나 그림자를 벗으로 삼는 길은
사실은 외로운 길이다.
장애인들에게 그 길은 더더욱 외로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람과 사람이 손을 잡아야 한다.
그렇게 사람과 사람이 손을 잡는 순간,
길을 이끄는 그림자의 걸음은 신이 난다.
사람은 역시 어울려 함께 살 때 더욱 보기 좋다.
손을 잡는다는 것은 어찌보면
얼마나 작은 일인가.
그러나 그 작은 것 속에 그들의 행복이 있고,
또 우리의 행복이 있다.

8 thoughts on “작은 것에서 큰 행복을 보다

  1. 아이들이 무지 좋아했겠네요.^^
    저도 그날 황사가 심해서 책을 펴고 앉았다가 아무리 생각해도 안되겠어서 아이들에게 “엄마 벚꽃보러 갈건데 같이 갈사람~!”했더니 둘째랑 막내가 따라간다고해서 같이 엄청 쏘다니다 왔답니다. 남편은 그날 야구하러 갔었거든요.^^
    세월아 네월아 벚꽃길을 걸었어요.
    하늘이 맑고 파랬다면 사진이 이뻤을텐데 그러지 못해서 올리지도 않았어요.^^

    1. 요건 비밀인데, 가을소리님께 살짝 알려드리자면
      사실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더 좋아해서
      나중에는 누가 놀러온 건지 구분이 안간다는…

  2. 무척 수고 하셨는데….나를 주님과 비교하시니……
    이참에 사이비 교주나 될까….그러면 주님이 뮤ㅓ라하실까 “““두렵다“““““

  3. 중국서 날아오는 황사바람도 이겨내는, 진정한 봄날의 한 순간순간을 만들어 가시네요. 😉

    중간 즈음에 사랑을 나누어 드린다는 말..
    정말 그런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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