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그리고 나무와 섬 – 임후성의 시 <생의 한때>

Photo by Kim Dong Won

나무는 봄이 되자
대지의 빨대가 되었다.
대지의 깊숙한 곳으로 빨대를 꽂고
물을 쪼옥 빨아올렸다.
물은 나무의 온몸에 푸른빛으로 퍼졌다.

섬은 봄이 되자
강으로 길게 목을 뻗었다.
그리고는 원없이 벌컥벌컥 강물을 들이마셨다.
물은 섬의 봄옷에 푸른빛으로 물들었다.

Photo by Kim Dong Won

지난 해 5월에 가평의 자라섬에서 찍은 사진 두 장으로 글을 하나 엮고 나자 갑자기 시인 임후성이 생각났다. 언젠가 그와 함께 술잔을 기울인 적이 있었다. 그때 내가 주로 언제 시적 영감을 받느냐고 물어 보았더니 “물을 마셨을 때”라고 답했다. 그냥 웃으면서 들어두기만 했던 그 얘기가 갑자기 기억을 새롭게 하면서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래, 유독히 그의 시집 『그런 의미에서』 속엔 물에 관한 이미지가 많았었다. 시집을 다시 들쳐보니 그 중의 한편이 아무래도 이 자리에 있어야 할 시 같았다.

어느 때 물을 마시면
심장이 심하게 뛴다
나는 물을 향해 급히 달려온 기분이 든다
그것은 숨찬 심장이면서
두근반 세근반 할 때의 심장이다

물을 마신 심장은
숨의 군락
반가워서 날뛰며

심장이 이내 뻑뻑하게 예민해지는 것은
뿌리가 물을 흠뻑 들이마시는 모습이며
별안간 심장이 뚝 떨어지는 것은
흐뭇한 만족이며
즐거움의 표시이다

가슴 깊이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쾌적한 숲속에서 들려오는
생의 격양가이며

생의 한때 물을 마시는 손은
지극히 차분하며
물을 바라보는 눈은
지극히 자애로우며
심장은 심하게 난동질한다
–임후성, <생의 한때> 전문

나무들이 푸른 이파리를 내뿜기 시작하는 이 계절에 그 나무들이 우듬지까지 길어올려 물을 마시는 소리를 들으며 이제 그때 임후성이 했던 말들의 의미가 이해가 되는 듯 싶다. 그는 “물을 마시고 있으면/환한 길이 하나 보”인다고 말했다. 아마도 그는 사람으로 변장을 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나무가 아니었던가 싶다.
나도 이 봄에 시인 임후성처럼 “나약하지만 미끈한/시중의 생수 두 통을/즐거운 어른을 찾는 법주처럼 들고” 집으로 들어가 보련다. 그리고는 “그 물을 눈대중으로 삼등급으로 나눠/젤 밑은 화분의 식물에게 주며/다음으론 식수로서 밥을 하거나/남으면 내가 음용하며/젤 위는 찻물로 삼”아 보련다. 아울러 그가 했던 것처럼 “간혹 가다가 식물과 나를 뒤바꿔/젤 밑을 내가 취”해볼 생각이다. 그러면 갑자기 생수 두 통으로 생활이 환해지고 풍요로워 질 것만 같다.

9 thoughts on “봄, 그리고 나무와 섬 – 임후성의 시 <생의 한때>

  1. 나무는 봄이 되자…
    섬은 봄이 되자…

    이 글을 읽는데, 표현이 참 신비롭네요
    저도 이런 글 하나 쓰고 싶어 가슴이 막 뛰네요

    전 심한 독감으로 물을 마시면서…
    이 독한 감기를 하나씩 비워내는 연습을 하고 있답니다
    따끈한 차를 마시면, 깊은 기침도 비워 낼 수 있을 것 같은…

    물이 주는 생명의 원천성~~~
    엄마 뱃속을 유영하는 아가의 모습도 연상 되네요

    날짜를 보니, 제가 어머니 보내고 가장 슬펐던 날들이네요…
    생의 한 때에 생수로도 풍요로와 지는 시인의 맘과 같이 교감합니다^^

    1. 머리 속에 기억해둔 시가
      어느 날 퍼뜩 떠오르면서 이해가 될 때가 있어요.
      첫 시집 내고 만났었는데
      그 뒤로 오랫동안 시집을 묶지 않고 있네요.
      가끔 시인들을 만나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을 때가 많아요.

    1. 현진이 아들도 많이 컸을텐데… 보구 싶구나…
      둘째 아이도 건강하게 순산하고 너도, 너랑 같이 사는 남편도,
      몸도 마음도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란다…

      그때의 처자^^들도 모두 안부 전해줘.

  2. 나무는 땅에 빨대 꼽고, 이 봄을 맞이하는 군요.
    빨대 꽂을 때를 못찾아서 방황하다가 오랫만에 들렸어요.

    저도 물을 좀 잘 마셔봐야겠어요. ^^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