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문이 열렸다

Photo by Kim Dong Won

말은 왜 그렇게 미묘한 것인지 모르겠다.
활짝 열어놓은 숭례문을 두고
“남대문이 열렸다”고 하면 그 말은 말 그대로이다.
하지만 닫아놓은 문이 틈새를 갖고 있으면
그것은 분명 닫아놓은 문임에도 불구하고 그 틈새 때문에
“남대문이 열렸다”는 말을 얼마든지 그 닫힌 문에 끼워놓을 수 있다.
그러고 보면 말은 전혀 굳어있질 않다.
“남대문이 열렸다”는 말이 활짝 열린 문앞에 걸개처럼 걸리기도 하고
거의 다 닫힌 문의 좁은 틈새로 고개를 들이밀기도 하는 것처럼
말은 종종 같은 말에 다른 모습을 담고 우리 앞에 나타난다.
아니, 말은 우리 앞에 나타날 때마다
변신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까지 쓰여진 그 많은 소설과 시를 생각하면
이제 그 샘이 고갈된지 오래고
파닥을 파서 축축한 습기를 건져올리며 연명을 했다고 해도
이미 오래 전에 지구 반대편으로 뚫고 나갔을 정도가 되었을 것 같지만
여전히 소설이 나오고, 또 시가 씌어지는 것을 생각하면
바로 그것이 그 미묘한 말의 변신 때문인 것 같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말을 잘 부리면 세상을 얼마든지 살아숨쉬게 할 수 있다.
작은 틈만으로도 닫혔다는 말을 밀어내고
“남대문이 열렸다”는 말을 끼워넣어 숨통을 여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그러니까 아무리 세상이 꽁꽁 닫혀있다고 해도
말을 잘 들이밀면 그 세상에 구멍을 낼 수 있으며,
굳어있는 것들도 한순간에 일으켜 세울 수 있다.

Photo by Kim Dong Won

7 thoughts on “남대문이 열렸다

    1. 남대문을 개방해서 이제 정말 남대문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잖아요.
      남쪽은 한남동 방향 같은데 남대문은 서울역 쪽으로 나 있더군요.
      그쪽은 서쪽 같은데…
      그냥 서울의 남쪽에 있다고 남대문이라고 불렀나봐요.

  1. 요즘 안그래도 말을 잘 만들어서 얻을 수 있는 유리함에 대해 연마 및 고민중이예요.
    말은 참, 익숙하면서도 어려운것 같아요~

    1. 결국 세상은 말을 잉태하는 자궁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시인들은 특히 세상의 모든 것들에게 말을 임신시키는데 도가 튼 바람둥이들. 간혹 같은 제목으로 태어나는 연작시들을 보면 열쌍둥이를 낳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캬, 오늘 얘기 좋다~. 이런 얘기는 한잔 꺾으면서 주거니 받거니 나누어야 하는데 말이죠.

    2. 말을 임신시킨다니까, 쩝~ 잠시 이상하게 들리는… .,=;;;
      ㅋㅋㅋ 암튼 나두 바람둥이가 되고싶어요.

      이런 얘기는 이태백이 술을 먹었던 정자같은데서
      탁주와 음악과 자연을 배경으로다가 풍류를 즐기며
      세상 시름을 잊고 느긋하게 하면 더더욱 좋을꺼예요.
      아희~

    3. 어제 과음했더니 오늘 낮에도 비틀거린다 <-- 요걸 햇살에다가 말을 임신시켜 새롭게 태어나게 하면 "햇살에 걸려 넘어진다/어제 먹은 술 때문인지/햇살에 걸려 넘어진다"(이재훈의 시 <황홀한 배회> 첫구절)는 말이 잉태된다는 말씀. 지나가면서 햇살에 임신을 시키지 않은 다음에야 같은 햇살을 보고 지나다니는데 어찌 그런 말을 얻을 수 있겠어요. 시인들의 말이란게 다 세상의 온갖 것들, 비와 달과 구름과 해와 바람피워서 나온게 틀림없어요.

    4. 햇살에게 술을 먹인건 아닐까요. 하하하

      그냥 우스개소리니 신경쓰지 마세요.
      그 햇살에 걸려 넘어진다는 말 앞으로 자주 인용하고픈 말이네요. 구름에 머리를 박고 있는것 같다라는 말을 자주 썼었는데 이젠 바꿔야쥐~ 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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